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미혼모를 위한 문화예술교육-들강달강, 어린엄마
까르르… 호호호…
예쁜 색지에 색연필로 여기 저기 꾸미고, 갓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면서 활짝 웃는다. 서로에게 돌아가면서 쓰는 편지는 자세히 들여다보니 “순풍 순풍~ 애기 잘 낳으세요, 예쁜 아기 탄생을 미리 축하해~”라고 쓰여 있다. 평범한 태교수업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앳된 얼굴의 10대들이다. 바로 10대 미혼모를 위한 문화예술교육 「들강달강, 어린엄마」 수업현장이다.
국악그룹 여디디아의 문화예술교육팀은 대한사회복지회 광주지부 미혼모 쉼터인 ‘우리 집’의 이용자를 대상으로 지난 2006년부터 10대 미혼모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이들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청소년들이 임신을 하게 되면 학교에서 가정에서도 외면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들에 대한 사회복지 차원의 지원은 출산 때까지 지낼 수 있는 쉼터와 간단한 직업교육 및 검정고시를 볼 수 있는 교육은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실상 이들에게 꼭 필요한 정서적 측면의 지원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여디디아의 「들강달강, 어린엄마」 수업 역시 전국의 다른 복지회에서는 찾기 보기 힘든 문화예술교육이다.
“여기 온 친구들은 다들 갈 곳이 없어요. 심지어 집에서도 쫓겨나 숨듯이 여기로 찾아오기도 하죠. 이런 친구들의 대부분은 많이 우울해 하고 자기 자신이 주위로부터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매주 선생님들이 자신들을 위해 찾아와 음악도 듣고, 요가도 하고, 다양한 미술수업도 하죠.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표현하고 드러내기도 하고 서로를 위로해 주기도 하게 되요”여디디아의 이은나 대표는 10대 미혼모들이 이 수업을 통해 조금이나마 자신을 표현하고, 흔들린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길 바란다고 한다.
실재 이곳에 처음 오는 친구들은 며칠간 계속 울기만 한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임신과 사회적 고립 속에서 혼란스럽고 당혹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주일에 두 번 진행되는 「들강달강, 어린엄마」 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면서부터는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한다. 우선 먼저 쉼터에 온 다른 미혼모들과 자연스럽게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자신들을 위로할 수업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열린다.
「들강달강, 어린엄마」 는 몸을 이용한 마음열기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유도하는 들강반 수업과 다양한 미술 활동을 통해 닫힌 마음을 표현하는 달강반 수업으로 진행된다. 어린엄마들에게 들강반 수업은 인기가 좋다. 뱃속의 아가를 위한 명상태교도 되면서 배가 불러올수록 힘이 드는 신체를 자연스럽게 이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들강반 김수정 강사는 “처음 온 아이들은 눈도 안 마주치고, 말도 안해요. 동작도 따라하지 않고… 그러다 한 달이 가면 저를 기다리고, 두 달이 가면 조금씩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어제 병원 다녀 온 이야기, 뱃속 아기 이야기… 그리고 이제는 ‘아이 낳고 나서 대안학교 갈 거예요, 피부샵에서 일하고 싶어요’ 라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가장 보람이 있다고 한다.
달강반 수업은 실내외에서 다양한 내용으로 진행된다.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은 도예체험을 하러 가는 현장학습과 뱃속의 아기를 위해 만드는 태교일기이다. 특히 태교일기는 아기를 위한 어린엄마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비록 낳자마자 입양을 보내야하는 현실이지만 최소한 뱃속에 있을 때의 기억만이라도 아기에게 남겨주고자 한다. 이 태아일기는 엄마로서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인 셈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임신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태교일기를 통해 숨겨져 있던 아기에 대한 지극한 모성이 나타난다.
「들강달강, 어린엄마」 수업이 진행되면서 이 어린엄마들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아기 낳을 때까지 조용히 있다가 떠나면 되지…’했던 생각들로 다른 사람들과의 어떤 교류도 하지 않았던 이들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 그러면서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던 우울증과 자괴감이 수업을 통해 긍정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수업에 3개월 이상 참여했던 친구들은 주도적으로 수업을 이끌어나가고 당당하게 자신의 얼굴까지 밝히며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방식의 문화예술교육 수업으로 쉼터 생활의 작은 즐거움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주로 내부에서만 지내고, 보는 사람들만 보다가 외부에서 선생님이 찾아와 매번 새로운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선생님들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지만 나중에는 먼저 선생님을 기다리게 된다고 한다.
또한 태아일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말하지 못했던 것들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아기에 대한 사랑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순산도 기원을 한다. 더욱이 더 큰 변화는 이들이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수업을 통해 ‘자신에 대한 긍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취재차 찾아간 날이 이번 기수 마지막 수업이라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서 돌린다. 한 어린엄마에게 어떤 글이 가장 마음에 드냐고 물으니 ‘이제 곧 아기가 태어날 텐데 건강하게 예쁜 아기 낳으라’는 말이라며 지긋이 웃는다. 한 친구는 수업 시작 무렵엔 혼자서 울고 있더니 이내 적응을 하고 깔깔깔 웃으며 재미있게 참여한다. 어쩌면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혼자 방에서 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들강달강, 어린엄마」 를 통한 미혼모들의 정서의 긍정적 변화는 다른 지역의 쉼터에도 영향을 주었다. 여디디아에 문화예술교육 수업의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거리상 직접 가서 진행 할 수 없어 프로그램 운영안만 주었으나 실행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 지역의 쉼터에는 수업을 진행할 문화예술 전문 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현장에서는 이미 미혼모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의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오직 도덕적 잣대만을 가지고 외면당하는 10대 미혼모 어린엄마들. 어쩌면 한 순간의 실수라고 하기엔 감당하기가 너무 버거운 가혹한 현실 앞에서도 그녀들은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검정고시도 준비하고, 피부샵에 취직할 계획도 세우고 무엇보다도 직접 키우지는 못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살아갈 자신의 아기에게 엄마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기댈 곳 없는 이 어린엄마들의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뿌린 문화예술교육이 서 있다. 맨 처음 우리나라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꾸준히 진행되어온 10대 미혼모를 위한 문화예술교육 「들강달강, 어린엄마」 . 이제는 이 어린엄마들이 상처받아 눈물로 지새우기 보다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상처를 보듬고 씨앗이었던 희망에 날개를 달아 훨훨 날아갈 수 있길 기대해본다.
글.사진_정선희 광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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