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

임선예 극단 평상, 하늘 날多 대표

임선예 선생은 충남 공주에서 ‘평상, 하늘 날多’라는 단체를 운영하며 예술가로서, 예술교육가로서 누구나 ‘삶의 아티스트’라는 마음으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한다. 2019년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에서 맺은 인연으로 결성된 ‘고마동창생’ 회원들과 동학, 유관순,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자 문제 같은 지역 이슈를 다룬 연극을 올리며 ‘예술적 시민성’을 고민한다. 동학의 정신처럼 우리는 누구나 ‘하늘’ 같은 존재로서 내가 ‘내켜서’ 하는 활동을 고민한다. 애니미스트(animist)로서 ‘되기’의 관점을 체화한 임선예 선생과의 대화는 사람과 사람은 일방적 수혜자가 아니라 ‘평상’처럼 수평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삶의 아티스트’다
Q.

2020년 10월, 충남 부여에서 진행하는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 프로그램 참관차 처음 만난 후 5년 지났다. 당시 참여자들과 지금껏 꾸준히 만난다고 들었다.

A.

시간이 빠르다. 프로그램 끝나고 특별한 이유 없이 저절로 만나게 되었다. 다른 수업과는 다르게 편안하고 따뜻하고 위로를 얻는다며 “여기만 오면 살맛 난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셨다. 그래서 ‘우리끼리 모이자’ 그러면서 저한테도 ‘같이 와주면 너무 좋겠다, 강사비는 없어도 어쨌든 우리를 이끌어줬으니 밀어달라’ 이렇게 반강요를 하셨다. (웃음)

Q.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입금’이 안되면 어렵지 않나?

A.

사실 그렇다. 그런데 그게 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전에는 예술가로서 살아가기에 급급했고, 그러다 보니까 강사비가 없어도 와 달라고 하면 진짜 고민되었다. 하지만 수업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이끌어주는, 단지 조금 도움을 주는 역할로서 함께하다 보니 또 다른 점에서 많이 배웠다. 참여자들과 인생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을 배우다 보니까 일방적으로 뭔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다. 지원 사업할 때는 결과물 아니면 무슨 성과를 내야 했다. 하지만 친목 모임이라고 생각하니까 편안하게 갔다. 그런데 엄청나게 준비하고 가도 안 됐던 것들이 마음을 내려놓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며 얘기하다 보니까 우리 지역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같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게 되더라. 그래서 지역의 아픈 역사를 연극으로 만들었다. 서로 협업하는 관계, 새로운 공동체 문화가 만들어졌다.

Q.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 당시 어느 신중년 남성 참여자가 자신이 ‘중졸’이라는 사실을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며 오래도록 자신을 짓눌러온 학력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한 말이 퍽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그런 변화를 겪는 건 아닐 텐데, 그 참여자가 변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자신을 ‘삶의 아티스트’라고 소개한 점도 눈에 띈다.

A.

나는 좀 남다른 유년 시절을 보냈다. 원래 예술가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다, 돌아이다’ 이런 얘기 많이 듣는다. 어릴 때 나뭇잎이랑 얘기하고, 흐르는 시냇물이랑 얘기하고, 바람하고 얘기했다. 누군가 ‘쟤 이상해’ 하는 순간, 저는 진짜 이상한 아이가 됐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곳을 찾다 보니 그게 ‘연극’이었다. 연극 안에서는 내가 어떤 표현을 해도 인정받는구나 싶었다. 어떤 표현을 해도 괜찮았다. 이런 경험이 좀 쌓였다. 하지만 신중년 참여자분들은 그동안 정답만 찾는 삶을 살아오셨던 것 같았다.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있었던 것 같아서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고 계속 말씀드렸다. 그러자 참여자들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도 된다는 마음이 생겼다. 자기 고민을 꺼내놓아도 비난이 아니라 공감해 주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어느 순간 ‘나도 내 이야기를 해도 되는구나’ 싶었는지 덤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분이 학력 콤플렉스를 얘기하는 순간, 약간 당황했지만 표현하지 않았다. ‘아, 그러셨군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도 그냥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무도 뒷얘기 하지 않았다. 그냥 그전과 똑같이 늘 여기에 함께 참여하는 참여자로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 주었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지역 속으로
Q.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분위기(vibe)를 만드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내켜서’ 활동할 수 있는 마음과 태도가 중요해 보인다.

