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개념의 세계가 끝없이 부딪히는 그곳에서

민병은 지혜로운 봄 대표

문화예술교육은 여러 조건과 감각, 기대와 경험이 겹치며 형성된다. 어떤 움직임은 분명하고 어떤 흐름은 말해지지 않은 채 지나간다. 보는 사람마다 장면이 다르고 어떤 의미는 문서에 남지 않으며 어떤 변화는 경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하나의 관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 상황과 현상 앞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러한 움직임들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감각이다. 민병은 지혜로운 봄 대표가 그간 포착해 온 장면과 생각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교육에서 비평이 놓일 수 있는 위치와 역할’을 살펴본다.
현장, 관계의 시간이 남긴 깊은 흔적
Q.

그동안 어떤 활동을 이어오셨는지, 그리고 요즘 관심 있게 살피는 것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A.

문화예술교육이 정책 언어로 등장하기 시작한 건 2004년 ‘학교·지역사회 연계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 때부터였다. 2005년에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생기고, 법과 제도가 갖춰지면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이 제도권 안에서 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 시기에, 지역에서 ‘문화의집’ 공간을 운영하면서 주민들과 만났다. 학교와 지역을 잇는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2년 정도 진행했고, 이후에는 문화공간 운영자로서 지역 주민들이 드나드는 현장을 오래 지켰다.
초기에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이 아니라 ‘소외계층 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복권 기금이 내려오던 시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소외계층입니다”라고 스스로를 호명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구조였던 셈이다. 그 언어에 대한 불편함, 시혜의 논리가 깔린 정책 구조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럽게 비평적 시선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문화예술교육이 딱 한 문장으로 정의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고 느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계속 움직이는 무언가, 정답보다는 질문의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감각이 있었다.
요즘의 관심은 그동안 당연하게 불러온 ‘현장’이라는 말을 다시 묻는 데 있다. 현장, 정책, 행정, 예술가, 참여자 사이의 간극이 많이 벌어져 있는데, 이 간극을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증상으로 보고 싶다. 그리고 언어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Q.

그간 많은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보셨을 것 같다. 인상적이었던 현장 경험이 궁금하다.

A.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작은 아파트 단지로 구성된 동네가 있었다. 신혼부부와 노인, 어린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함께 사는 지역이었다. 그분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은 이것이다. “초등학생이 되면 학교가 뭔가를 해주는데, 미취학 아동은 갈 곳이 없다.” 주변에 이미 수많은 문화센터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에, 비슷한 강좌 하나를 더 얹어봐야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남들이 다 하는 것 말고, 이 동네에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건 뭘까?’ 그때 떠오른 문장이 바로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 데서나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와 노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요즘 아이들은 흙을 밟을 여유, 어른의 일을 곁에서 보는 기회, 몸을 마음껏 써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나. 그래서 일부러 미술 전공자보다 아이들과 정말 잘 노는 선생님을 찾았다. 찰흙을 바닥에 깔고 “버릴 옷 입고 오세요”라고 안내한 뒤 아이들이 구르고, 밟고, 만지는 시간을 만들었다. 집에서 가져온 프라이팬에 소금물을 끓여 색소금을 만들기도 하고 여름에는 색 얼음을 얼려 그림을 그리고, 겨울에는 눈 오는 날 주전자를 들고 나가 눈 위에 길을 그렸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건, 교육 콘텐츠 이전에 일상의 감각을 온몸으로 허락받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만드는 사람은 외부 전문가보다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선생님일 때 관계의 깊이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도 느꼈다. “마을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선생님이 되는 순간, 그 선생님은 아이를 바라보는 동공의 깊이가 달라진다.”라는 한 문장은 저에게 아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작은 선택이 교육의 구조 전체를 바꾼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Q.

프로그램 이후에도 참여자들과 관계를 지속해온 사례가 있을까?

A.

