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을 위한 변명_화가의 노트

한 시대를 고민한 예술가들의 육성을 듣다

허싼포 엮음 | 차혜정 옮김
시그마북스 | 2013.04.10

문학이 아닌 회화나 조각을 하는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얘기하려고 했을까? 그리고 그들의 작품에 나타난 형태와 색채, 다양한 기법은 어떤 철학적 배경과 예술학적 고민의 산물일까? 이러한 우리의 궁금증에 대해 앙리 마티스는 ‘한 화가가 대중에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은 자기 작품을 추천할 목적 외에도 회화예술에 대한 생각을 제시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하며 회화예술가의 글을 통한 자기표현에 대해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바로 이어서 ‘사실 화가의 가장 좋은 대변자는 그 작품이다’(p48)고 하여 작품을 통한 표현이 우선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살았던 위대한 화가(세잔, 고갱, 마티스 등)와 조각가(움베로토 보초니, 나움 가보, 헨리 무어) 14명의 글과 인터뷰 내용, 친구나 동생에게 보낸 편지 등을 엮은 것이다. 이제 그들의 작품도 아니고 다른 비평가의 글도 아닌 예술가 자신의 말과 글을 통해 그들을 이해해 보자.

세잔과 피카소 그리고 입체파

세잔은 1906년에 죽었지만 그는 1908년에 탄생한 입체파(Cubism)의 선구자였다. 세잔은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연을 원기둥, 구형, 원뿔형으로 다루고 싶다는 나의 견해를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네’ (p12)’, ‘화가는 자연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부터 전념해야 비로소 창작을 시도할 수 있다’(p14)고 하였다. 이렇게 사물을 구축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정확하게 표현하려 했던 세잔은 피카소의 초기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후기에 피카소는 ‘우리는 입체를 발견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우리 내면의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했을 뿐이다’, ‘사람들이 입체파에서 터득한 것은 오브제에 대한 표현을 지나치게 숭배했다는 사실이다’(p131)라고 주장하면서 세잔의 ‘기교’에서 벗어나 ‘표현’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앙리 마티스와 야수파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미술운동의 하나인 야수파(Fauvism)는 주정적인 경향을 대표하며 입체파와 대비된다. 이러한 야수파의 대표적인 화가인 앙리 마티스는 다양한 작품뿐만 아니라 <화가 수필>이라는 글을 통해 회화와 예술에 대한 탁월한 의견을 피력하였다.

‘우선 내가 추구하려는 것은 표현이다’, ‘구도는 화가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요소를 의식적으로 배치하는 예술이다’(p50) ‘색채를 조화시켜 놓거나 불협화음으로 표현하는 것은 둘 다 사람들을 유쾌하게 하는 효과를 자아낼 수 있다’(p52)

가장 솔직한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던 마티스는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등의 원색을 주로 사용하였다. 또한 ‘구도’나 ‘색채의 조화’나 ‘색채의 불협화음’까지도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다다이즘과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은 과거의 예술 관념을 탈피한 화가로 꼽힌다. 또한 다다이즘, 미래주의 및 초현실주의의 원류로 알려져 있다.‘나의 창작 원칙은 포름을 파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동 중인 사람을 하나의 선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고 여겼다. 단순화에 단순화를 거듭하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나의 목적은 밖이 아닌 안을 향했다’(p97-98)에서 나타나듯이 뒤샹은 회화의 외재적 형태에서 벗어나서 관념을 재창조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다다이즘은 극단적으로 형체 회화에 반기를 든 일종의 형이상학적 사조였다’(p101)고 주장한 뒤샹은 1917년 4월 10일 뉴욕의 그랜드센트럴갤러리에서 열린 독립미술가협회 전시회에 출품한 ‘샘(Fontaine)’을 통해서 예술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시대의 이정표, 그 시대의 낙인’

어떤 화가의 글은 너무 짧고 배경 설명이 전혀 없어서 그냥 입문서로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책이라고 판단된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저마다 그 시대의 낙인을 지니고 있다.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그 낙인이 가장 깊이 박힌 사람이다’(p62)는 마티스의 말이나 ‘화가에게는 자신의 이정표가 있다. 사실상 그는 ‘시대’라는 이정표의 노예이다’(p62)라는 뒤샹의 말처럼 한 시대를 고민하고 위대한 예술혼을 불태우며 살았던 예술가들 그들의 육성을 읽는 맛은 괜찮다.

글 ㅣ 양순호(작가)

“예술이 삶의 위로가 되는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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