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언어를 더 생생하게, 더 풍부하게

박형주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센터장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은 늘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라는 질문 속에 있다. 그 질문과 응답의 상호작용과 보이는 보이지 않는 변화의 흐름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비평’의 자리는 종종 공백으로 남는다.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이하 삶디) 박형주 센터장은 그 빈틈을 ‘기록’과 ‘대화’로 메워온 현장 실천가다. 문화예술교육을 행정이나 사업의 언어로만 보지 않고,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언어를 읽어내려는 그의 시선은 ‘비평’을 평가가 아닌 ‘관계와 성찰의 언어’로 되돌려준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박형주 센터장과 함께 문화예술교육에서 ‘비평의 위치와 태도’를 주제로, 현장을 읽는 철학의 의미를 나누었다.
Q.

요즘 문화예술교육 현장이 어떤 풍경으로 다가오는가?

A.

이젠 일상이다. 처음 문화예술교육이 시작될 때는 뭔가 새로운 걸 해보자는 열정과 시행착오의 역동적인 기운이 있었다면, 이제는 익숙한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초 한 재단 심사장에서 중학교 1학년 때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 참여했던 청년을 만났다. 그 친구가 예술가로 성장하여 청소년기에 받았던 영감과 경험을 지역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다며, 이제는 기획자로서 문화예술교육 공모 사업을 신청한 거다. 문화예술교육이 그렇게 시간이 흘렀구나 싶었다. 문화예술교육이 한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것을 본 순간이었다.

Q.

정치철학을 공부하셨는데, 어떻게 문화예술교육과 만나게 되었는가?

A.

민주주의를 공부하다 보니 성숙한 시민을 키워내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대안교육 현장에 들어와서는 예술적 행위가 마음의 안정과 성숙을 만들어낸다는 걸 발견했다. 교육도, 예술도, 문화도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한다. 이전의 나와 다른, 새로워진 나로 거듭나는 것과 익숙한 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 지금은 진로교육 쪽에 있지만, 큰 흐름에서 보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배우고 살아갈 것인가’를 계속 천착해 온 거다.

Q.

현장을 ‘읽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순한 관찰이나 평가와는 어떻게 다를까?

A.

읽는다는 건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함께 보는 것이다. 똑같은 프로그램이어도 어떤 맥락 속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기능 중심으로 보이는 교육이 무기력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무기력할 일상에 활력과 완성을 통한 성취의 경험을 주기 위한 거라면 ‘돌봄의 언어’로 읽어야 한다. 세대 간 어울림을 위한 거라면 ‘소통의 언어’로, 대회 출전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거라면 ‘성취의 언어’로 읽어야 한다. 비평은 크게 네 가지 과정이 있다. 관찰과 기록, 맥락적 해석,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평가, 그리고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합의 말이다.

<단편소설 창작 프로젝트>
(왼쪽)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작품 <빛을 향해>를 쓴 청소년이 ‘저자와의 대화’ 시간에 자신의 작품을 소개했다.
(오른쪽) 전문길잡이(지역 작가)가 청소년들과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Q.

현장의 언어가 행정 언어나 사업 언어 속에서 희미해지는 경우가 많다. 현장의 언어를 철학적으로 해석한다는 건 어떤 일일까?

A.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바로 ‘성과 중심 언어’와 ‘관계 중심 언어’의 균형이다. 수치화된 언어는 불편하지만, 동시에 시대의 변화를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다년간 진행해 온 삶디의 단편소설 창작 프로젝트에서 올해 갑자기 중도 탈락률이 높아졌다. 수치를 보고 질문을 던졌다. “왜 그만뒀을까?” 알고 보니 고교학점제로 수행평가가 50%가 되면서 청소년들의 개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수치를 단순히 제시하는 데 그치면 무용하지만, ‘왜 이런 수치가 나왔을까’ ‘이게 의미하는 게 뭘까’를 계속 질문하여 관계의 언어로 그 수치를 다시 해석할 수 있다면, 수치로 읽는 ‘성과’ 중심의 언어와 ‘관계’ 중심의 언어는 상호보완적으로 될 수 있다.

Q.

결국 비평의 언어도 해석의 언어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문화예술교육에서 비평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A.

