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기획자 탁현민의 문화와 삶 이야기


 

21세기가 문화의 시대인 까닭은 문화가 단지 예술의 영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문화라는 새로운 인식의 결과이다. 이러한 인식의 배경은 예술의 고매함과 비현실성에 대한 반성이며 동시에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예술이란 결국 현실 너머의 무엇을 보여주는 것이되 그것으로 현실이 바뀌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해야 한다는 의지의 소산인 셈이다.

 

문화예술의 자리매김을 위하여

 

이는 음악, 미술, 연극, 영화와 같은 예술 장르뿐 아니라. 음식, 패션, 여행, 주거와 같은 삶의 전 부분에 문화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붙이고 또 어색하지 않게 사용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다. 따라서 문화예술은 ‘문화에서의 예술분야’로 국한 시켜서는 안되며 ‘문화+예술’로 이해해야 하며 이런 이해로부터 문화예술의 시대성을 획득하게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전까지의 문화예술은 오랫동안 특정계급과 특정 이데올로기를 담아내는 수단으로서 전용되어왔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도 분명하다. 그러나 이 ‘고전’이라는 것은 철저히 서유럽 중심의 중세 봉건 이데올로기를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음악평론가 강헌의 말처럼, “대체 16세기에서 18세기 무렵 서유럽의 몇몇 나라에서 유행했던 음악을 고전음악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답하기란 쉽지 않다. 단지 오래되었다고 또 많은 사람들이 즐긴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문화권에 전혀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이러한 예술이 ‘고전’이 된다는 것은 기실 어떠한 합리적 배경도 찾을 수 없다. 다만 한국음악계는 대부분 이들의 음악을 공부하고 왔거나 이러한 음악에 심취한 사람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만 찾아 낼 수 있을 뿐이다.

 

습관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굴절되어 있는, 그리고 종속되어있는 우리 문화예술의 자리매김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의 고전이 ‘서양고전음악’에 있지 않고 ‘국악(이도 썩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에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 없는 문화예술교육은 역사에 대한 오독과 예술에 대한 편견을 전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고전을 통해 문화예술의 대중성을 고민하다

 

고전에 대한 재정립은 문화예술의 대중성을 고민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맹신하고 있는 예술의 역사와 개념이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수’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래서 우리가 예술로부터 소외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예술로부터의 소외… 우리는 오랫동안 예술은 우리의 일상과는 유리되어 있는 무엇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는 대중들의 예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 냄새’ 나는 ‘대중예술’은 당대 이데올로기에 의해 말살되거나 기록되어지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대중은 대중으로서 존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대중이 대중으로서 존재하지 못했다는 말은, 이미 많은 대중문화전공자들의 말처럼, 근대적 대중의 탄생이 프랑스 대혁명 이후부터였다는 주장을 떠올리게 된다. 이들의 주장은 간단히 말해 ‘근대적 대중이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권리, 즉, 참정권이 없었던 시대에는 비록 그가 살고 있었으되 사는 것이 아니었고,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중세 천년의 기록에 노예나 농노들과 같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문화란 거의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의 문화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기록 되어질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이후 무산계급의 참정권이 제한적이나마 허용되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싸움을 통해 일정부분 확보해낸 ‘대중+문화+예술’은 이제야 비로소 소수의 문화예술, 가진 자의 문화예술이 아니라, 다수의 문화예술, 즉, 대중문화예술의 시대에 이르기 된 것이라 하겠다.

 

문화 더하기 예술은 곧 삶

 

이쯤 되면 문화예술이 예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삶 전반의 ‘문화+예술’이 된 까닭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렇다. 문화는 삶이다. 사람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삶이 곧 문화이며 예술이 단지 피안의 세상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상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곧 생각의 진보이며 문화의 진보인 것이다.

 

문화가 삶의 총화라는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미 발빠른 자본주의 사회와 기업들은 이러한 흐름을 누구보다 빠르게 읽고 자본화해내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교육도, 새로운 문화콘텐츠의 생산도, 바로 여기서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문화는 삶이고 대중의 일상이며 현재와 현재를 기반한 미래를 꿈꾸게 하는 무엇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이전의 문화예술과 우리시대의 문화예술이 분명한 차이를 가지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제 비로소 ‘대중문화예술’이 꽃 필 때가 된 것이다.

 


 

글_ 문화콘텐츠기획자•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탁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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