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리터러시 literacy’라는 개념이 널리 쓰이고 있다. 우리말로 ‘문식성’이라고 번역되는 리터러시, 과연 이것은 어떤 개념이며 어떤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가? 또한 문화적 리터러시란 어떻게 정의되고,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까?
리터러시 개념의 확장
리터러시는 일견 익숙한 듯 보이지만 그 뜻을 쉽게 정의하기가 어려운 개념이다. 어느 분야에서,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이 말을 쓰는지에 따라 그 뜻이 사뭇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리터러시는 단독으로 사용되기보다 다양한 수식어들이 앞에 붙는 경우가 많다. ‘기능적 리터러시’, ‘비판적 리터러시’, ‘문화적 리터러시’, ‘정보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테크노 리터러시’, ‘복합양식 리터러시’, ‘새로운 리터러시’ 등이 대표적인 예다.
본래 리터러시는 언어교육의 맥락에서 ‘기호를 해독하는 능력’, 특히 문자로 된 텍스트(글)의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음절, 단어, 문장을 유창하게 읽을 수 있는 최소 수준의 문자 해독 능력이라는 좁은 개념으로 사용되었지만, 점차 사회적 맥락 안에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문장 이해와 표현 능력을 뜻하는 기능적 리터러시로 확장되었다. 학교 국어 수업에서 이루어지는 설명문 읽기나 보고서 쓰기 등이 기능적 리터러시의 예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미디어 기술과 문화의 발달에 따라 정보와 사회적 의사소통의 중심이 인쇄매체에서 다양한 시각매체와 복합매체로 옮겨졌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복합양식 리터러시’는 리터러시가 적용되는 범위가 문자 텍스트(글)에서 그림, 사진, 음성, 음악, 동영상 등 다양한 표현 양식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의미를 표현하는 미디어 텍스트로 확장되었음을 강조하는 용어이고, ‘새로운 리터러시’는 의미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이해가 중요해졌음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학교 국어 수업에도 문자만으로 표현된 책이 아니라 글과 그림이 모두 의미 전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림책을 보는 것, 영상 언어로 이야기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 시각적 이미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해 발표하도록 하는 것, 매체에 따라 표현 방식이 달라짐을 이해하도록 하는 등의 활동이 추가된 것도 이와 같은 미디어 발달에 따른 리터러시 개념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화적 유산과 문화적 리터러시
‘기능적 리터러시’가 효율적 의사소통을 위해 문자와 기호를 사용하는 것을 강조하는 용어라면, ‘문화적 리터러시’란 읽기 쓰기의 대상과 관점을 문화로 설정하는 용어이다. 이때 ‘리터러시’는 직접적인 읽기 쓰기 능력보다는 ‘문화적 소양’의 개념에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어 수업의 예를 들면, 설명문이나 보고서를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문학 작품을 감상하고 창작하는 수업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길러주려는 능력이 문화적 리터러시가 된다.
<그렇다면 문화적 리터러시를 기르는 것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어떤 측면에서 도움이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우선 문화예술 영역에서 우리 문화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는 공인된 문화적 전통 혹은 고급문화를 익히는 것을 문화적 소양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문학과 예술의 역사에서 고전 내지 정전으로 일컬어지는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배우도록 함으로써,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문화적 교양 수준을 높이고 이들에게 우리 문화 예술의 유산을 전수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학교 교육에서 문학과 예술의 교육은 이러한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어린이와 청소년들 사이에서 미디어와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커지고, 이에 따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독자의 위치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화를 만드는 창작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문화적 리터러시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는 견해가 늘어났다. 또한 한국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이행해 감에 따라 과연 ‘문화적 유산’의 범위에 무엇을 포함시키고 배제할 것인지가 예전에 비해 그다지 자명한 것이 아닌 것이 될 수도 있게 되었다. 국제결혼이주여성들과 그 자녀들이 늘어감에 따라 ‘엄마 나라’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교육적 요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관심을 반영하는 문화적 리터러시
문화적 리터러시에서 문화를 바라보는 또 다른 중요한 관점으로 제기할 수 있는 것은 주요 작가와 예술가들이 남긴 유산과 전통이 아니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즉 ‘생활양식’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갖는 것이다. 오늘날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가능해진다. 어린이 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특정 작품들만큼이나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즐기는 컴퓨터 게임도 중요한 문화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고급문화 내지 문화적 유산을 중시하는 시각에서 큰 가치를 부여하기 어려운 대중문화에 주목하는 것이 곧 대중문화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봐야 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와 대중문화의 상업적 의도와 메커니즘, 우리의 의식과 취향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디어가 가진 힘과 효과, 즉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말하는가, 특정한 단어, 이미지, 음향 등 기호를 선택하고 배제함으로써 텍스트가 만들어내는 의미 효과는 무엇인가, 이로 인해 누가 이득을 보는가, 그러한 의미는 어떤 사회적 역학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가 등에 관심을 갖는 ‘비판적 리터러시’가 문화적 리터러시와 결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문화적 리터러시에서 중요한 것은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삶에서 지니는 의미를 그들과 함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의 문화적 취향과 즐거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쇄매체와 영상매체로 향유해 온 이야기 문화가 컴퓨터 게임의 형식에서 어떻게 유지되고 변형되는지,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경험은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경험과는 어떻게 같고 다른지에 대해 비교하여 이해하도록 하는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화에 대해 ‘문화적 유산’과 비교하여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러한 시도는 문화적 유산을 중시하는 기성세대와 자신의 삶 속에 존재하는 미디어와 대중문화를 중시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서로의 언어와 문화적 취향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또 서로 가르쳐주며 문화적 소양을 기를 수 있는 흥미로운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글_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정현선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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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았습니다 ^^;
어제 40대 후반의 선지식으로 부터 10대때 읽은 책 한 권을 꺼내면서 10때 읽은 책의 향수를 말해 주면서 이 시대의 기계가 따라 가지 못하는 그 때의 마음은 그 책의 질감에 남아 있다는 말이 떠 오릅니다.
아직 대중적으로 리터러시를 붙여서 쓰지는 않는데 되도록이면 우리나라 말로 바꾸어서 썼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잘 쓰지않는 영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말끝마다 리터러시 리터러시.. 익숙해지지않는데다가 문화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