A.

전에는 “선생님, 연기를 이렇게밖에 못 하겠어요?”라고 했다면, 이제는 연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일상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똑같이 나무를 보더라도 생각하는 게 다 다르니까 그것을 자기만의 예술 언어, 자기만의 표현으로 얘기하게끔 계속 끄집어냈다. ‘예술은 정답이 없다’라는 걸 계속 세뇌했다. (웃음) 어떤 분은 한 번에 바로 표현하지만, 어떤 분은 그게 2주, 3주, 혹은 4주 동안 깊이 고민해야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러자 오히려 연극을 좀 아는 분이 “좀 더 강하게 이끌어 가세요.”라며 저항했다.

Q.

진도 빼자는 거겠죠? 선생님은 ‘있는 그대로’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일본어로 ‘아리노마마(ありのまま)’라고 하는데, 그렇게 편안한 공간이 되려면 안전해야 하고,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을 것 같다.

A.

처음 예술강사를 시작할 때는 경제적으로 좀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힘들었다. 학교 같은 곳에서는 기다려주지 않고 ‘진도 빼서’ 작품 만들기를 압박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40대 중반 무렵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에서 선배 어른들을 만나면서 많이 깨달았다. 그분들에게 중요한 건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딜레마였다. 그 고민을 함께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있는 그대로 서로 받아주고 공감해 주며, 나의 삶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했다. 그분들도 예술적인 어떤 경험을 계속하다 보니까 낯선 자기를 발견하고 자신을 점검하고 검토했던 것 같다. 그렇게 다양한 관점으로 되돌아보고 성찰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Q.

‘나는 나를 어떻게 대했는가?’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도 웹진 [아르떼 365]도 20주년을 맞았다. 초기 ‘수혜자’라는 용어 대신에 ‘참여자’ 또는 ‘동료시민’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많이 번졌다. 단체 이름에 ‘평상’이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A.

지금은 조금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나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게 가장 큰 변화 같다. 공주 같은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으로 가야 했지만, 지금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접할 수 있는 접근성이 좋아졌다. 자기 삶과 나를 돌아보고 내 주변의 삶을 돌아보는 데 초점을 둔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를 공급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좀 자유로워졌달까. 내가 가진 생각이 정답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해졌다. ‘평상’은 누구나 편하게 앉아서 나의 이야기, 나의 생각, 이런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사람과 연결이 된다. 어릴 때부터 망토 쓰고 뛰어내리며 하늘을 날고 싶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에 나오는 ‘하울’처럼. 모든 참여자가 다 ‘하늘’ 같은 존재이니 서로 존중하자는 뜻을 담고자 해서인지 모임이 오래가는 것 같다.

Q.

이야기를 들으니 동학(東學) 정신이 떠오른다. 공주는 우금치전투가 일어났던 곳 아닌가. 나는 동학 정신은 헌법 전문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모인 ‘고마동창생’은 어떤 모임인가?

A.

2020년, 2021년 공주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 참여자분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공주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시민대학 연극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는데, 그분들이 여기까지 쫓아오셨다. 마침, 평생교육원에서 장소를 빌려줄 테니 동아리를 만들라고 해서 매주 여기서 활동한다. 공주에 사는 우리 이야기를 함께 하자고 했다.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에서 해설사로 일하는 분이 계셔서 동학예술제 때 고마동창생들과 같이 <공주, 동학을 펼치다>를 만들어 올렸다. 잘 몰랐던 역사적 사실도 공부하며, 함께 대본 써서 공연했다. 이 공연할 때 ‘사람이 하늘이다(人乃天)’라는 동학 정신을 느끼면서 많은 관객이 울고 갔다. 나는 드라마트루그 같은 역할로 참여했다. 보수를 많이 받은 건 아니었다. (웃음) 밥값 정도였다. 그 후 유관순 이야기,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 등을 다룬 작품을 하게 되었다. 지역에 이런 문제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외면당하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유관순 열사도 이화학당 가기 전 공주 영명학당에서 공부했고, 유관순 열사의 오빠가 공주에서 만세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또 공주 ‘살구쟁이’(상왕동)가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된 민간인 학살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7월 5일 <작은 전쟁>이라는 공연을 올리기 위해 맹연습 중이다.

