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끊임없이 의미를 만들어내고 전달하려는 존재다. 가히 Homo-Significans (meaning-makers)라 불릴 만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점에 있어 음악이 언어에 비해 열등하다고 말한다. 이 문제는 오랫동안 음악미학자들을 괴롭혀 왔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음악은 언어와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 질문하는 듯한 악구가 나오면 대답하는 듯한 악구가 응수한다. 말의 시작과 끝맺음을 알리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 있듯 음악에서도 ‘이제 음악이 끝이로구나’를 짐작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다. 트럼펫의 팡파레가 울리면 ‘뭔가 대단한 일이 시작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저음(低音)악기와 팀파니의 느린 부점 리듬을 들으면(베토벤의2악장에서처럼) 장례식이 연상된다. 이렇듯 음악에도 언어와 유사한 정보전달적인 성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만약 음악이 언어처럼 의미전달을 하기 위해서만 만들어졌다면 언어에 밀려 일찌감치 사라지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언어에 비해 음악의 전달능력은 불분명하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왜 언어라는 완벽한 수단이 있는데, 음악을 지금껏 껴안고 살아 왔을까?
1983년 이스라엘의 케바라에서 동굴에 매장된 성인남성의 것으로 보이는 골격화석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케바라 1호 표본으로 알려진 약 6만3천년 전의 골격화석으로, 갈비뼈, 척추골, 골반 뼈가 완벽히 보존된 최초의 네안데르탈인의 표본이다. 이 표본을 연구한 결과 학자들은 표본의 설골(후두의 연골에 붙어있는, 말하는데 꼭 필요한 근육)이 현대인류 설골의 형태와 사실상 같고, 혀 밑 신경관(말을 하는데 필요한 복잡한 운동제어를 담당하는 신경들이 지나가는 신경관)이 현대 인류와 똑같은 크기이며, 흉추관(횡격막을 제어하는 즉, 숨을 제어하는 신경이 지나가는 신경관)의 크기가 현대인류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 모든 사실들은 네안데르탈인들이 말을 사용하였다고 하면 가장 잘 들어맞는다. 그러나 그들이 상징적 기호로서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더 압도적이다. 그렇다면 왜 발성과 말을 담당했을 기관들이 발달하게 됐을까? 진화심리학자 스미스 미덴은 그들이 말과는 다른 방식의 의사소통체계, 그러니까 음성을 사용한 노래와 같은 의사소통체계를 갖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와 유사한 의사소통방식의 예는 아직 언어능력을 획득하지 못한 아기들에게서 볼 수 있다. 얼마 전 기저귀를 찬 쌍둥이 아기 2명이 이상한 나라(!)말로 대화를 하고 있는, 일명 ‘쌍둥이 옹알이 동영상’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한 적이 있다. 아기들이 사용한 언어는 시종일관 ‘다다다다다…’라고만 하는 우리에게 통용되는 언어는 아니었지만 심각한(?) 높낮이와 액센트를 갖고 있었다. 아기에게 말을 거는 엄마들의 언어도 이와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다. 잘 알지 않는가? 엄마들이 다른 사람들과는 멀쩡히 대화하다가도 아기들에게 말을 걸 때면 갑자기 목소리 톤을 높이고 높낮이를 과장한다. 그렇게 하라고 꼭 누구한테 배워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렇게들 한다. 그것은 아기들이 말의 리듬, 박자, 멜로디에 관심과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아기들이 단어의 의미를 알아듣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엄마들은 말의 멜로디, 리듬, 뉘앙스를 통해 경고, 달램, 위험, 승인 등 자신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를 IDS(Infant-directed speech)라고 한다. 미덴은 인간이 언어를 진화시키기 전의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호모 속들이 사용했을 의사소통의 수단이 IDS의 음형들과 유사한 종류의 음악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미덴은 이 원시언어를 ‘전일적이고 조작적이며 음악적인 언어’라는 의미에서 Hmmmm(Holistic, Multi-Modal, Manipulative, Musical)이라고 불렀다.
