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재학중인 미국 뉴욕의 한 대학교의 미술교육과는 석,박사 과정의 대학원 학생들만으로도 총 학생의 수가 이백 명을 육박한다. 이 많은 수의 학생을 보고, 오랫동안 뉴욕의 공립학교에 재직해 왔다는 한 선생님은 아주 놀랍다고 말씀하셨다. 영어나 수학 같은 실용적인 과목에 밀려 그 규모가 점점 축소되고 있는 현 미국교육계의 미술과목 비중을 생각할 때, 미술교사가 되겠다고 모여든 예비교사들, 현장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그리고 미술교육에 종사하는 학자들이 이리도 많을 줄 몰랐다는 것이다. 흔히 미국 등지의 서구국가에서는 창의력을 중시하는 교육을 위해 예술교육 분야를 많이 지원하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미국교육계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얼굴을 맞대고 서로에게서 배우자
이런 점을 생각해 볼 때, 뉴욕시 예술교육학회(New York City Arts in Education Roundtable)를 통해 예술교육분야의 종사자들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검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지난 10월 29일, 30일 양일간 뉴욕 맨하탄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열린 이 학회는 “얼굴을 맞대고 (Face to Face)” 라는 친근한 제목을 내세웠으며, “예술교육에 대해 서로에게서 배우자 (Learning from each other about arts in education)” 라는 소제목을 덧붙였다. 이 제목들 역시 앞서 설명한 예체능 과목들의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얼굴을 마주하고 잘 의논해 보자는 목적을 시사하고 있는 듯 하다. 리버사이드 교회는 프랑스의 13세기 고딕 성당을 모델로 하여 지은 웅장한 건축물로, 마틴 루터 킹(Dr. Martin Luther King Jr.)과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등이 강연을 하여 유명하기도 한 곳이다. 1996년도부터 줄곧 이 교회에서 학회를 진행한 New York City Arts in Education Roundtable은 1992년도에 뉴욕예술재단(the New York Foundation for the Arts)의 지원을 받아 발족되었으며, 다음 해인 1993년부터 “Face to Face”라는 제목 하에 매년 학회를 개최해 왔다.
간단한 아침식사와 커피와 함께 시작한 개회식은 뉴욕의 각 예술교육 현장에서 모여든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최측은 총 420명 정도가 참석했다고 알렸다. 개회식은 뉴욕시 교육부(New York City Department of Education)의 칼멘 파리나(Carmen Faria)의 개회사에 의해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현재 뉴욕공립학교에서 미술, 음악, 연극, 무용 등의 예술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특히 어떤 문제점을 교육자들이 열심히 살펴서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현실적 내용으로 많은 관중의 주목을 끌었다. 특히 이민자 자녀들이 계속해서 늘어가는 현실을 생각해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그들을 어떻게 예술교육을 통해 끌어안을지, 그리고 학교에 오기 싫어하는 학생들을 예체능 과목으로 어떻게 학교생활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이틀간 펼쳐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이 학회는 총 다섯 개의 세션(session) 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세션당 약 한 시간 반 정도가 할애된다. 첫날에는 개회식 이외에 특별강연(keynote address), 세 개의 세션이 이루어졌고, 각 세션에는 여섯 개의 발표와 워크숍이 있어 이 중 하나를 선택해서 들을 수 있었다. 첫 날의 마지막 시간은 리셉션으로, 음식과 함께 참가자들이 모여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둘째 날에는 나머지 두 개의 세션이 있었고 이 중 하나는 토론 시간으로 “Art-Alike Discussions”라는 제목 하에 음악, 미술, 연극, 무용 네 분야로 나뉘어 각기 토론이 진행되었다. 마지막 공식행사인 폐회식(grand finale)은 참가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흥겨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학회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뉴욕 내의 각종 문화기관의 교육팀 종사자들과 예술가이자 교사인 사람들(teaching artist)이었다. 후자의 그룹은 참가자들 중 많은 비중을 차지했는데, 미술, 음악, 연극, 무용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이면서 교육에 관심이 있어 교사의 직업을 병행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보통의 예체능 교사들과는 또 다른 상황에 놓여져 있는지라 이러한 teaching artist를 위한 이력서 작성 워크숍을 점심시간에 개최하기도 했다. 학회 내내 이뤄진 문화기관과 학교현장의 교육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사람들과 teaching artist 사이의 토론은 서로의 상황을 알려주고 수용해 더 나은 교육을 일궈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유익한 점이 많았다.