비평의 첫 출발은 기록이다. 우리가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까지만 문화예술교육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운동으로 비유하면, 운동의 최종 끝은 먹는 것이다. 아무리 운동을 잘해도 제대로 먹어 몸에 필요한 영양을 채워야 한다. 프로그램을 열심히 진행해도 되돌아보는 시간이 없으면 효과는 반감된다.
‘어떤 부분이 좋았나요?’라고 물었을 때 단순히 ‘좋았어요’가 아니라, 그 좋았던 표정이나 몸짓, 함께 느낀 만족스러움과 우리 안의 케미, 결과물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기록이 필요하다. 삶디에서는 모든 프로젝트가 끝나면 예외 없이 모두가 ‘오늘 뜻밖에 발견한 것’ ‘오늘 분위기’ ‘왜 이랬는지’를 기록한다. 그걸 함께 읽고 대화하는 합평(合評)의 시간을 만들어간다. 서로가 본 것을 기록하고, 왜 그랬을까를 묻는 시간, 그게 현장 비평이다. 이렇게 쌓인 기록들이 뉴스레터가 되고, 함께 읽어야 할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Q.

합평이야말로 ‘현장을 함께 읽는 시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어렵기도 하다. 현장 실천가들에게 비평이 왜 필요할까? 비평의 언어가 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A.

비평이라는 건 어떤 비평가가 한다기보다 현장에서 스스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기록하고, 그걸 가지고 함께 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다. 합평하자고 하면 다들 힘들어한다. 비판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세대 차이가 있으면 말의 무게감도 다르다.
그래서 삶디에서는 ‘모두가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진실한 대화’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상처받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관계가 단단해진다. 합평 자체가 ‘잘됐다’ ‘못됐다’를 바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난 후에 돌아보면, 새롭게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삶디 단편소설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계속 참여하는 이유도 합평 때문이다. 처음엔 상처받았지만 글을 고쳤더니 훨씬 좋아졌고, 혼자 할 때보다 함께 할 때 글이 좋아진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합평은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됐다. ‘함께 읽는 문화’가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Q.

현장을 읽은 외부자의 시선, 예를 들어 컨설턴트나 멘토의 역할도 그 연장선상일까? 현장의 사람들—교육자, 예술가, 학습자—의 경험을 철학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

A.

중요한 건 관계의 밀도다.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읽으면 평가로 받아들여진다. 컨설팅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생성해주는 일’이어야 한다. 질문을 통해 현장이 스스로 자신을 읽게 돕는 것이다. 현장은 외부의 평가보다, 내부의 성찰에서 변화가 시작된다고 본다. 그래서 더욱 현장이 스스로 읽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외부 평가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삶디 스태프들은 3년 정도 하다 보니 자기가 하는 일을 계속 되돌아보며 글로 정리하는 훈련이 몸에 배었다. 이 사이클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멈추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내가 있는 현장에서 작은 움직임을 시작하는 거다.

Q.

그렇다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비평’은 누가 해야 할까? 현장에서 비평을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까?

A.

현장의 실천가들이 해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의 출발도 현장이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은 정책과 행정이 위에서 내려오는 구조로 굳어졌다. 이제 다시 아래에서 올라와야 한다. 현장 스스로 기록하고, 되돌아보고, 합평하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 제3자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을 읽는 비평. 그게 진짜 교육이다. 경험이 학습이 되려면 반드시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Q.

결국 문화예술교육의 비평은 ‘왜’를 묻는 과정이다.

A.

맞다. 비평은 판단이 아니라 ‘이해의 언어’이다. 관찰과 기록 후 맥락적 해석으로 그리고 이에 대한 가치 판단과 합의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실은 그게 비평의 네 단계다. ‘평가’는 분절의 언어가 아니라, 서로의 가치를 읽고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한 합의의 언어여야 한다.

  • 삶디 바투카다 공연팀 <까미뉴 다 비다>의 도시농부
    장터 <보자기장> 오프닝 공연
  • 매주 수요일 저녁 느린 시간으로 나무 깎기를 실천하는
    우드카빙 소모임 <느깎기>
Q.

비평이 다시 실천의 언어로 회복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A.

현장의 생생한 언어들이 풍부하게 쌓여야 한다. 지금은 학자나 연구자들이 큰 담론을 만들어내는데, 그걸 읽어낼 구체적인 현장의 텍스트가 빈약하다. 5·18 때 방대한 자료가 기록관에 존재했기 때문에 한강 작가가 『소년이 온다』를 쓸 수 있었던 것처럼, 현장의 언어로 기록된 것들이 존재해야 새로운 워딩이나 슬로건이 나왔을 때 엄청나게 확장되는 효과가 있다. 역할을 나눌 필요도 있다. 학자들은 그들의 역할이 있고, 현장은 현장의 언어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 개인이 모든 층위를 다 할 수는 없다. 다양한 이들이 겹겹이 언어를 축적하고 그것이 상호 겹쳐질 때, 훨씬 풍부하게 읽힌다.

Q.

팬데믹 이후 AI 대전환기 등 급변하는 기술과 예술 창작 환경, 교육의 미래에 대한 전환의 요구와 모두의 불안 속에서 비평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A.