IDS나 Hmmmm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주요한 목적을 두고 있는 일반 언어와는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 IDS를 오랫동안 연구한 트레허브 박사는 IDS의 과장된 운율은 감정을 표현하고 사회적 결속을 일으키는 것에 있으며, IDS와 더불어 엄마가 아기들에게 불러주는 노래는 아기의 생존율을 높이고 엄마와 아기 간 결속을 높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아기를 안고 노래를 부르며 리듬에 맞춰 흔들거나 다독거리는 행위는 상호 애착의 감정을 공유하고 강화함으로써 정신생물학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내 이런 육아를 더 잘하는 어머니들과 그러한 보살핌을 잘 수용한 아기들이 결국 번식상의 이점을 누렸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동물들에게서도 관찰되고 있다. 겔라다 개코 원숭이는 다양한 멜로디와 리듬을 통해 감정 상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수컷끼리 격렬하게 싸우다가 수컷이 암컷에게 다가갈 때에는 긴 특정 연속 음을 내어 암컷들에게 친근감을 드러내는 식이다. 긴팔원숭이들은 짝짓기 이전과 이후에 수컷과 암컷이 서로 이어받아 ‘노래’를 부른다. 이 이중창을 부르는 빈도와 부부간 결합강도 간에 강한 상관성이 있음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은 음악에 감정을 조작하거나 사회적 결속을 일으키는 작용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은 우리 역시 음악의 이러한 힘을 잘 알고 있다. 몇 해 전, 많은 사람들이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합창의 힘을 충분히 경험했다. 함께 음악을 하면 왠지 모를 유대감이 생긴다. 이러한 감정은 음악적으로 몰입되면 될수록 강해진다. 그 장면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가슴이 뜨거워지지만, 실제로 경험해본 사람은 가슴이 터질듯한 감동을 느낀다. 너와 나는 출신도, 나이도, 생각도 다르다. 그러나 우리의 깊은 내면에는 공감할 수 있는 뭔가를 갖고 있다. 이 느낌을 합창의 순간보다 더 강렬하게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음악을 통해 이러한 경험을 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인간에 대해 가지는 신뢰감이 어찌 같겠는가? 맥닐은 이를 음악이 일으키는 ‘경계상실 효과’라고 표현하였다. 함께 음악활동을 하면 자아의식이 약해지고 다른 사람들과 몸과 마음을 공통된 감정상태로 만들어내어1)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진다.
무리를 지어 광범위한 협력이 필요한 사냥에 참여해야 했던 원시 인류들은 사회적 결속이 생존에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추운 빙하기를 이겨야 했고 시시각각 닥쳐오는 위험에 맞서 자신들의 무리를 방어해야 했다. 그들이 음악을 통해 마음을 추스르고 연대감을 이끌어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들이 20만년 이상 지구상에서 버티면서 진화시킨 바로 그 음악적 신경망이 우리에게도 유전자를 통해 전해졌을 것이라는 가설은 아직 가설일 뿐이지만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이렇게 경험되고 있기 때문이다.
1)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함께 연주하면 뇌파가 같아진다고 한다. 연구진(독일 막스 플랑크 인간개발연구소 울만 린덴베르거 박사)은 기타리스트 8쌍에게 짧은 퓨전재즈 멜로디를 함께 연주하도록 하고 뇌파를 측정했다. 그 결과 연주를 준비할 때부터 뇌파의 유사성이 증가하기 시작해 함께 연주할 때 최대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연주자들 사이의 조화로운 행동, 혹은 음악을 즐기는 행위 자체에 관여하는 뇌 활동이 이들의 뇌파를 유사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이번 결과는 사람들 사이의 조화로운 행동이 서로의 뇌파 진동에 영향을 주어 유사하게 맞춰지는 ‘진동공역’ 현상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뇌파의 유사성이 음악의 박자나 멜로디에 반응해 일어나는 것인지, 혹은 연주자가 서로의 움직임을 따라가면서 일어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헤럴드 경제, 2009.03.18자 신문기사)
이미경의 뇌의 시대에 밝혀지는 음악의 비밀 시리즈
(1) 듣는 것과 들리는 것 – 세계적인 타악기연주자 에블린 글레니의 비밀
▶ (2) 음악과 의사소통 – ‘Hmmm-‘ – 백만년 전 전인류의 뇌에서 발견된 음악의 비밀
(3) 음악과 동작 – ‘(읍!—) 오빤, 강남스타일’에 숨겨진 비밀
글 | 음악학자 이미경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이론전공, 동대학원 음악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예술대학에서 음악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내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에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센터에서 일하였으며, 현재는 전남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관심분야는 음악철학, 음악 미학적 분석과 음악적 창의성, 음악영재교육 등 다양하다. 다수의 음악미학과 한국작곡가들에 대한 작품 분석에 관한 논문이 있으며, 저서로는 『도전, 혹은 스밈(작곡가 이건용과의 대담)』,『철학, 예술을 읽다(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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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춤,언어는 하나다.’ -칼 오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