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통한 소통과 나눔

책을 통한 소통과 나눔

실버문화봉사단 북북(Book-Book)의 책 읽어주기



가끔씩 아스라하게 떠오른다. 어린 시절,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의 팔을 베고 누워 호랑이 담배 필 적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들던 추억이. 그때는 이미 내용을 줄줄 다 외고 있는 이야기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음성으로 들으면 왠지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이야기 자체의 재미보다도 다정한 목소리를 타고 전해지는 그분들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바로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실버문화봉사단 북북(Book-Book). 그들이 전하는 따스한 이야기에 지금부터 귀기울여보자.


7월 21일 금요일, 오후 4시 30분. 강릉시 포남동에 자리한 성요셉지역아동센터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작은 테이블 몇 개를 붙여놓고 빙 둘러앉은 7명의 아이들은 일주일 만에 만난 실버문화봉사단 선생님들에게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과연 이대로 책 읽기 수업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선생님들의 얼굴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가벼운 율동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선생님들. 이내 산만하게 떠들던 아이들이 노래와 율동을 따라하면서 어수선한 분위기도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다.


어느 정도 아이들이 집중하기 시작하자 곧 본격적인 책 읽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책을 읽어주기에 앞서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함께 책 표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은이가 누군지, 어느 출판사에서 나왔는지부터 살펴본다.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책을 읽는 순서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저 책 한권을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독서습관까지 지도하고 있는 것. 선생님 두 분이 역할을 나눠 주거니 받거니 하며 동화 구연을 시작하자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더욱 바짝 다가앉는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는 작품과 관련된 독후활동이 이어진다. 이날은 옛날에 아이가 뒷간에 빠지면 똥떡을 만들어 먹던 풍습을 직접 재현해 보았다. 아이들은 고무 찰흙으로 조물조물 똥떡을 만들고 제사도 올리면서 즐거운 표정이다.


수업을 마친 선생님들의 얼굴에서는 지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두 분 모두 나이 오십이 넘어 실버세대가 되면 꼭 한 번 이런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었다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해사한 얼굴은 자신이 꿈꾸던 삶을 사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충만함이었다.


책 읽기 활동을 통한 세대 간의 문화 나눔


책 읽어주는 실버봉사단의 활동은 2009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3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50세 이상의 예비실버 및 실버세대가 책의 접근성이 취약한 문화소외시설에 방문하여 다양한 문화적 방법으로 책 읽어주기 활동을 펼치는 사업으로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한 문화소외계층에게는 책을 통한 소통의 기회를 제공하고, 원래 복지수혜대상이었던 실버세대에게 나눔을 펼 수 있는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다.


처음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시범사업으로 출발하였지만 내년 전면 확대 실시를 앞두고 이번에 강릉을 포함한 6개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사)한국문화복지협의회가 주최하고 강릉문화의 집이 주관하며,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강릉 실버문화봉사단은 현재 30여명의 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주 2회 3시간씩 연령에 맞는 책읽기 지도법이나 스토리텔링 기법, 다양한 매체를 통한 동화활용법 등의 교육을 받고 7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실버문화봉사단 참가자들은 2인 1조가 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을 희망하는 기관이나 단체(지역아동센터, 초등학교 돌봄교실, 노인/ 장애인/다문화 복지 시설 등)를 찾아가 50분 정도 수업을 하는데 한 기관이나 단체 당 4회씩 방문하는 것으로 그 횟수를 정해 놓고 있다. 보다 많은 기관이나 단체에 고른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란다.


연륜과 포용으로 세상을 보듬는 실버세대


실버문화봉사단 참가자들의 열의는 처음부터 대단했다고 한다. 이번 사업을 담당한 강릉 문화의 집 김문란 실장은 “교육 받을 때 굉장히 놀랬다. 너무 적극적이라서 부흥회를 하는 것 같았다.”라고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출석률도 높은 편이었고, 참가자 본인들이 나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컸었다.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과 에너지였다. 김문란 실장은 실버 세대가 갖는 장점에 대해 연륜에서 묻어나는 상황대처 능력과 소외계층을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는 품성을 들었다.


“이분들은 상화대처 능력이 좀 뛰어나죠. 세상을 이해하니까 상황에 대한 이해도 높은 것이고, 일단 젊은 사람들 보다는 소외계층을 대하는 품성 자체가 나이 드신 분들에게 적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흔히들 중년을 넘기고 노년을 바라보는, 이른바 실버세대가 되면 인생의 반짝거림도 다 끝났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 시기야말로 수년간 세월을 거쳐 오면서 터득한 지혜와 깨달음으로 진정 빛날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문화예술로 소통하며 누군가의 그늘진 마음에 한줄기 빛이 되어주는 실버문화봉사단을 보면서 이 시대 실버세대들에게 작은 소망하나 기대어 본다. 더욱 반짝이는 은빛으로 세상 구석구석까지 환하게 밝혀주시길…

글·사진_이연하 강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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