지난 5월 20일에서 26일까지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을 맞아 전국에서 풍성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필자는 전체 행사 중 서울문화재단이 마련한 포럼에서 기조발제를 하게 된 기회로 행사의 부분에 동참하게 됐다. 필자가 포럼에서 발제한 내용은 문화예술교육이 외적으로 풍부해 질수록,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글_ 박신의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쓸데없는 짓’,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기대치는 제도 예술교육의 낡은 틀을 깰 수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제도 예술교육이 일정하게 엘리트 예술을 기준점으로 하여 ‘가르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특정하게 재능을 필요로 한다는 믿음을 갖는다면, 오히려 문화예술교육은 그런 저런 조건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데서 차이가 날 것이다. 예술 창작의 문제를 극장이나 미술관 등과 같은 엘리트 예술의 배급공간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일상과 삶의 영역으로 옮기면서 예술이 갖는 근본적인 힘, 즉 ‘질문하기’ 혹은 ‘효용성 무시하기’와 같은 ‘쓸데없는’ 짓을 부추기는 일이라는 조금은 도발적인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쓸데없는’ 짓을 해야 진정으로 ‘쓸데있는’ 일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대학을 자퇴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스티브 잡스가 서체 강의를 통해 로마글 글자꼴의 형태인 세리프(serif) 서체에 매료되면서 매킨토시의 서체를 발명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통해 무엇이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 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그것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10년 후 우리가 첫 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라고 토로한 바 있다.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예술을 새롭게

 

문화예술교육이 결국은 누구에게나 잠재해 있는 호기심과 직감으로 간파할 수 있는 심미안, 즉 창의성의 근원을 일깨워주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역할은 제도적으로 매뉴얼화 되어있는 문화예술교육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엘리트 예술의 전문성을 통해서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예술이 해주는 것이다. 예술이 갖는 소통방식과 언어체계의 개발은 기능적으로 완벽한 예술작품을 만드는 데 있기보다는, 일종의 사유 방식으로, 세계와 사물,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로 확장되어 왔다. 그런 점에서 어떤 예술에도 ‘개념적 성찰’과 ‘개념적 전복’을 유도하지 않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처음엔 쓸데없지만, 궁극에는 ‘쓸데있는 짓’만 하라고 강요하는 세상의 틀과 규범을 넘어 자신만의 세계를 되찾게 해주는 대단히 쓸데있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더 이상 작품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프로세스에의 참여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일정하게 퍼블릭(대중)을 대상화하기 보다, 퍼블릭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발견하고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개념으로 바꾸어준다. 그러니 예술교육은 계몽주의적인 관점에서의 ‘가르치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만일 학교예술교육에서 현재 음악, 미술, 체육(무용)이 기능적인 창작 개념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가 문화예술교육사업을 통해 새로운 예술로 접근하도록 동기부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테면 미술을 시각언어로서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하거나, 음악이 소리에 대한 시청각적 상상력을 키워주는 개념을 수용하거나, 무용을 통해 몸의 언어를 일깨워주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필자는 현재 진행되는 문화예술교육사업 가운데 사회연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싶다. 사회연계 속에서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예술을 새롭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하리라 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예술가들의 고민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것은 예술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문제의식이 발현되는 지점에서 늘 예술과 삶의 결합이라는 이념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새삼스럽게 상기해 본다.

 

이제 ‘어떤 예술인가, 어떤 교육인가’를 질문하면서, 예술이 문화적 힘을 발휘하고 실질적인 변화의 힘을 사회 속에서 발휘하는 지점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본다. 물론 예술을 확장된 언어적 기능으로 보고, 풍부한 소통의 기능이자 인간의 생체리듬을 회복시켜주는 계기로. 그리하여 생체리듬에 반하는 모든 사회적 관계와 현실에 저항하도록 하는 힘의 실체로서, ‘인간 존엄과 자율에 대한 신뢰를 일깨워주는 주의력’으로서의 예술로 전제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