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몸에서 피어난 순간

‘피어나다 프로젝트’가 드러낸 몸의 감각

인간은 누구나 후련해지길 원하며 발버둥 친다. 그러나 쉰일곱의 안무가 김남식은 ‘무엇도 후련한 게 없는 것이 이 나이대’라고 덤덤히 고백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거창한 ‘예술가’라는 수식어 대신, 그저 ‘춤추는 남자’라고 소개한다. 안무가도, 예술감독도, 교육자도 아닌 말. 명함 위에 올려두기엔 다소 단순하고, 그래서 오히려 정확하다. 춤을 통해 세상과 관계 맺어 온 그와 ‘2025 피어나다 프로젝트: 너의 손을 잡고 피어나다!’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눴다.
78점의 예술, 무시당하지 않을 권리
그는 자신의 작품을 ‘78점짜리’라고 말한다. 관객이 지불한 관람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 그들의 일상에 예상치 못한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는 예술적 타협이 아니라, 완벽에 대한 강박을 경계하는 태도다. 100점을 향해 스스로를 소진하기보다, 78점의 여백을 통해 관객과 소통할 틈을 만든다.
“위대한 걸 만들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다만 무시당하지는 말자.”

– 김남식 안무가·댄스트룹-다 대표

전라남도 장성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왕복 서너 시간이 걸리는 길을 오가며 춤을 배웠던 소년에게 예술은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였다. 춤을 향한 지독한 열정을 안고 먼 길을 오갔던 소년은, 이제 국경을 넘나들며 몸의 언어로 감동을 전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 2010년 에콰도르
몸을 깨워 스스로 피어나도록
김남식의 시선은 이제 극장의 화려한 조명을 넘어 사회의 가장 어둡고 낮은 곳으로 향한다. 그는 오랫동안 사회적 재난과 상처의 현장 곁을 맴돌았다. 2010년 에콰도르에서 만난 아이들의 순수한 선물은 그에게 장식적인 영감이 아닌, 예술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후 그는 노숙자, 정신질환자, 자살 위험 청소년 등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이들’과 몸으로 부딪치는 여정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상처 입은 이들 곁에서 거창한 위로 대신 함께 몸을 부딪치는 쪽을 택했다. 대단한 치유를 말하기보다, 그저 ‘몸은 거짓말을 안 한다’고 믿을 뿐이다.
그 중심에는 ‘피어나다 프로젝트’가 있다. 피어나다 프로젝트는 청한장학회의 후원으로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은평과 함께 진행한 은둔·위기 청소년 대상 무용 워크숍이다. 사회의 속도에서 미끄러진 아이들, 혹은 스스로 멈춰 선 아이들. 그는 왜 이들에게 ‘무용’이라는 언어를 건넸을까.
“말은 이미 너무 많이 들었을 거예요. 조언이든 훈계든 위로든. 그런데 몸으로 자기 존재를 느껴본 적은 없을 거예요.”

– 김남식 안무가

그는 건강한 정신이 건강한 육체를 만든다는 해묵은 격언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정신병원 강당에서 해만 바라보던 소년, 수치심에 팔조차 들지 못하던 소녀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심리 상담이나 약물이 아니라, 자기 몸의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다. ‘피어나다 프로젝트’는 바로 그 지점, 마비된 감각을 깨워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게 하는 데서 시작된다. 여기서 춤은 미학적 도구를 넘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자극이자 자존감을 회복하는 가장 원초적인 언어가 된다.
“몸이 깨어나지 않으면 정신이고 나발이고 없어요. 몸이 먼저 열려야 마음도 따라오는 법입니다. 수치심 때문에 자기 몸도 제대로 못 건드리는 애들한테 ‘움직여도 괜찮다’라는 걸 알려주는 게 우선이에요. 몸이 먼저 열려야 그제야 마음도 슬쩍 따라오는 법이죠.”