지역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나도 고갈될 때가 있다. 어디에 말할 수도 없고 ‘나만 이런가?’ 하고 허해질 때, 평생학습센터 야간 인문학 강의를 수강생으로 듣게 됐다. 그때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수강생 중 한 분이 강의만 시작되면 울었다. 처음엔 나도 당황스러웠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오기 시작하고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분은 아내이자 며느리이자 어머니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삶을 살았고, 그리고 또 다른 한 분은 장녀로서 늘 한 발 뒤로 물러서야 했던 사람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서로 얽히며 만남으로 이어졌다. 어느 날 한 분이 나에게 말했다. “문화의집 큰 유리창 앞에서 혼자 커피 마시던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어요.” 그렇게 우리는 작은 공동체가 되었다. 책을 같이 읽고, 오랜 기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숨겨야 했던 이야기가 어느새 “그땐 그랬지”라는 문장이 되었다. 성과표에는 남지 않지만, 나에게 ‘현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은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착되지 않는 관계의 시간은 깊은 흔적을 남긴다고 생각한다.

현장의 정체를 드러내는 질문
Q.

컨설턴트, 기획자, 연구자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계신다. 그 역할마다 다른 시선이 필요하겠지만, 중심에 두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

A.

공통점은 명확하다. 언제나 ‘현장’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문화의집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나중에는 연구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또 컨설팅하는 사람으로 역할은 달라졌지만, ‘지금 여기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 차이는 현장에서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생기는 것 같다. 어떤 자리에서는 사업을 실제로 수행하는 기획자를 만나고 어떤 자리에서는 예술강사를, 또 어떤 자리에서는 기관 운영자나 행정 담당자를 만난다. 역할에 따라 내가 쓰는 언어와 질문의 방향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결국 묻고 싶은 것은 비슷하다. 컨설팅할 때 늘 상기하는 말이 ‘컨설턴트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가 말하게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장에 가면, 지금 가장 어려운 건 무엇인지 처음 사업을 기획할 때 어떤 그림을 떠올렸는지, 지역에서 함께 일하는 파트너는 누구인지 먼저 듣는다. 상대가 방어하지 않고 말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가받는 자리라고 느끼는 순간 몸이 닫히기 때문이다. 나는 평가자가 아니라, 같이 고민을 정리해 주는 사람에 가깝고 싶다.

Q.

요즘 현장은 예전보다 피로와 회피의 감정이 짙어진 것 같다. 담당자, 예술강사, 기획자 모두 힘들다고 말하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신 지, 그리고 ‘현장’이라는 말을 지금 다시 묻는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하다.

A.

경기 지역의 여러 사업을 모니터링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힘들다는 말이었다. 문화예술교육 담당 부서 행정가들, 매너리즘과 소진을 말하는 예술강사들, 공모와 정산 사이에서 지쳐가는 기획자들까지. 한때 문화예술교육은 새로운 기획이 탄생하고, 낯선 만남과 관계가 이루어지고, 도시와 마을을 다르게 보게 해주던 장(場)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 역동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그렇다고 예전이 좋았다는 식의 회고로 끝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현장의 정체를 드러내는 질문으로 보고 싶다.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힘들다고 말하는가, 왜 이 업무를 피하고 싶어 하는가, 왜 사업이 끝나면 관계도 함께 끊어져 버리는 구조가 되었는가. 이 질문들에 현장에서, 정책에서 동시에 답을 찾으려는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정책과 행정은 사업의 형식을 요구하고, 현장은 그 안에서 관계와 경험을 만들어야 하는데, 형식이 내용 전체를 잠식해버리면, 사업은 ‘대책’이 되고 현장은 그 대책에 ‘대응’하는 역할로만 남게 된다. 나는 지금의 간극을 메꿔야 할 공백으로 보기보다,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에서 비껴나 있는지를 보여주는 틈으로 보고 싶다. 그 틈을 들여다보자고 말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지금 문화예술교육에서 필요한 비평적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비평과 실천 사이
Q.

이번 인터뷰의 주제가 ‘문화예술교육에서의 비평의 역할과 가능성’이다. 비평적 실천이란 무엇일까?

A.

