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마켓




김지우 | 웹진 콘텐츠팀<!– | nanaoya@hanmail.net–>

지난 8월 27, 28일 양일간 고양시 덕양어울림누리에서, 2004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마켓(Arts Program Market, 이하 2004 APM)이 열렸다. 아르떼를 통해 전국 문예회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공모사업이 홍보가 되고, 관련 프로그램들이 한 곳에 모이는 자리에 아르떼가 빠질 수 없다.

짧은 경제학 지식으로 ‘market(이하 마켓)’의 개념을 생각할 때, 18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그 이름도 유명한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먼저 떠오른다.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모든 경제활동이 조정되고 개인과 사회의 조화,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실현된다고 하였다. 이렇듯 시장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 때문에 정부는 간섭하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아담 스미스의 18세기 이론을 현재에 적용시킬 수는 없지만 ‘시장-마켓’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혹은 자유시장논리가 그대로 나타나는 공간이다. 그로 인해 생겨났던 문제점들이 2004 Arts Program Market 에서도 답습해서는 안 될 것인데, 이번 마켓은 어떨까.

이번 2004 APM은 정부에 의해 계획된 ‘마켓’ 이다. 사업의 주최인 전국문예회관협회와 후원인 문화관광부, 프로그램 공급자와 생산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은 모두 공공재적 성격을 띄고 있는 것들이다. 공공재의 내용물을 가지고 ‘마켓’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사업인 것이다.
그동안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해서 불모지에 가까웠던 지역 문예회관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취지이다. 지역 문예회관의 가동률이 10% 안팎에 그치고, 문화예술교육 관련 전문가들이 배치되어 있지 않는 현실에서, 최대 3200만원을 정부에서 지원하여 문예회관에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사도록 유인하고 있다. 지역문예회관을 문화예술교육의 거점으로 삼아 지역 청소년 및 주민들의 문화향유능력을 계발하고, 문화예술단체의 창의적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제공 능력을 제고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서 지속적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공급자(program provider)를 육성할 계획까지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공연예술이나 교육 프로그램과 같이 ‘공공재’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들이 어떻게 ‘마켓’에서 매매가 이루어질까, ‘마켓’이기 때문에 시장의 논리가 그대로 드러나지 않을까, ‘공공재’이기 때문에 마켓의 형식은 가져가되 지나치게 시장의 속성은 드러내진 않겠다 등등의 여러 생각들이 교차한다. 실제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더 멀다는 고양시까지 가는 동안에 이번 행사가 어떤 그림으로 나올까 그려보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2004 Arts Program Market

2004 APM이 어떻게 꾸려지고 있는지 궁금증에 한껏 부풀어 프로그램을 받아들고 행사장에 들어서자, 어라,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런데 이 빡빡한 일정을 언제 다 소화하지. 그러던 차에 몇 가지 광경들이 나의 눈을 사로잡는다.
입구에 들어서면 맨 처음 보이는 전시코너에 사람들이 두런두런 모여 있다. ‘금난새와 함께 하는 해설이 있는 가족음악회’ 프로그램이다. 역시 ‘금난새’라는 프리미엄이 붙어서인지, 지역 문예회관 분들의 반응이 좋은가 보다. 그런데 저 작은 공간에서 모든 상담과 전시가 이루어진다는 것인가? 프로그램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설명을 하기에는 전시공간이 너무도 비좁아 보인다. 사람 딱 한명 앉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2층에 따로 프레젠테이션 공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프로그램 상으로 볼 때 쉬는 시간 없이 계속 이어지는 프레젠테이션 순서를 보고 이를 어찌 견뎌야 할까 내심 고민했지만, 다행히도 혹은 이상스럽게도 리플렛에 나온 순서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덕분에 리플렛 보고 시간을 짠 구매자(지역 문예회관)분들은 당황할 수도 있었겠다. 확실히 전시공간에서 사람들에 밀려 설명만 듣다가, 프로그램 생산자의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듣고 영상자료도 보고 하니 ‘공식적’으로 이해되는 부분이 많긴 하다. 역시 이번 프레젠테이션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은 (주)난장컬쳐스의 ‘전통 공연 문화 예술 체험 학습 프로그램’이었다. 김덕수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봐도 ‘김덕수’에 집중된다. 김덕수가 정말로 함께 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프로그램에 대한 문의도 직접 해보고 구매자들의 반응도 살피던 중, 실제 구매 고객인 지역문예회관 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증이 생겼다. 마침 프로그램을 살펴보며 구매할 프로그램을 체크하고 계시는 지역 문예회관의 실무자와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지역 문예회관에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한번도 실천해 본 적이 없고, 실제로 담당하고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일반 공무원들이 담당하고 있지요. 이런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도 예산문제 때문에 할 수가 없었는데, 마침 정부에서 돈을 지원해 준다고 하니 다른 직원들과 상의하여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이 곳에 오기 전에 미리 프로그램 개괄서를 받아 협의를 하고 왔습니다. (실제로 그 분의 종이에는 색볼펜으로 여러 개의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이곳에서 실제 프로그램을 둘러보고, 가계약을 하기 위해서죠.
정부에서 예산을 지원해 주지 않았다면, 저희가 이런 일은 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기회가 더 생긴다면 열심히 참여할 의사가 있습니다.”

