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장벽없는문화예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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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길 위에 경사로 놓기

모두의 예술교육⑧ 예술교육에서의 접근성

발달장애 또는 자폐 스펙트럼, 신경다양인으로 불리는 아동, 청소년들과 경기도 북쪽 연천군에 창작공간을 마련해 함께 시각예술 작업을 하고 있다. 2025년에는 경기문화재단 지역문화 활성화 사업으로 다양성을 담는 넉넉한 예술이라는 의미의 시각예술 교육 프로그램 <넉넉>을 진행했다. <넉넉>에는 이미 자신의 그림 언어를 가지고 있는, 시각예술 분야에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한 사람과 아직 그렇지 않은, 자신만의 무엇을 발견하지 못한 또는 크게 흥미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같이 지원했다. 후자의 그룹을 관찰하게 된 이야기다. 창작공간ㄴㄴ(니은니은) 외부 우재만의 가을 감각하기 우재(가명)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첫날, 부모님과

접근성 수단이 예술로 자리 잡기까지

모두의 예술교육⑦ 서로 다른 속도로 함께 걷기

지난해 6월, 나의 첫 개인전 《터치투어⠁⠢마음씨》가 태어났다. 터치투어는 시각장애인이 전시나 공연을 이해하는데 촉각을 통해 돕는 수단으로, 미니어처 공간 모형이나 무대 위 소품을 직접 만져보고 배우의 동선을 경험하는 방식이 있다. 퍼포먼스와 지도 작업을 이어온 나에게 터치투어는 자연스러운 형식이자 작업 주제로 다가왔고, 이를 전시 제목으로 내거는 순간 나는 저시력자임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세계에 안겼다. 사전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부제로 ‘⠁⠢(‘그러므로’의 점자표기) 마음씨’를 붙였다. 당시 나의 가장 중요한 작업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자’였다. 시각, 체계, 분석과 같은 단어로 가득 찬 나의 작업은, 나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선택할 권리, 멈출 자유, 안전한 시간

모두의 예술교육⑥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는 미술 수업

나는 장애인복지관에서 발달장애 아동 및 청년들과 미술 수업을 5년여 진행해 왔다. 나는 이 시간을 ‘가르친다’라고 표현 안 한다. 그러고 싶지 않다. 대신 함께 ‘논다’ ‘작업한다’라고 얘기한다. 수업 시간은 늘 조금 소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붓을 잡자마자 종이를 벗어나 바닥까지 물감을 흘리고, 누군가는 한 가지 색만 집요하게 반복한다. 또 누구는 가만히 머물며 다른 세상을 꿈꾸는 듯하다. 나는 이 모든 장면을 ‘지도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흥이 오르는 순간으로 바라보려 애쓴다. 예술교육이란 결국, 잘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존재하도록 허락하는 일이라고 믿기

나와 우리부터 시작하는 턱 없는 세상

모두의 예술교육⑤ 접근성에 관한 오해와 이해

휠체어 타는 딸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장애를 무의미하게’ 무의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휠체어 이용자들의 눈높이로, 시민 200여 명이 모여 만든 「서울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는 그 지도를 쓸 필요가 없는 현장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였다. 그 후 10년이 지나, 무의는 서울지하철에서 휠체어 눈높이의 표지판 디자인인 ‘모두의 지하철’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접근성이 필요함을 설득하고 솔루션을 찾아가는 과정은 이렇게나 지리하고 길다. 접근성은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속해야 할 과정’이기도 하다. 장애는 장애인 수만큼 다양하고 시대에 따라 요구사항이

기다림에서 피어나는 시

모두의 예술교육② 느린학습자와 함께하는 시 창작

시는 인칭의 장르다. 정확히는 인칭의 범위를 새롭게 재고하는 장르다. 직접 선택한 낱말들과 그 배치를 활용해 ‘나’의 마음을 설명하고, ‘너’와 닮아 있는 것을 찾고, ‘우리’라고 불러보고 싶은 공동체의 범위를 새롭게 모색해 보는 일. 그렇게 인칭과 명사를 탐구하고, 우리를 부르는 이름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지 묻는 일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을 새롭게 배치하는 과정과도 분명 맞물릴 것이다. 결국 시 쓰기는 호명의 역학 안에서 주체성을 새롭게 고민할 수 있는 굉장히 정치적인 수행이 될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우리 중에서는

