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비밀상자

 

본격적인 추석연휴의 서막을 알리는 어느 한낮의 오후. 도심은 귀향을 알리는 차들로 북새통이고 거리에는 선물꾸러미를 짊어진 행인들로 가득하다. 오늘은 고양문화재단지원 쌍방향 체험형 문화예술프로그램인 <엄마의 비밀상자> 공연 마지막 날.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는 명절과 휴무일을 앞에 두고 공연장도 아닌 주민자치센터에서 펼쳐지는 연극이 ‘과연 주민들의 참여와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안고 백석2동 주민센터를 찾았다. 계단을 한 발자국 오를 때 마다 어렴풋이 들려오는 웃음들과 박수소리를 듣고서야 이것이 곧 ‘기우’임을 깨달았다.

 

 

내밀한 꿈을 나누는 자리

 

애초에 공연장이 아니니 무대도 없다. 물론 무대가 없으니 객석이 따로 있을 리도 만무하다. 이곳은 백석2동 주민센터 다목적실. 네모 반듯한 공간의 귀퉁이에는 건반과 타악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고, 그 옆 너머로 이불이 지붕 위에 내걸린 마냥 용도를 가늠할 수 없는 천 들이 기다란 줄 위에 매달려 있다. 방의 한 쪽 면을 통째로 장식한 거울 속에는 전 연령을 망라한 50여명의 참가자들이 바닥에 앉아 각자의 상자를 꾸미느라 여념이 없는데 그 사이로 검은 옷을 상하로 맞추어 입은 극단 마실 소속 배우들이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주민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30여분의 주어진 시간 동안, 오늘 공연의 관객이기도 한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꿈을 예쁘게 보듬을 상자를 만들 예정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얼굴에 행복한 웃음보따리를 한아름 안은 중년 여성이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이기도 한 김신혜 예술강사의 권유로 참가자들 앞에 선다. 그녀는 조심스레 밀봉한 상자 속에 가둬놓은 종이를 꺼내 손에 든 채 자신만의 내밀한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 마음은 곧 해바라기입니다.”

‘우리동네로 찾아오는 새로운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취지로 기획된 이번 프로그램에서 참여자의 경험이 예술형식을 빌어 표출되는 순간이다. 이에 앞서 참여자들은 다 함께 책을 읽어보고 그것과 연관하여 자기 생각을 담은 가슴속 이야기를 비밀상자를 꾸몄었다. 이번에는 배우들의 차례. 김신혜 강사는 조심스레 비밀상자를 열어젖히고 그 속의 내용물을 관객들과 교감한다. 그 속에 담긴 이미지와 상징은 본 자리에서 펼쳐질 “엄마의 비밀상자”라는 공연의 시작이자 프로그램의 연결선상에 자리하고 있다.

 

 

무대와 객석 구분없는 역동적인 공연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지 않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그야말로 역동적이다.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다목적실의 소품은 어느 틈인가 적재적소에 활용되고 사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타악기와 건반은 제 차례에 와서는 그에 걸 맞는 소리를 뿜어댄다. 최소한의 세트이면서 배우들의 차림새도 간소하지만 연극 안에 인형극적인 요소가 가미되기도 하고 그에 곁들여진 율동과 퍼포먼스, 음악의 어우러짐은 2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그야말로 종합예술세트를 선사한다.

원래 “엄마의 비밀상자”는 2010년부터 각지에서 공연되며 큰 호응을 받아왔던 70분짜리 “꿈꾸는 거북이”가 원작인데, 이 연극은 ‘엉뚱이’라는 한 어린 거북이가 겪는 성장통을 묘사한 작품이다. 하지만, 찾아가는 공연을 위해 ‘엉뚱이 엄마’의 꿈을 부각하여 각색되었고, 주민센터라는 공간의 활용에 맞게 함축적이면서도 임팩트 있는 형태로 변모했다. 거기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접목하여 단순히 공연관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자기 생각을 담아내고 공연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재탄생 했다.

요즘 어머니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했다는 주민 조은진씨는 “연극에서 제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을 거라 기대를 했는데, 주인공 엉뚱이의 모습을 보면서 제 안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고 좌절과 희망을 찾는 모습에서 내가 살아오는 과정을 되새겼다.”라고 프로그램 참가후의 소회를 밝혔다.

1시간여의 프로그램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정적이 감도는 공간에는 배우들의 뒤 마무리가 한창이다. 어지러이 널려있는 소품 새로 참여자들이 혹 두고 갔을 지도 모를 ‘비밀상자’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보니 이번 프로그램의 호응도가 꽤나 높았음을 엿볼 수 있다. 그에 걸맞게 배우들의 얼굴도 싱글벙글이다. 무대와 객석을 굳이 나눈다고 하여 ‘좋은’ 공연일 수는 없다. 정답은 바로 ‘호흡’과 ‘소통’이다.

 

 

글.사진_임종세 경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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