그 분이 선택한 프로그램 중에는 매개자 교육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 프로그램이 실제 구매로 이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 지역 문예회관에서 단순히 현상 유지에 그치는 프로그램 운영을 넘어서려는 의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너무 짧았던 준비기간

7월 27일부터 8월 13일까지 3주 동안 공모에 접수한 126개 단체 175개 프로그램 중 72개 단체 97개 프로그램이 선정되었고, 이 중 71개 단체 95개 프로그램이 마켓에 참가하여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전시와 상담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가만. 공모가 8월 13일에 끝나고 마켓이 27일에 열렸으니 불과 2주 동안 심사를 비롯하여 마켓 행사 자체의 기획과 준비가 이루어진 것이다. 처음 시도 되었기에, 매우 많은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2004 APM 행사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만들어 져도 되는 것일까. 이번 행사를 기획한 (사)다움문화예술기획연구회의 추미경 실장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르떼 : 준비 기간이 매우 짧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미경 : 2주라는 준비기간은 제대로 행사를 준비하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2주라는 시간에 이런 행사를 준비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사회적인 필요성과 마켓의 좋은 점을 생각해 볼 때 필요한 행사라고 느껴 진행

하였습니다. 실제로 ‘다움’에서는 ‘마키브(MARKIIV : MARKet for Invisible and Intangible Value, 문화예술기획시장)’을 기획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재정적인 이유로 시장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문화관광부의 의지도 있고 해서, 이번 기획을 맡게 되었습니다. ‘다움’도 공모에 프로그램을 출품한 단체이기 때문에 어떤 유착관계가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 모두 감내하고 사회적인 필요성에 의해 진행한 사업입니다. 비교적 짧은 준비기간에 기획된 행사였던 것에 비해 정도면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2주일 내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웬만하면 수고했다는 말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정말 수고했습니다. (웃음)/font>

아르떼 :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해서 ‘마켓’ 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있을까요.

추미경 : 이번 마켓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공유’와 ‘선택’입니다. 이를 통해서 긍정적인 인식을 뽑아내자는 것이죠. 나아가 예비 프로그램 공급자를 교육하고, 준비시키자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프로그램이 매매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을 봐야 합니다. 이런 마켓이 앞으로 계속 열려야 좋은 프로그램들이 더 나오지 않을까요. 그리고 프로그램 기획자로서 저희가 하는 일은 ‘연결’을 하는 것이죠.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호응이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주체들 사이의 이해와 합의 수준이 어느 정도이냐의 문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아직 시작단계인 한국의 아트마켓의 큰 걸음을 뗀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그게 뭘까.

질 보다는 양?