비평은 교육적으로 속도를 늦추는 언어 같다. AI가 화두가 되니까 AI 교육, AI 교과서가 쏟아지지 않나. 시대적 트렌드를 따라가려 할 때 비평은 질문을 던진다. ‘이게 진짜 필요한 건가? 지금 이게 맞나?’ 질문을 던짐으로써 속도를 늦추고 본질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
요즘 내가 자주 떠올리는 단어는 ‘카멜레온’과 ‘큐레이션’이다. 문화예술교육을 하나의 색깔로만 읽을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진로교육으로, 누군가는 평생교육으로 읽는다. 어떻게 읽히느냐에 따라 다른 언어를 가져올 수 있고, 그것들을 큐레이션 하면 나만의 독창적인 것이 된다. 예전에는 진정성, 선명성을 강조했지만 이제는 좀 흐릿하게 보면 안 될까 싶다. 행정의 언어로도, 교육의 언어로도, 예술의 언어로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설명하는 풍부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Q.

마지막으로, 지금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가장 필요한 철학적 질문 하나를 던져준다면?

A.

“지금 하려는 이 문화예술교육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질문을 계속 스스로에게 해봤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진짜 지금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걸까? 내가 만나려는 대상에게 반드시 필요한 건가? 질문하며 본질을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비평은 멈추는 게 아니라 제대로 가기 위해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은 결국 현장의 언어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 내가 하는 일을 기록하고 함께 돌아보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은 늘 ‘실행’으로 분주하다. 그러나 박형주 센터장이 말하는 비평은 실행 이후의 “되돌아봄”에서 시작된다. 기록하고, 함께 읽고, 이해하고, 다시 써 내려가는 일. 그 느린 과정에서 비로소 교육은 경험이 되고, 예술은 철학이 된다.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라는 그의 말처럼, 문화예술교육의 비평은 결국 자기 자신과 나의 현장 그리고 관계들을 깊이 있게 길어 내는 일에서 시작된다.
박형주
박형주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약칭 ‘삶디’) 센터장. ‘올제’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내일’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오늘을 살며 내일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자는 바람이 담겨 있다.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 웹진 편집위원,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자문위원, 광주문화예술교육센터 팀장 등을 역임했다. 하자센터 기획부장으로 일했으며, 2016년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개관과 함께 현재까지 센터를 이끌고 있다.
·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www.samdi.or.kr
천윤희
천윤희
독립기획·연구자. 현대미술과 비엔날레에 매혹되어 20대에 겁 없이 광주에 내려온 이래 지금까지 지역살이 중이다. 문학과 미술 사이, 교육과 전시 사이, 미술관과 비엔날레 사이, 광주와 비광주 사이, 엄마와 직업인 사이에서 살아온 날이 길다. 삶에 질문하며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다정한 동반자로서 미술과 책, 사람, 산책, 자연을 아낀다. 나로서 더욱 아름답고 의미 있게 나이 들어갈 수 있도록 스스로 처음이 되는 힘을 키우고 싶다.
uni94@hanmail.net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프로그램 사진 제공_박형주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센터장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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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11월 26일 at 2:11 PM

    현장의 언어를 더 생생하게, 더 풍부하게
    박형주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센터장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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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11월 26일 at 2:59 PM

    현장의 언어를 더 생생하게, 더 풍부하게
    박형주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센터장
    기대만점이네요

  • author avatar
    김준수 2025년 11월 27일 at 1:42 PM

    ‘비평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속도를 늦추고 본질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문장에 깊은 공감을 합니다.
    즉각적인 반응을 멈추고 ‘왜?’ 라는 근원적 물음을 가질 때 우리는 창조의 기회를 얻게 되는 거 같아요!

  • author avatar
    김수현 2025년 11월 29일 at 1:27 AM

    비평을 남의 영역이 아니라 ‘현장에서 함께 쓰는 언어’로 본다는 부분이 깊이 공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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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11월 26일 at 2:11 PM

    현장의 언어를 더 생생하게, 더 풍부하게
    박형주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센터장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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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11월 26일 at 2:59 PM

    현장의 언어를 더 생생하게, 더 풍부하게
    박형주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센터장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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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수 2025년 11월 27일 at 1:42 PM

    ‘비평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속도를 늦추고 본질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문장에 깊은 공감을 합니다.
    즉각적인 반응을 멈추고 ‘왜?’ 라는 근원적 물음을 가질 때 우리는 창조의 기회를 얻게 되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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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5년 11월 29일 at 1:27 AM

    비평을 남의 영역이 아니라 ‘현장에서 함께 쓰는 언어’로 본다는 부분이 깊이 공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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