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자 탁현민의 ‘두 K씨 이야기’


 

나도 안다. 방송인 K씨와 국회의원 K씨는 같은 성을 쓴다는 것 말고는 나란히 놓고 이야기할 내용이 그다지 없다는 사실을. 굳이 쓸데없는 공통점을 찾는다면 방송에서 본 K씨의 두상도 큼직했고 홍대 앞 도시락 집에서 우연히 본 또 다른 K씨의 두상도 큼직했다는 점뿐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최근 탈세와 성희롱이라는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꽤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른 연예인과 정치인의 세계에서 각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과 정치인은 ‘샴쌍둥이’

 

연예인과 정치인 이 둘은 대중의 지지를 먹고 산다는 점에서 같다. 또 ‘영원한 스타는 없다’는 연예계의 생리를 정치판에 적용해도 무방하다는 점과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정치판의 오랜 아포리즘이 연예계에서도 또한 얼마든지 적용된다는 점을 보면 이들은 무척이나 닮은 꼴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연예인들이 너나없이 스스로를 ‘공인’이라 착각하며 살고 있고, 정치인들은 너나없이 개그감, 예능감 충만하게 사건을 만들어 내는 시대를 살다 보면 이 둘은 샴쌍둥이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둘이 비슷한 이유는 연예인과 정치인이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예인의 탄생은 ‘예술’이 상품화 되면서고, 결국 이들은 문화예술상품의 대리인에 불과하거나 그 브랜드일 뿐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서 상품의 실질적인 주인은 다름 아닌 ‘자본권력’이다. 정치인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민생, 복지, 민주주의와 같은 맹랑한 웅변들을 걷어내고 정치인들을 보자. 결국 그들은 절대적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사학재단이나 재벌과 같이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여러 이익집단, 즉 또 다른 ‘자본권력’의 대리자일 뿐이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서로 달랐다

 

그러나 앞서 언급하였듯 두 K씨를 비교하는 것은 이런 본질적이며 원론적인 공통점 때문은 결코 아니다. 두 사람을 비교하여 이야기하는 까닭은 이들이 문제에 빠졌을 때, 대중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서로 무척 달랐기 때문이다.

 

연예인과 정치인은 결국 대중의 지지를 근력으로 한다. 그리고 이때의 근력이란 인기와 그로 인한 명예, 부를 의미한다. 그들을 단지 하나의 콘텐츠로만 본다면 결국 그들이 얻는 모든 것은 대중과의 교감에 성공하고 대중으로부터 감성적, 혹은 이성적으로 선택 받은 순간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인기란 결코 지속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절정이 있으면 결말이 있듯 전개의 과정에서 위기는 수시로 찾아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변덕스러운 대중의 기호와 갈등이 발생하였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은 인기를 얻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위기를 잘 해결하는 것은 변치 않고 인기를 유지하는 방법이며 또한 그들이 가진 콘텐츠의 생명력을 이끌어 가는 비결이 되기 때문이다.

 

말이 좀 복잡해졌다. 다시 한 번 간단히 정리하자면 연예인과 정치인은 결국 각자가 하나의 콘텐츠이고 이 둘은 대중의 선택을 통해 인기를 얻고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두 K씨의 경우를 보면 대중과의 갈등 타개 혹은 위기의 해법에서 큰 차이를 가졌다는 점에 주목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다.

 

방송인 K씨의 탈세와 국회의원 K씨의 성희롱이라는 반 대중적, 큰 문제가 발생하자 이들은 각자 살아남아 인기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대중과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했다. 방송인 K씨는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인 방송활동을 포기하고 내놓는 방식으로, 국회의원 K씨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인 국회의원직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지키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 표면적으로 방송인 K씨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여 원치 않는 잠정은퇴를 하게 되었고 국회의원 K씨는 계속하여 공직자의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대중은 이 결과를 두고 방송인 K씨에게는 일말의 용서와 동정론을, 국회의원 K씨에게는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물론 대중의 반응과는 별개로 섣불리 잠정은퇴를 한 방송인이 성급했다는 지적도 있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치인의 판단이 옳았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은 다만 현재의 상태일 뿐이며 대중의 반응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남을지, 그리고 이것들이 어떤 결과를 가지게 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스타의 흥망성쇠는 대중에게 달려 있다

 

두 사람을 보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스타는 대중의 욕망으로 잉태되고, 대중의 실망으로 소멸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현재 모습이 어떠하든, 앞으로 그들의 결말을 결정짓는 것은 대중의 마음에 달려 있다. 이제까지 누려 온 방송인 K씨의 인기는 결국 대중의 욕망을 그가 실현해 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부활할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한편 정치인으로서 국회의원 K씨의 생명력은 대중이 실망하면 결국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지금 그가 버티고 있다 해서 끝까지 그럴 수는 있을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결국 방송인 K씨는 복귀할 것이고 국회의원 K씨는 물러날 수밖에 없다고 예견한다.

 

두 사람의 경우를 보며 콘텐츠 기획자들은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스타는, 그리고 콘텐츠는 대중의 욕망으로 잉태되고 대중의 실망으로 소멸한다는 사실을. 대중을 실망시키고도 살아남는 스타란 없다. 대중의 실망을 이기고 살아남는 정치인도 없다. 물론 대중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콘텐츠도 없고 말이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진다지만, 총성 없는 문화 콘텐츠의 전장에서 아름다운 퇴장이란 애초부터 없다. 대중과의 갈등 상황에서 모든 것을 버리면 살고, 지키려 발악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_ 문화콘텐츠기획자•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탁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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