전시장의 프로그램 부스를 돌아보고,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프로그램도 발견할 수 있다. 교육적 철학과 비전이 부족한 관성적인 프로그램들뿐만 아니라, 비슷비슷한 프로그램도 많았고, 문화예술교육적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인데 가계약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지역 문예회관 분들이 구매자의 입장으로 지역의 실정에 맞는 프로그램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프로그램을 알아보긴 하지만, 결국엔 모이는 곳에만 모이게 되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질도 물론 고려하지만, 지역 문예회관 자체가 1000석 정도의 획일적인 대공연장을 보유하고 있고,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소규모로 내실 있게 진행되는 프로그램보다는 대규모 관객을 확보할 수 있는, 일회성일지라도 반짝이는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까닭이다. ‘금난새’와 ‘김덕수’가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리라.
처음의 뜨거웠던 열기에 비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얼굴엔 지쳐가는 표정이 역력하다. 가계약이 몇몇 프로그램에 집중되고, 단시안적으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는 모습들에 대한 실망일 것이다. 이에 여기저기서 자조 섞인 농담들이 들려온다. 끼워 팔기를 하자, 패자부활전을 하자 등등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뼈가 있는 농담들이다.

일정 심사를 통해 걸러진 프로그램들이라고는 하지만, 프로그램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이에 문화관광부 문화예술교육팀의 용호성 팀장의 말을 빌리자면, 이번 공모사업을 통하여 질 좋은 프로그램을 선별한다기 보다는 정말 아니라고 판단되는 프로그램을 걸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이 점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생산하고 기획하는 공급자의 능력이 이제 막 배양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교육에 초점을 맞춰 심사를 하고, 막상 마켓에서는 시장논리, 상업주의에 맞춰 가계약이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선택받지 못한 다른 프로그램들은 그저 들러리를 서기 위한 것이었냐는 말들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구매자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공급자들 역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관점이 정립되어 있지 못한 상황에서, ‘문화’ ‘예술’ ‘교육’을 상업적으로 판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앞으로의 Art Program Market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마켓의 교두보를 위한 이번 2004 Arts Program Market은 공급자나 구매자 모두가 처음 내디딘 발걸음이었다.
이 사업을 후원한 문화관광부가 밝힌 2004 APM의 취지는 ‘공간’, ‘마켓’, ‘지원사업’이라는 세 가지이다. ‘공간’은 지역 문예회관이라는 ‘공간’을 활용하여 지역 문화예술 향유자를 키우고, ‘마켓’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기획자들을 위한 소통과 구매, 발전의 자리, ‘지원사업’은 문화예술교육의 관점에 맞는 프로그램을 걸러내고, 앞으로 문예회관이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취지이다.

시간의 부족했고, 문화예술교육적 의미가 많지만 가계약이 성사되지 않은 프로그램이 생기고 시장논리의 부작용과 한계가 드러나는 등의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이것은 지역 문예회관의 현실에 따른 문제점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전국문예회관협회의 실무자의 말에 따르면, 현재 지역 문예회관에는 전문적인 기획인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또, 실제 운영은 구청에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필요성을 인식하더라도 소통의 부재와 업무량 때문에 사업을 추진해 나갈 때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유명인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에 가계약이 집중되었던 상황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서울을 제외하고)이번 프로젝트에 신청한 문예회관은 3200만원을 의무적으로 프로그램 구매에 써야하지만, 교육 대상자들을 모으는 일이 어렵고 프로그램이 장기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때 지속적으로 관리해줄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하반기 대관시기가 끝난 상태에서 마켓이 열렸기 때문에 시기상 늦은 감도 있다. 이런 마켓이 열리기 전에 과도기적 상태가 있었다면, 다시 말해 전국단위 이전에 시/군 단위 혹은 연구개발차원에서 먼저 마켓이 열렸다면 서로 이해하고 사업을 추진해 나가기에 훨씬 좋은 환경이 되지 않았을까.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마켓이 정례화 될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진 확실히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1월까지 평가를 마치고 내년 초에 2005년도 사업을 위한 마켓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진 결정되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마켓이 계속해서 열리고 성장한다면 전문적인 프로그램 기획자의 탄생도 기대 해 볼 만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마켓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철한 평가가 뒤따라야 하다. ‘기금’이 눈 먼 돈이 되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쓰일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전문위원과 모니터링을 활용한 평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아울러 이번 마켓에서 수요형성이 미쳐 되지 못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문화관광부가 별도의 지원방안을 마련할 생각이라고 한다. 프로그램 사이의 수준 편차는 모두가 함께 계속해서 고민하고 발전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김지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