– 김남식 안무가

  • ⓒ성남훈 작가
낯선 몸과의 화해, 각자의 숨 고르기부터
청소년기는 급격한 신체 변화의 시기다. 낯설어진 몸은 때로 가장 큰 적이 된다. 타인의 시선이 날카롭게 의식되고, 몸은 자꾸만 비교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춤은 어떤 이에겐 해방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또 하나의 장벽이 된다. 그는 몸으로 그들을 어떻게 설득했을까.
프로젝트 초반, 아이들은 몸을 드러내는 일에 주저했다. 그는 ‘잘 추는 법’을 가르치는 대신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시간을 먼저 건넸다. 서 있기, 앉아 있기, 숨쉬기. 워크숍은 늘 호흡으로 시작하며 누군가의 리듬을 맞추기보다, 각자의 리듬을 찾아갔다. 아이들의 움직임에 개입하되, 밀어붙이지 않았고, 한발 앞서 이끌기보다, 반 발 뒤에서 기다렸다. 워크숍 초기부터 무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아이들의 눈빛이었다.
“처음 왔을 때 아이들은 절대 눈을 안 마주쳐요. 늘 바닥만 보고 있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있죠. 자기 몸도 낯선데 남의 시선은 얼마나 무섭겠어요. 그런데 워크숍이 거듭되면서 이 눈들이 조금씩 들려요.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보고, 또 옆에 있는 친구를 봐요. 특히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그 눈빛은 잊을 수가 없어요. 처음의 그 불안하고 고립된 눈이 아니라,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걸 서로 확인하는 눈빛, 그 연대감이 서려 있는 눈을 봤을 때 정말 울컥하더라고요. 춤은 결국 관계의 경험이거든요. 내 눈이 상대의 눈과 마주치고, 거기서 ‘우리가 함께 있다’는 증거를 찾아내는 것. 무대 위에서 아이들이 보여준 그 단단한 눈빛 하나만으로도 이 프로젝트는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 김남식 안무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그가 강조한 것 중 하나는 기록이었다. 사진, 영상, 다이어리. 행위를 하는 즉시 소멸하는 움직임과 달리, 기록은 남겨진다. 기록은 내가 거기 있었다는 것, 내가 움직였다는 것, 내가 누군가와 호흡을 나눴다는 것, 내가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를 행했다는 것의 증명인 셈이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목격했으면 했거든요. 내가 말로 ‘너 잘하고 있어, 너 변했어’ 해봐야 소용없어요. 그건 그냥 아저씨의 위로지. 그런데 자기가 움직이는 영상을 직접 보고, 직접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그건 부정할 수 없는 팩트가 돼요.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거죠. 기록은 단순히 보관용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다시 서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예요.”

– 김남식 안무가

  • ⓒ성남훈 작가
변화보다 함께 버티는 시간
후암동 골목에서 시작해 한강을 지나 무대로 이어진 여정 속에서, 그가 발견한 ‘존엄’의 순간은 거창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존엄’이라는 말을 너무 어렵게 생각해요. 나는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아이들한테서 그 답을 봤어요. 공연 직전에 긴장해서 덜덜 떨고 있는데, 한 아이가 옆에 있는 친구 의상을 조용히 정리해 주더라고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죠. 또 무대 위에서 누군가 실수를 했을 때, 예전 같으면 비웃거나 외면했을 아이들이 먼저 손뼉을 쳐줘요. 그게 존엄이에요.”

– 김남식 안무가

몸을 존중받은 아이는, 타인의 몸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그가 말하는 예술의 가치는 거창한 수사가 아니라, 이런 태도의 축적에 가까웠다. 그는 피어나다 프로젝트의 기록들이 또 다른 고립의 시간을 지나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신호가 되길 바란다. 동시에 사회를 향해서는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아이들의 침묵을 게으름으로 오해하지 않았는지, 그들의 멈춤을 문제로만 규정하지 않았는지.
“존엄은 몸이 완벽하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서로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내 몸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은 아이는 남의 몸도 함부로 대하지 않거든요. 무대 위에서 완벽한 동작을 보여주는 것보다, 옆에 있는 친구의 호흡을 기다려주고 그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 그게 우리가 춤을 통해 배워야 할 진짜 예의죠. 나는 우리 아이들이 이번 무대에서 보여준 그 ‘서로를 향한 예의’가 웬만한 프로 무용수들의 화려한 테크닉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고 믿습니다.”

– 김남식 안무가

‘피어나다 프로젝트’는 아이들을 바꾸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방식을 조금 바꾸는 시간에 가까웠다. 피어난다는 것은 거대한 꽃을 피우는 일이 아니라, 닫혀 있던 몸이 조금 열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가 뿌린 ‘피어나다’의 씨앗이 어디서 어떤 꽃을 피울지 당장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멈추지 않고 그 곁을 지키며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이들을 바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같이 있었던 거죠. 몸으로 같이 버텼고, 같이 서 있었던 거예요. 그게 다예요.”

