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실과 바늘처럼 따라오는 게 바로 음악이 어디에서 시작했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대부분 이 질문의 답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바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서구중심적인 문화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주체적인 시각을 가지고 바라봤을 때 음악은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오늘은 김병오 음악학자와 함께 음악의 시작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주짜이유의 <악률전서>에 나타난 음고 계산식.
음계의 비례식이 소수점 24자리까지 섬세하게
계산되어 있다.
‘음악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한국에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었을 법한 질문인데,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답이 술술 따라나오게 돼 있다. ‘바하.’ 그리고 농담처럼 이어지는 이야기, ‘그러면 헨델은 여자야?’ 한국 사람들이 묻고 한국 사람들이 대답하는 오늘날 한국 음악 사회의 웃기도 뭣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도 부담스런 풍경이다. 초등학교 시절 시험에 등장하기도 했던 이 질문의 연원이 그리 정확한건 아닌데, ‘악성’ 베토벤이 바흐를 일컬어 ‘화성의 아버지’ 라고 칭송했던 것에서 비롯된 것 아니었을까 싶다. ‘아버지’라는 비유가 대개 그렇듯, 베토벤은 현대적인 화성음악을 바흐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았는데 과연 이것이 적절한 평가였을까. 18세기 이래 서구 사회가 일구어 낸 문화적 성취는 만만치가 않아서 오늘날 상당수 나라들은 서구로부터 비롯된 문화를 자신들의 문화와 동일시하며 살아가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한국 등지의 비서구 국가들이 발전된 외부의 문화를 적극 도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의 수많은 이치를 서구의 관습과 전통을 중심으로 편협하게 이해한다거나 혹은 서구에 대한 열등감에 빠져드는 것일 텐데 이는 잘못된 정보와 교육에도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특히 18세기 서유럽의 화성음악을 정전 삼아 제도 교육 시스템을 유지해온 한국 음악의 경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바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인 ‘평균율’만 해도 그렇다. 베토벤이 바흐를 칭송하면서 ‘화성(harmony)의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무엇보다도 당시로서는 혁신적 조율법이었던 평균율 음악을 바흐가 앞서 개척한 덕택이다. 평균율이 만들어지면서 현대적인 화성 음악이 가능해졌고 웅장한 기악 음악의 시대가 꽃을 피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흐는 평균율을 훌륭히 활용했던 사람이긴 하지만 평균율의 원리를 만들어낸 당사자는 아니다. 평균율은 바흐가 태어나기 100년 전, 서유럽이 아니라 우리 이웃나라인 중국의 주짜이유(朱載堉; 1536-1610)에 의해 가장 먼저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1584년 주짜이유가 집필, 편찬한 악률전서(樂律全書)에는 평균율의 상세한 수학적 계산법이 등장하는데 일부 연구자들은 이 서적이 서구로 전파되면서 서구에 평균율이 전해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므로 베토벤이 이야기한바 ‘화성(harmony)의 아버지’라는 영예의 칭호는 바흐뿐 아니라 중국의 주짜이유도 함께 누릴 자격이 있겠으나 우리는 그런 사실을 모른 채로 살아왔다. 많은 서양 음악서들이 이처럼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누락해 온 것은 악률전서의 유럽 전파 경로를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랬으리라고 믿고 싶다.
귀도가 살았던 집에 걸린 현판의 모습. 계이름 창시자로서의 귀도를 기리고 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혹은 솔페지(solfege)라고 부르는 계이름 체계에 대한 유래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계이름의 유래를 논할 때, 서양의 음악사가를 비롯한 대부분의 음악학자들은 예외 없이 이탈리아 출신의 귀도(Guido Monaco; 991-1033)가 계이름을 창시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귀도는 누구보다도 중요한 인물로 묘사되고 기억되지만 중동 지역의 학자들은 입장이 또 다르다. ‘도레미’로 표시되는 현행 계이름이 시작된 것은 이슬람 지역에서부터라는 주장이다. 뒤러무파살랏( درر مفصّلات)이라는 이슬람 전통의 음체계가 서양으로 전파된 것이라 말하고 있는데 실제 발음을 비교해보면 ‘do-dāl, re-rā’, mi-mīm, fa-fā’, sol-ṣād, la-lām, ti-tā’’로 되어 있어서 신빙성이 꽤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음악 교양서와 교과서들은 여전히 유럽의 귀도만을 언급한다. 별다른 의심 없이 서양으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음악문화가 전파되어 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음악의 진짜 아버지는 누구인가. 사실은 이러한 질문 자체에 함정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것은 유럽에서 또 어떤 것은 중동에서, 또 어떤 것은 중국과 한국에서 시작되었을 것이고 그마저도 국지적인 고증에 따라 수없이 바뀌고 뒤집히게 마련 아니겠는가. 그러니 바깥에서 아버지, 원조를 찾고 외우는 것으로서 마음에 음악적 교양을 품으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일상과 유리된 음악의 연원을 묻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아버지같고 어머니같은 음악이 과연 무엇이었던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이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음악이 언제 어디서 내 마음으로 찾아들었던가에 대해 기억하고 그때 거기를 찾아나서는 것 말이다. 우리 모두에게 새해의 음악이 그렇게 시작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글쓴이_ 김병오 (음악학자)
전주대학교 연구교수, 라디오 관악FM 이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음악사를 전공했다.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OST 작업 및 포크 음악을 토대로 전통음악과의 퓨전을 추구하는 창작 작업을 병행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소리의 문화사』가 있고, 「한국의 첫 음반 1907」, 「화평정대」, 「바닥소리 1집」 등 국악 음반 제작에 엔지니어 및 프로듀서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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