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대한 검열의 역사는 군부독재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른바 ‘음반사전심의’라는 이름으로, 음반의 출시 이전에 그 내용에 대해 심의를 ‘필’하여야만 출시될 수 있었다. 출시도 되지 않은 음반을 심의했다는 건 창작자의 생각부터 재단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의 가치관이나 합의를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이 아니라 강요된 목적과 의도에 맞추어진 창작물만 세상에 나갈 수 있게 하겠다는 의도다. 가히 폭력적이라 할 만하다.

 

술도, 감기약도 모두 유해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당시의 대중음악은 아예 세상에 소개되지 못한 음악들이 부지기수고 이미 불렸던 음악들도 ‘금지곡’으로 사라지는 일은 다반사였다. 시대적 상황을 노래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고, 사랑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도 사회적 허무감을 조성한다는 놀라운 해석으로 금지되었던 시절이었다. 보여주는 것만 보아야 했고 들려주는 것만 들어야 했던 시절, 서슬 푸른 독재시절의 일이었다. 다 지난 일이었다. 아니 다 지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방송프로그램에서 리메이크해 불려진 ‘고래사냥’이라는 노래에 ‘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고 해서 19금 판정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심의결과라는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사전심의는 아니지만 여전히 심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접하며 놀랐고, 그 심의의 내용에 놀랐고, 심의의 결과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동방신기의 ‘주문’이라는 노래 가사가 성행위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청소년보호위원회 심의를 통해 19금 판정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했던 기억이 났다.

’19금’ 가요는 ‘고래사냥’만이 아니다. ‘그게 아니고도(십센치)’, ‘나를 잊어주오(장기하)’, ‘비가 오는 날엔(비스트)’ 등 올 상반기만 무려 310곡이 소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서슬 푸른 독재시절의 회귀라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특히 심의의 기준에 있어 노래가사에 ‘술’이나 ‘감기약’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혹은 가사가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이유로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고선 정말 독재시대 사전검열의 살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져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자유로운 창작을 규제하는 것이 온당한가

 

 

문화를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

 

심의를 강화한다는 것과 심의가 엄격하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현실을 입증하는 것이며 한 사회의 보수적 이데올로기가 강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의란 결국 규제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고, 규제는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 그 이념적 갈등과 세대 간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문화의 심의와 규제는 갈등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문화의 본질에는 저항성, 선정성, 유행성, 그리고 실험성이 있다. 대중문화는 당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한편 당대의 가치관과 인식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어디엔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것을 지금의 인식으로, 혹은 지난날의 가치관이나 몇몇 일부의 생각으로 재단하려는 시도는 위험할뿐더러 폭력에 다름 아니다.

 

 

글_ 문화콘텐츠기획자•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탁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