– 김남식 안무가

  • ⓒ성남훈 작가
2025 피어나다 프로젝트 ‘너의 손을 잡고 피어나다!’
서울문화재단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은평의 개관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진행한 ‘피어나다 프로젝트’는 청한장학회의 후원으로 마련된 청소년 대상 무용 워크숍이다. 급격한 감정변화를 겪는 청소년이 ‘몸의 움직임’을 통해 건강한 자기표현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배우며 내면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워크숍은 2025년 9월 용산구 아동보육시설 혜심원에서 6명의 청소년과 첫 만남을 시작으로 40일간 이어졌다. 혜심원 앞 골목에서 시작한 이들의 움직임은 남산과 한강 등 서울의 여러 공간을 거쳐 2025년 11월 쇼케이스 공연과 결과전시로 여정의 마지막을 공유했다. 워크숍과 창작 지도에는 김남식 안무가를 중심으로 김보성, 허명원 무용수가 참여했으며, 워크숍 과정 기록에 다큐멘터리 사진가 성남훈 작가가 함께했다.
김율리아
김율리아
춤을 통한 해방을 꿈꾸며, 예술로 관계를 잇는 연결자이다. 무용학과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문화예술단체 아르틴(ARTIN)의 대표로 삶과 예술을 매개하는 활동을 펼쳐왔다. 전주 꿈의 무용단 감독으로서 ‘엉뚱한 예술가’를 길러내는 데 진심이며, 전북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미래 예술교육가 양성에 힘쓰고 있다. 또한 성남예술교육가네트워크 STAN:D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지역 문화예술교육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발걸음을 보태고 있다.
yulia102@naver.com
인터뷰 영상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영상 제공_서울문화재단·김남식 안무가
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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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훈 2026년 03월 14일 at 10:17 PM

    장애 무용수들이 자신의 신체를 한계가 아닌 하나의 예술적 언어로 승화시키는 모습이 참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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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3월 15일 at 9:43 AM

    닫힌 몸에서 피어난 순간
    ‘피어나다 프로젝트’가 드러낸 몸의 감각

    공감이 가네요

  • author avatar
    안기현 2026년 03월 15일 at 10:19 AM

    닫힌 몸에서 피어난 순간
    ‘피어나다 프로젝트’가 드러낸 몸의 감각
    기대만점이네요

  • author avatar
    이재은 2026년 03월 17일 at 10:08 AM

    크게 감명 받았고 많이 느끼며 배웁니다.
    김남식 안무가 님 이메일 주소도 기재가 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 author avatar
    황윤성 2026년 03월 21일 at 9:44 PM

    뮌가 흥미롭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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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절의힘 2026년 03월 31일 at 3:35 PM

    🌿 “몸이 깨어나야 마음도 따라온다”는 김남식 안무가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아요.
    단순한 무용 워크숍이 아니라, 닫혀 있던 몸과 마음이 다시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정말 감동적인 프로젝트였어요.

    아이들이 ‘잘 추는 법’보다 ‘움직여도 괜찮다’는 감각을 회복했다는 부분은 공감이 되네요.
    완벽함 대신 서로의 눈빛으로 존재를 확인하는 모습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예술인지요.

    🌸 이 글을 읽으며, 예술의 본질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에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김남식 안무가와 아이들의 여정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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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훈 2026년 03월 14일 at 10:17 PM

    장애 무용수들이 자신의 신체를 한계가 아닌 하나의 예술적 언어로 승화시키는 모습이 참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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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3월 15일 at 9:43 AM

    닫힌 몸에서 피어난 순간
    ‘피어나다 프로젝트’가 드러낸 몸의 감각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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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3월 15일 at 10:19 AM

    닫힌 몸에서 피어난 순간
    ‘피어나다 프로젝트’가 드러낸 몸의 감각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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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은 2026년 03월 17일 at 10:08 AM

    크게 감명 받았고 많이 느끼며 배웁니다.
    김남식 안무가 님 이메일 주소도 기재가 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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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윤성 2026년 03월 21일 at 9:44 PM

    뮌가 흥미롭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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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절의힘 2026년 03월 31일 at 3:35 PM

    🌿 “몸이 깨어나야 마음도 따라온다”는 김남식 안무가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아요.
    단순한 무용 워크숍이 아니라, 닫혀 있던 몸과 마음이 다시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정말 감동적인 프로젝트였어요.

    아이들이 ‘잘 추는 법’보다 ‘움직여도 괜찮다’는 감각을 회복했다는 부분은 공감이 되네요.
    완벽함 대신 서로의 눈빛으로 존재를 확인하는 모습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예술인지요.

    🌸 이 글을 읽으며, 예술의 본질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에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김남식 안무가와 아이들의 여정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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