뉴욕시 교육부의 블루프린트
첫 세션에서 필자는 뉴욕시 교육부의 새 프로젝트인 “블루프린트(Blueprint 청사진)”의 음악, 미술 분야에 대한 설명회에 참가했다. 교육부의 쉐런 던(Sharon Dunn), 미술팀의 바바라 거 (Barbara Gurr)와 탐 케이힐(Tom Cahill)과 음악팀의 낸시 쉔크먼(Nancy Shankman)과 토머스 케이버니스(Thomas Cabaniss), 총 다섯 명의 공동발표였다. 올해부터 새로이 시도된 블루프린트는 뉴욕 내의 공립학교를 비롯한 모든 교육기관이 커리큘럼 개발시 따라야 하는 교육표준표(standard)를 새롭게 개편한 것이다 (http://www.nycenet.edu/projectarts). 이 프로젝트에 아직 익숙치 못해 큰 관심을 보인 예술가들이 많아 발표는 시종일관 탄력 있게 진행되었다. 역시 예술교육에 대한 지원금이 축소되는 현실과 이의 극복방법에 대한 토론이 발표 후의 질의응답을 통해 펼쳐졌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쉔크먼 교수의 한 이야기였다. 미국의 한 유명한 음악가가 중국에 가서 학생들의 연주를 들었는데, 훌륭한 테크닉을 지닌 그들에게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느꼈다. 이는 바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들의 교육은 너무나 테크닉과 기법에만 치우쳐져 있어, 정작 좋은 음악가가 반드시 지녀 연주를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주어야 할 음악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결핍되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블루프린트를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부분은 결국 이런 것이 아니겠냐고 강조했다. 많은 정책이 있고 프로그램이 있어도, 그 형식 너머에는 예술에 대한 열정을 학생들이 키울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한국의 예술교육 분야 종사자들도 최근 많이 문제 제기하는 점으로, 블루프린트 프로젝트가 앞으로 예술교육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세션에서는 비디오 만들기 워크숍에 참가했다.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매직 박스 프로덕션(Magic Box Productions / www.magicboxproductions.org)의 단장인 넬 스토크(Nelle Stokes)가 이끄는 세시간의 워크숍으로 비디오 촬영과 편집에 대한 기본 내용을 팀원들과 함께 하는 재미난 게임을 통해 익힐 수 있었다. 초보자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전문용어와 기법들을 학생들을 대하듯 아주 쉽고 편하게 풀어나가서 교육방법에 있어 배울 점이 많았다.
문화예술기관과 예술가의 협력관계 강조
이튿날 오전에 펼쳐진 네 번째 세션에서는 “Art-Alike Discussion”이라는 토론 중 미술 분야에 참가했으며, 다섯 번째 세션은 “이루어질 수 있는 임무: 예술가와 문화 기관 사이의 협조(Mission Possible: Making Connections between Artists and Cultural Institutions)”라는 제목의 발표였다. 두 세션 모두 예술기관과 예술교육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토론과 이에 대해 기관과 예술가들이 어떻게 풀어나가고 대처할 수 있을지가 주요 내용이었다. 네 번째 세션은 구겐하임 미술관의 쉐런 베이츠키(Sharon Vatsky)와 링컨센터 예술교육센터(Lincoln Center Institute for the Arts in Education)의 제리 제임스(Jerry James)가 토론을 이끌었으며, 마지막 세션은 할렘 스튜디오 미술관(The Studio Museum in Harlem)의 샌드라 잭슨(Sandra Jackson)과 조넬 제이미(Jonell Jaime)와 러쉬 아트 갤러리(Rush Arts Gallery)의 데릭 애덤스(Derrick Adams)가 발표자였다.
마지막 세션에서 참가자인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너무 현실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어서 설명하길, 최근 길에서 어떤 소녀와 마주쳤는데, 선생님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다며 그 선생님의 수업이 그녀가 미술을 전공하게 된 가장 큰 동기였다고 말했다 한다. 그러면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은 그 학생을 제대로 기억할 수조차 없었는데, 이처럼 우리 교육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으니 그 힘을 믿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풀어나가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이야기에 많은 선생님들과 예술가들이 수긍을 했다. 또한 이 선생님은 블루프린트 프로젝트를 비롯한 여러 교육적 정책에 대해서도 새로 이를 익혀 학생들에게 전달해야한다는 부담을 벗어버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말 그대로 새로운 프로젝트에 담겨진 정책일 뿐이지 그 내용은 우리가 이제까지 계속 해 왔던 일과 별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교육자들의 신념과 그들의 교육방법을 정책이라는 옷을 입혀서 새롭게 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 설명에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을 조금이라도 더 익히려고 우왕좌왕 애쓰던 선생님들의 분위기가 갑자기 조금은 안정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교육현장에 서면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교육자들의 열정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이 선생님은 설명했다.
또한 마음에 와 닿았던 내용은 마지막 세션의 발표자 중 한 명인 샌드라 잭슨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풀어간 이야기였다. 자신은 부시 대통령을 반대하는 사람으로서 평소에는 반 부시(Anti-Bush) 핀을 가슴에 달고 길거리에서 부딪히는 많은 사람들과 쟁쟁한 토론을 벌이기도 하지만, 일단 교실에 들어서면 그런 모든 입장을 벗어던진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한 쪽의 입장을 표명하면 학생들은 자신의 신념과 입장을 생각해 볼 겨를 없이 자연적으로 선생님의 의견을 먼저 수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열린 토론과 자기 신념을 쌓아가는 과정을 위해서는 교실 안에서 반 부시 핀을 달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술에 대한 신념과 애정을 전달하는 교육 지향
이틀 동안 열띤 토론과 함께 이루어진 뉴욕시 예술교육학회는 예술교육현장의 많은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여러 발표와 강연을 경청하면서, 특히 필자는 뉴욕이라는 곳의 특수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그 어떤 곳보다도 다양한 종류와 내용의 예술작품, 공연을 향유할 수 있는 이 곳의 특성을 교육현장에까지 연결시켜 효과적인 예술교육을 하려고 힘쓰는 문화기관 관계자와 학교 선생님들, 예술가들의 열성적인 노력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항상 열정(passion)이라는 단어와 함께 한다. 즉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에 대한 신념과 애정을 교육가의 옷을 입고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그들의 최대목표라고 많은 사람들이 발표와 토론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예술교육에 대한 열정은 뉴욕 시의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예술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이다.
학회 웹사이트:http://www.nycaieroundtabl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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