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기획자란 대중의 기호와 예술적 실험에 균형점을 찾는 사람이다. 이는 자칫 대중의 기호에 무게중심이 쏠리게 되면, 천박하고 소모적인 저급문화를 만들어 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예술적 실험에 무게 중심이 쏠린다면 대중이 없는, 그리하여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자위’ 콘텐츠가 만들어 질 수도 있다.

 

콘텐츠의 성공과 실패, 무엇으로 판단하나

 

사람들은 이러한 콘텐츠의 ‘균형점’을 성공요인이라 부르기도 하고, 대박의 조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는 ‘킬러 콘텐츠’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박이냐 혹은 쪽박이냐, 성공했느냐 또는 실패했느냐의 여부는 그 당면한 상황과 시기에서만 의미를 가질 뿐, 그 콘텐츠가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지와는 별개의 내용이다.

 

즉 성공한 실패 콘텐츠가 있을 수 있고 실패한 성공 콘텐츠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성공과 실패란 철저히 자본의 관점으로 판단한 구별법이다. 예술이 문화이고 문화가 산업이라는 인식아래 문화는 사라지고 산업만을 강조해온 시대에서, 평가의 기준이 ‘돈’이 되느냐 아니느냐로 귀결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영화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혹은 다른 무엇이든, 우리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문화예술이 결코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고 개개인의 감동을 수치로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명명백백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몇 만의 관객과 몇 만의 다운로드, 그로 인해 얼마의 수익이 발생했는지만을 놓고 한 콘텐츠의 가치를 평가하곤 한다. 예술에 대한 가치를 인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가치를 오로지 수익으로만 재단해버리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개봉영화의 티저 영상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우리 시대가 무엇에 근거하여 어떻게 문화예술을 평가하고 재단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장르불문, 소재불문하고 최근의 영화예고편 대부분이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제작비가 얼마 들었는지를 선포한다. 그리고 나서야 누가 나오는지 설명하고 – 때로는 그들의 개런티까지 친절히 설명하며 – 마지막에서야 영화의 내용을 언급한다. 제작비와 스타, 그리고 스타의 몸값 같은 항목이 영화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큰 돈을 들여 이런 스타들을 데리고 만들었으니, 내용은 나중에 고려하고, 일단 보라!’ 티저 영상은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다.

 

다양성이 꽃필 때 문화가 꽃핀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문화예술을 '돈'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문제와 함께, 그 평가가 단지 당대의 기준만을 가진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쓰레기 같다던 로큰롤이 불과 십 년 만에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문화 콘텐츠가 되기도 하고, 마이너리티의 문화인 그래피티나 비보잉이 주류문화의 자리에 편입되기도 한다. 특히나 대중문화는 더욱 그러하다. 당대의 기준과 안목 그리고 수익은 단지 그 시점에서만 유효할 뿐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이는 결국 대중문화예술이란 비주류가 주류를 전복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며, 본질적으로 기존의 것을 부정하거나 그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숙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성공한 실패 콘텐츠와 실패한 성공 콘텐츠가 있다는 것을 알고, 다양한 성공의 기준과 다양한 실패의 요인들을 인지하고 분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다양해지면 더불어 콘텐츠 자체에 대한 평가가 다양성을 지니게 되며, 이는 곧 콘텐츠 자체의 다양성으로 이어질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문화 키워드가 ‘다양성’이라는 사실을 놓고 보았을 때, 이는 우리 문화예술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방향이 아닐 수 없다.

문화 더하기 예술은 곧 삶

 

문화 다양성은 콘텐츠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자본’으로만 판단하는 사회에서는 생겨나기 어렵다. 설혹 어렵게 생겨나더라도 성장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모든 문화예술이 매스미디어라는 거대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거기서 인정받고, 거기서 자본의 가능성을 확인 받아야만 하는 기형적 구조에서는 더욱이 어려운 일이다.

 

생각해 보라. 문화예술이 풍성했던 시대는 언제나 기존의 가치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가치가 등장하던 시절이었으며 관대함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문화는 바로 그러한 토양에서야 비로소 찬란하게 꽃피어나게 된다. 찬란히 빛나는 예술을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인과 기획자라면, 그런 예술이 성장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드는 것은 시민 대중이다.

 

 

글_ 문화콘텐츠기획자•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탁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