  • 130주년 동학농민혁명 우금치 기념식 ‘동학, 희망의 몸짓’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내켜서’ 하는
Q.

누구나 자기 역할과 자리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분들이야말로 ‘삶의 아티스트’ 아닌가? 스스로 이런 별명을 붙인 걸 보니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데가 있었을 것 같다.

A.

십대 시절 유난히 사물에 말을 걸고 그랬다.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며 그렇게 춤추고 싶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쟤는 좀 이상하네’ 그랬다. 그런데 나는 그 이상함이 낯설지 않았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놀며 내 예술적 감성이 커졌는데, 학교 가니까 자꾸 그런 걸 못 하게 했다. 초등 3학년 때인가, 미술 시간에 꽃병을 그리라고 했는데 꽃들이 더 쭉쭉 크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듣고 그림을 그렸다가 혼났다. 남들보다 빨리 미래에 아티스트가 되기로 진로를 정했다. 녹록하지 않겠지만, ‘내 삶은 예술밖에 없어’ 하는 오기 같은 마음으로 스스로 그런 별명을 붙였다.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아직 부족하지만, 어제의 임선예보다는 오늘이 훨씬 더 낫다’라는 강한 확신이 있다.

Q.

이야기를 들으니, 모든 장소, 동식물, 자연현상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 ‘애니미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예술교육가로서 처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 것 같다.

A.

20년 전 나는 무대에서 참여자들을 그냥 ‘관객’으로 바라보았다. 지금은 무대 밖에서 관객을 친구처럼 만나며, 삶을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다. 앞으로 20년 후에는 일상에서, 무대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그런 예술교육가로서 계속 활동하지 않을까. 스무 해 후의 나를 상상해 본다면, ‘평상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 잠시 앉아 쉬어가고, 자기 이야기를 꺼내고, 그리고 다시 삶을 향해 함께 힘차게 걸어갈 수 있게 해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임선예
임선예

스스로 ‘삶의 아티스트’라는 닉네임을 붙이고, 문화예술교육가이자 연극배우, 연출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학교와 기관, 여러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다양한 연령과 배경의 참여자를 만나고 있고, 그 시간이 자신과 참여자 모두에게 가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교육연극 프로그램에 참여한 신중년의 전환학습 과정」(국립공주대학교 교육학과 석사학위 논문)을 연구한 바 있고, 2025년 <소나무 아래 잠들다>(극단 젊은무대)로 제43회 충청남도 연극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7sryim@naver.com
고영직
고영직
문학평론가. 경기문화재단 전문위원, 경희대 실천교육센터 운영위원, 웹진 [아르떼365] 1기 편집위원장을 지냈다. 『삶의 시간을 잇는 문화예술교육』 『인문적 인간』을 비롯해 『자치와 상상력』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공저), 『생애。전환。학교』(공저) 등을 펴냈다.
gocritic@naver.com
인터뷰 영상‧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프로그램 사진 제공_임선예 대표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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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7월 13일 at 10:09 AM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
    임선예 극단 평상, 하늘 날多 대표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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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7월 13일 at 11:02 AM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
    임선예 극단 평상, 하늘 날多 대표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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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7월 13일 at 10:09 AM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
    임선예 극단 평상, 하늘 날多 대표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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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7월 13일 at 11:02 AM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
    임선예 극단 평상, 하늘 날多 대표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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