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알랭 드 보통, 건축의 일상성에 대해 발견하다

 

알랭 드 보통 저 | 정영목 역
청미래 | 2011.08.10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집에 대해 관심을 갖기 어렵다. 아주 어린 시절이 아니라 밖으로 나돌아 다니기 시작하는 청소년기 이후의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집이란 밤이 되면 돌아와야 하는 곳일 게다. 그곳은 정확히 말해서 나의 집이 아니라 부모님의 집이며, 통제와 규율의 집합체일 뿐이다. 심지어 신혼집을 꾸밀 때에도 마찬가지다. 허둥지둥 집을 구하고, 신혼집이라는 패턴이 있는 살림살이를 꾸며야 하기에, 나만의 삶과 생활이 녹아들어가기 힘들다.

 

일상성의 발명가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 앞부분에서 집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집이란 공허를 즐기는 표시가 나타나는 곳이며, 식견을 갖춘 증인으로 성장하는 곳이며, 물리적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성소가 되는 곳이라고.

 

집은 정체성의 수호자였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소유자들은 밖으로 떠돌던 시절을 끝내고 돌아와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했다. – p.11

 

그렇다면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행복한 건축이란 무엇일까. 그는 건축의 의미를 집과 사람의 관계에서 찾고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있는 환경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다.

 

건축의 의미를 믿을 때 그 전제는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는 관념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이상적인 모습을 우리 자신에게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건축의 과제라는 신념이 생긴다. – p. 13

 

이 책이 다른 건축 관련 서적과 차별성을 가지는 것도 바로 이 점에서 비롯된다. 즉, 건축전문가가 쓴 건축에 관련된 책이 아니라,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작가가 건축이라는 전문 분야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우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일상의 언어로 우리의 행복에 어떻게 건축이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이 들려주는 건축의 이야기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예를 들어 18세기에 호러스 월폴이 세계 최초로 고딕 주택을 짓는 이야기가 건축 교과서에 실린다면, 대략 이런 식으로 언급될 것이다.

 

호러스 월폴은 대표적 계몽주의자로서 18세기 고딕 리바이벌의 대표작으로 튀크넘의 스트로베리 힐을 지었다. 고딕 리바이벌을 앞장서 이끌었으며 고딕 건축사에 관한 초기 연구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 네이버 캐스트에서 발췌

 

그렇지만 알랭 드 보통은 호러스 월폴의 고딕양식 주택짓기가 개인들의 집짓기에 끼치는 영향에 포커스를 두고 이야기한다. 18세기 후반 호러스 월풀은 고전 교육을 받고 자라났음에도 불구하고 중세교회의 특징을 개인 주택에 적용하여 세계 최초로 고딕 주택을 짓기로 결정을 내린다. 이전에는 다른 마을에서 어떤 집을 짓고 사는지 알기도 어려웠던 그런 시절이다. 대부분의 집들은 동네마다 가장 많이 나는 재료를 이용해서 같은 형식으로 지어졌다. 그런 시점에 호러스 월풀이 개인 주택에 고딕 양식을 적용한 것이다.

 

이후 스트로베리 힐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어 고딕양식이 부활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각자 개성적인 자신의 집짓기를 시작하게 된다. 다양한 양식의 집짓기 기술을 보유한 건축가들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집짓기 패턴 북이 등장하여 스스로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에게 설계도를 제공하기에 이른다. 비로소 집은 개인에게 말을 하는 존재로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든 건축 양식은 자신이 이해하는 행복을 이야기한다. – p. 113

 

우리에게는 물리적인 집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의미의 집도 필요하다. 우리의 약한 면을 보상하기 위해서다. 우리에게는 마음을 받쳐줄 피난처가 필요하다. 세상의 아주 많은 것이 우리의 신의와 대립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바람직한 모습을 바라보게 해주고, 중요하면서도 쉬이 사라지는 측면들이 살아 있도록 유지해줄 방이 필요하다. – p.117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좋은 건축을 통해 조금이나마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생각이 마을 전체와 도시 전체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택지개발 회사에 의해 사라질 운명인 들 위에 어떤 집이 세워질 것인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건축은 우리의 뜻에 의해 지어지는 것이기에, 더 나은 쪽으로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 그리고 마을의 정체성, 도시의 정체성을 살리는 행복한 건축이란 무엇일까. 이 책을 통해 알랭 드 보통이 던져준 질문거리다. 적어도 나의 집이라는 표현 대신 부동산이라는 표현이 앞세워지고, 투자 혹은 투기의 경제적인 목적이 우선되는 풍토 속에서 행복한 건축을 찾기란 쉽지 않을 듯싶다.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집이 주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이즈음. 나의 집이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