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왜?’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현상의 배경지식을 늘리려고 애쓴다. 미술사의 목적은 한가지, 배경지식 전달로 압축된다. 미술에 있어서 배경지식은 역사와 철학이다. 같은 미술의 역사를 적었지만 조금씩 다른 접근방식을 택하고 있는 세 가지 책이 있다.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서도 대중의 눈높이에 근사한 글쓰기 특징을 가진 미술사 책 들을 소개한다.

 

서양미술사

E. H. 곰브리치 지음 | 백승길 옮김 | 예경

 

미술사는 지오르지오 바사리가 ‘미술가 열전’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바사리를 ‘미술사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에 비견할 수 있는 미술사 저자가 바로 곰브리치다. 그의 ‘서양미술사’는 미술에 입문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필요한 필독서이자 바이블이라는 점에 대체로 이견이 없다. 1950년대에 만든 책이 아직도 분야별 베스트셀러에 들곤 하는 사실이 그를 입증하는 것 아닐까.

 

곰브리치는 20대에 이미 『아이들을 위한 세계사』를 저술해 주목을 받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는 그만큼 평이하고 쉬운 글쓰기에 능하다는 뜻이다.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체를 관통하는 관점이 완성된 상태에서 핵심적인 내용에 집중하는 이야기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서양미술사’는 핵심적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구어체로 집대성했다는 평을 듣는 책이다. 동양미술사가 매우 간략하다는 비평을 받고 있지만 그건 다른 책으로 대체하면 될 일이다. 도대체 1950년대에 서양의 어떤 학자가 동양미술사를 제대로 알고 연구했겠는가? 그나마 동양미술사의 집대성이라 평가 받는 마이클 설리번의 ‘중국 미술사’가 나온 것이 1984년도였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고전예술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그의 책 ‘미학 오디세이’는 쉽고 평이했다. 그러나 미학이란 것이 있는 줄도 몰랐던 우리들에게 그가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바로, ‘미술, 알고 보면 전혀 어렵지 않다.’는 것. 그의 글쓰기는 무척이나 대중적이어서 필요 이상으로 (물론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자극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그가 쓴 서양미술사, 궁금하지 않은가? 미학의 눈으로 본 서양미술사!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잘 알려진 그의 다른 책처럼 전혀 쉽지도 않고 대중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어려운 편이다. 출판사의 설명만큼 읽어 나가기 어렵다.

 

“‘서양미술의 원리’와 ‘서양미술의 역사’를 하나로 묶어 내, 서양미술의 원리를 그 시대의 상황 안에서(공시적) 설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서양미술의 역사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통시적)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는 철학과 역사를 혹은 미학과 미술사를 접목시켜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서양미술사를 만들어 내려 하고 있다. 그만큼 ‘통섭적’이고 ‘입체적’인 시도는 낯설 수 밖에 없다.
보통처럼 미술사 전체를 다 설명하지도 않는다. 대신 큰 흐름에 따라 주제를 선택하고 각각의 주제에 충분한 깊이를 갖도록 데이터를 압축해 놓았다. 진중권 만의 진지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기존의 미술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없이 좋은 책이 될 것이다.

 

눈의 모험: 닮은꼴에 숨겨진 발상의 근원 찾기

마츠다 유키마사 지음 | 김경균 옮김 | 정보공학연구소

 

‘눈의 모험’은 디자이너에게는 금지옥엽 같은 책이다. 마츠다 유키사마가 일본의 대표적 디자인 잡지 『디자인 현장』에 1997년부터 2004년까지 ‘Designscape’라는 타이틀로 연재되었던 칼럼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이다. 미술사와 동떨어져 보이는 이 책을 굳이 미술사 영역에 포함시킨 것은 이 책에 담긴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 때문이다. 미술사라고는 절대 말하지 않지만 읽다 보면 미술사에 대한 이해가 저절로 깃든다. 그래서 좋은 책이다.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설명한 책이라는 점 때문에 이 말이 실감이 안 날 수도 있겠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는 기호, 패턴, 색채 등 미술을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들이 사실은 역사적 필요에 의해 뚜렷한 목적의식 하에 만들어졌다는 그의 주장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아, 이런 역사가 있는 거였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미술사가 우리 생활 속에 얼마나 밀접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가를 체험하고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점, 선, 면에도 역사가 깃들여 있다는 사실이 근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