다양성의 세계로 초대하는
‘게임의 규칙’

장애에 관한 생각을 바꾸는 놀이

매년 4월 20일은 법정기념일로 공식 지정된 ‘장애인의 날’이다. 또한 장애인식 개선 교육이 법정 의무 교육으로 지정되어 학교와 직장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장애에 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다름과 닮음을 이해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이지만, 일회성 캠페인이나 숙제처럼 느껴지는 점이 아쉽다. 지속적으로 일상에서 재미있게 경험할 수는 없을까. 놀이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마주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교육용 보드게임을 소개한다.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전해주어 더욱 오래 기억하게 하는 장애 인식 개선 게임을 통해 장애를 깊이 이해하기

나 자신으로, 자유롭게, 어우러지며

[좌담] 장벽 없는 문화예술교육

삶을 자유롭게 하는 예술 낯섦이 두려움이 되지 않도록 넓고 깊어질 시간이 필요하다 연결되고 어우러지는 경험 좋은 일? 좋아서 하는 일! 특수학교와 장애인 복지시설에 예술강사를 지원하는 방식을 넘어 장애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이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성을 인정하고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장애를 다른 감각의 세계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문화예술교육은 어떻게 가능할까? 모든 사람의 자리를 인정하는 사회적 감수성, 환대하는 문화예술교육을 논의해본다. 좌담 개요 • 일 시 : 2021. 7. 23.(금)

감각의 교차 속,
비로소 듣고 들리는 것

아트엘 <듣다> 프로젝트

스며들다 ‘듣는다는 게 대체 뭘까?’ 올해로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든 아트엘의 <듣다> 프로젝트를 리뷰하기에 앞서, ‘듣는다’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듣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감각 기관, 그중에서도 특히 청각기관을 통한 소리의 알아차림을 뜻한다. 그런데 만약 이 같은 일반적·사전적 의미 밖에서 듣는 행위를 사유해본다면 어떨까. 만약 듣기의 대상이 ‘소리’에 한정되지 않는다면, 만약 듣기의 이유가 ‘의미나 정보의 전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면, 만약 듣기의 방식이 귀를 비롯한 ‘청각기관’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듣기’라는 명사적 상태를 ‘듣는다’는 동사적 행위로 전환할 때에서야

있는 그대로의 표현으로, 내 얼굴을 비추는

‘니얼굴’ 정은혜 작가 가족

3천 명이 넘는 낯선 이들의 얼굴을 그리며 ‘니얼굴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정은혜 씨. 발달장애인인 그녀의 삶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전시회를 통한 왕성한 작품 발표는 물론이고, 코로나19로 리버마켓이 문을 닫자 ‘랜선 니얼굴’ 프로젝트로 전환하여 외국 사람들을 온라인에서 만나 캐리커처를 그리는 활동으로 이어 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업실에 출근해서 열심히 자기 그림 그리고 월급을 받는, 예술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정은혜 작가의 곁에는 가족이면서 예술 활동 매개자이자 매일매일의 충실한 기록자로서 전문적 역할을 하는 장차현실 작가, 서동일 감독이 있다. 그간

열정에 대한 예의

낯선 예술을 마주하기

아웃사이더 아트를 주류 예술계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예술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특정한 미술 사상에 포함되지 않는 예술이라 하는 사람도 있고, 기성 예술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예술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아웃사이더 아트라는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1972년, 영국의 미술사가 로저 카디널(Roger Cardinal, 1940-2019)은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가 만든 용어 ‘아르 브뤼(Art Brut)’를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로 영역했다. 장 뒤뷔페는 사회에서 고립된 독학 예술가들의 낯선 예술을 찾아다녔다. 인류학자를 자처한 예술가는 사실 장 뒤뷔페만이 아니었다. 한동안 서구 모더니스트들 사이에서는 독학 예술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붐이 일었다. 1920년대 초