아직도 비평적 실천에 관해 물으면 선뜻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다만 내가 현장에서, 컨설팅 자리에서 계속 붙드는 것은 하나 있다. ‘이 사업을 왜 하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가.’ 현장에서 기획자나 예술강사에게 이 사업을 왜 신청했고, 이 프로그램을 꼭 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자주 묻는다. 동네에서 이런 사람들을 꼭 만나보고 싶어서, 이 연령대 참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예전에 겪었던 어떤 장면을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다시 해보고 싶어서. 이런 문장들이 필요하다. 그게 있어야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도 원래 내가 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고, 옆길로 샜더라도 새로 발견한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작업이 비평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형식을 절대화하지 않는 태도다. 기획서 양식은 대부분 회차별 목표, 내용, 시간, 대상 등을 빼곡히 적게 되어 있다. 행정적으로는 필요한 형식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50~60대를 상정하고 기획했는데 모집해보니 60~80대가 왔다면, 내용과 방식이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참여자의 구성, 지역의 상황, 함께 일하는 파트너에 따라 기획이 바뀌는 것은 현장을 기준으로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언어화하는 것, 그것도 비평적 실천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본다. 그래서 예술강사나 기획자들에게 리서치를 하자고 말한다. 설문지를 돌리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여기 모인 사람들의 얼굴과 말을 읽는 것이다. 왜 왔는지, 무엇을 기대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걸로 첫 회기를 채워도 좋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은 어쩌면 경험의 세계와 개념의 세계가 끝없이 부딪히는 곳이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경험을 정책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휘발되는 것들이 있고, 다시 그 개념이 현장에 내려앉는 과정에서 또 많은 것이 빠져나간다. 비평적 실천은, 이 둘 사이에서 휘발되는 것을 최소화하려 애쓰는 끈질긴 시도, 그리고 그 시도를 서로에게 설명하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Q.

현장에서 활동하는 창작자, 기획자, 예술강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린다.

A.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예술가 선생님, 예술 놓지 마세요.” 많은 분이 생계 때문에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하지만, 교육만 남고 예술이 사라지는 순간 교육도 버겁게 느낄 수 있다. 자괴감이나 열등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 전시 소식이나 작업 이야기를 전해오면 나는 더 크게 기뻐한다. 문화예술교육의 길을 반듯한 직선이 아니라, 돌을 만나면 고이고, 넘칠 만큼 차오르면 넘고, 너무 큰 돌을 만나면 돌아가는 물길에 비유하고 싶다. 고여 있는 시간도 필요하고, 돌아 나가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 시간을 지나야 비로소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지금 이 현장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질문을 놓지 않는 것이 비평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민병은
민병은

문화집합36.5 대표이며, 지혜로운 봄 대표다. 광명문화의집 지역사회연계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기획운영부장, 하안문화의집 관장, (사)한국문화의집협회 상임이사를 역임했다. 문화예술교육 기획역량강화 강의 등 교육 활동과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평가, 컨설팅, 모니터링 등 다양한 역할로 문화예술교육 현장과 만나고 있다. 〈2015 부처간 문화예술교육지원 사업 사례집〉 등 다수의 연구에 참여했으며, 공저 『문화예술교육 현장과 정책』이 있다.
정경미
정경미 (파고)
문화예술교육 실천가. 그라운드파고를 이끌며 예술과 일상 사이에서 새로운 배우기와 관계의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현장의 감각과 질문을 바탕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pago.table@gmail.com
인스타그램 @ground.pago
인터뷰 사진_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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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12월 13일 at 11:25 AM

    경험과 개념의 세계가 끝없이 부딪히는 그곳에서
    민병은 지혜로운 봄 대표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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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12월 13일 at 12:15 PM

    경험과 개념의 세계가 끝없이 부딪히는 그곳에서
    민병은 지혜로운 봄 대표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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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5년 12월 14일 at 12:57 AM

    문화예술교육은 프로그램보다 사람과 관계, 그리고 일상의 감각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정의되기보다 질문으로 남을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교육이 된다는 말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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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12월 13일 at 11:25 AM

    경험과 개념의 세계가 끝없이 부딪히는 그곳에서
    민병은 지혜로운 봄 대표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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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12월 13일 at 12:15 PM

    경험과 개념의 세계가 끝없이 부딪히는 그곳에서
    민병은 지혜로운 봄 대표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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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5년 12월 14일 at 12:57 AM

    문화예술교육은 프로그램보다 사람과 관계, 그리고 일상의 감각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정의되기보다 질문으로 남을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교육이 된다는 말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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