철학과 예술을 구원할
알록달록한 질문

실패한 인문학자가 되는 즐거움

나는 실패했다. 사실 몇 해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구상한 프로그램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2008년 시작된 현장 인문학에 관한 이야기다. 현장 인문학이란 넓은 의미에서 ‘가난한 사람들’, 이를테면 빈민, 재소자, 홈리스, 장애인 등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 가난한 사람들 곁을 지켜온 활동가들과 몇몇 인문학자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들었다. 활동가들은 무기력한 채로 고립된 사람들에게 시급한 것은 삶의 의지와 욕망을 살려내는 일이라고 했다. ‘빵’만 던지는 것이야말로 한가한 짓이라고, 정말로 절실한 것은 ‘빵’이 아니라 ‘장미’라고. 2008년 나를 찾아온 노들장애인야학(이하 노들야학)의 활동가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 학교에는 “뛰어내리려고

놀듯 배우듯 함께 만드는 ‘가능’

전상혁 학교·사회 예술강사(영화 분야)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은 장애인이 문화예술의 주체가 되어 예술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하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분야 중에 장애인복지관 담당자들이 가장 모호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분야가 영화 분야이다. “장애인 대상으로 영화교육이 가능한가요?” “이러저러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과연 영화 수업이 가능할까요?” 영화 분야는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 있어 ‘가능’에 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 분야가 아닐까 생각한다. 전상혁 예술강사는 2013년 사회 문화예술교육에서 장애인 대상 영화 분야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교육을 해왔다. 앞선 선배 예술강사도 없었고 전혀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서

본다는 것을 탐구하는 원대한 여정

엄정순 작가 · (사)우리들의 눈 디렉터

#1. 어느 때부터인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의 첫머리를 읽으면서 투시하지 않은 보아구렁이 뱃속의 코끼리 그림을 우리는 알아챌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결국 그림 제2호를 보아야만 뱃속의 코끼리를 알게 되지 않았을까. #2.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옛날 속담이 있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 코끼리를 만져 보는데 저마다 다른 부분을 만지고서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코끼리라고 우긴다”라는 내용이다. 다 알지 못하면서 전부 아는 것처럼 행동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속담이다. 속담 자체로는 부정적 뉘앙스를 띤다. 그런데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단순히 눈이 아닌, 오감(여기서는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하기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올해 역시 사람들은 서로를 멀리하며 지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전보다 더 소수의 인원만, 아니 가능하면 그 소수의 인원도 서로를 위해 모이지 말아 달라고 한다. 변이 바이러스는 그렇게 사람들의 물리적 사이와 거리를 더 멀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사람들은 서로의 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웃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흐름과 만남에 대한 욕구로 인해 소통의 방법이 점점 발전하며 우리는 현실 공간이 아닌 온라인 공간에서 만나고서 수업을 듣고, 회의하고, 함께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문화예술교육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공간에서 오감을 나누며

종합에서 대체로, 감각의 새로운 가능성

예술 경험의 장벽을 넘어서

얼마 전에 나는 친구와 삼청동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 다녀왔다. 나는 미술관에 다니는 건 좋아하지만 정작 작품을 감상하는 법은 잘 모른다. 최준도 아니면서 맘에 드는 작품 앞에서 할 줄 아는 말이 ‘어? 예쁘다’뿐인 나는 친구에게 놀림을 당하기 일쑤였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을 발견했다. 얼룩덜룩한 회색 바닥에 하얀색으로 헤드셋 모양과 QR코드가 있고, 그 위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이라고 적혀 있다. 쪼그려 앉아 사진을 찍고 있는 그림자가 보인다. 이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재난과 치유》(2021) 전시 중 한 작품 아래의 바닥을 찍은 것이다. 직원에게 문의한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을 감각하기

배희관밴드 장애인을 위한 음악교실 <비비웨이브랩>

우리는 음악을 어떻게 감각할까. 청각을 통해 들리는 소리로?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로? 음악을 처음 배우던 순간은 어땠는지 떠올려보자. 계이름과 악보 보는 법을 먼저 익히기도 하고, 혹은 악기를 다루는 손 모양을 통해 음악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같은 방법으로 음악을 감각하는 것은 아니다. 종종 그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감각하는 사람에게는 불친절한 방법으로 음악을 안내하기도 한다. 가령, 영화 속에서 음악이 나오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비장애인은 영상 속에서 음악이 나오는 순간 즉각적으로 알아차리고 느낄 수 있겠지만, 청각장애인에게는 고작 폐쇄자막에 [음악]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