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 문화예술교육을 생각한다

재외동포 문화예술교육을 생각한다

떨어져 산 세월만큼 다양한 모습을 지닌 젊은 고려인들, 이들이 생각하는 한국을 통해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새로운 교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이번 출장이 딱 그랬다. 출장 목적은 ‘재외동포를 위한 한국문화예술교육 지원방안’에 대한 것이었고, 그중에서도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려인들을 돕기 위해 이 지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당연하게도 현지에서 다양한 형편의 고려인을 만나는 것이 중요했고, 또 실제로 고려인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교육 수요와 희망 형태 등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레나, 키르기스스탄의 아쎌, 그리고 카자흐스탄의 일리아는 이번 출장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전형들이었다.
일반적으로 고려인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교민이나 한국인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한다. 특히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구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나 시베리아 지역에서 강제로 이주되어 유입된 한민족 동포들이다. 최근 한국에서 사업이나 다른 목적으로 건너간 한국 국적의 교포들과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의 생각으로는 다 같은 한민족이라 여길 수 있겠으나 실제로 고려인과 한국인은 겉모습만 비슷할 뿐 언어, 문화, 그리고 사회생활 자체가 많이 다르다.

레나, 한국이 좋은 젊은 엄마

레나는 스물여덟 살의 고려인 여성으로 귀여운 아들, 그리고 고려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부모님과 할머니가 생존해있는 고려인 3세에 해당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시켄트에서 태어나 자랐고 국립사범대학 한국어학과를 졸업했다. 한국 기업에서 일하다 얼마 전부터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가이드나 비즈니스맨들의 통역 일을 시작했다. 레나가 한국말을 처음 접한 건 사춘기 무렵 한국인 선교사가 교회에서 운영하던 한글학교에서였다. 그 목사님은 목회 이외에 고려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애쓰셨다고 한다. 레나도 이곳에서 한국말을 처음 접하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후,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다. 레나 경우, 고령의 할머니와 어렴풋한 기억이 남아있는 부모님으로부터 간간히 한국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주로 잔치나 절기마다 벌어지는 세시풍속 등의 생활문화에 대해 또래의 고려인들보다 많이 알고 있는 편이다. 레나 스스로도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마다하지 않는 부류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좋은 편이다. 양국의 수교가 수립된 이후 한국기업의 진출이 두드러지고 부강한 나라라는 인식이 있어 고려인들은 본국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나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다. 자신은 한국어에 능통하고 한국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또래의 고려인들이 과연 한국을 알고 배우려는 의지가 있을까 하는 점이다. 고려인 3세대가 지나 4세대가 태어나면 아마도 한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나 최소한의 동기부여도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레나는 전문적인 예술분야가 아니라도 세대를 이어주고 한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갈 수 있는 한국문화교육에 대한 바람이 절실하다.

아쎌, 한국을 꿈꾸는 소녀

아쎌은 키르기즈스탄의 다수 부족인 키르기즈인이다. 얼핏 봐서는 한국인과 흡사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랍이나 인도계의 이미지도 갖고 있다. 아쎌은 순전히 그냥 한국이 좋아서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단다. 그래서 자비로 한국에 여행과 연수도 다녀왔다. 서울의 지리나 맛 집을 아는 수준이 웬만한 한국인보다 낫다. 한국이 좋아진 이유는 드라마 때문이라고 한다. 한류 열풍이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드라마에 정신없이 빠져들다 보니 자연스레 그 드라마의 원래 언어인 한국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교육원의 문을 두드렸고 이후 꾸준히 한국과 관련된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아쎌은 회사에서 근무할 때도 곧잘 한국어를 쓰고 한국 사람을 만나기 위해 주말에는 한국인 관광객 가이드를 한다. 현지에서의 아쎌의 위치는 전형적인 엘리트군. 이들이 느끼는 한국의 이미지는 꿈의 나라이자 기회의 나라인 것이다. 이런 젊은이들은 의외로 많아 키르기즈스탄 수도인 비쉬켁에 위치한 인문대학의 한국학과에는 현지학생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가 한국문화에 호의를 갖고 있을 때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진다면 장기적으로는 지한파 내지 한국에 호의적인 오피니언 리더를 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일리아, 다시 춤꾼으로

일리아는 30대 초반의 고려인이다. 얼마 전까지 고려인무용단의 단원이었지만 지금은 전업해 관광가이드로 나서고 있다. 꽤 재능 있는 젊은 무용가였지만 무용단의 급여로는 생활이 어려웠다. 올해 칠순인 어머니(그 또한 고려인극단의 단원이다)와 함께 살고 있는 일리아는 앞으로 하고 싶은 수많은 일을 성취하기 위해 좀 더 수입이 많은 가이드로 업종을 전환했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타에는 오랜 전통을 지닌 고려인 극단과 무용단이 있다. 이들은 활동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고려극장에서 공연한다. 이 극단은 수십 년 전 설립 당시부터 철저하게 고려 말로 공연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극단과 무용단의 단원들은 젊은이들도 고려 말을 완벽하게 구사한다. 이들은 중앙아시아 각 지방을 구석구석 돌며 고려인들의 애환을 달래주고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시켜나가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자체적으로 작품을 연습하고 공연하지만 이들 역시 언제나 재교육이나 교류에 목말라한다. 이번 여름에도 한국에서 온 한 젊은 무용가 덕분에 강도 높은 워크숍을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있다. 과거에는 북한이 자국에 초청도 해주고 강사들도 파견했지만 요즘은 그 영향력이 거의 없어졌다. 일리아도 한국에서 전문가에 의한 교육이 있다면 언제라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이렇듯 고려인들에 대한 한국 문화예술교육은 그 지역의 특색과 대상, 그리고 수요의 형태에 따라 큰 틀에서의 통합성은 가지되 세심하게 차별화하며 수립돼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그 욕구가 자발적으로 생길 수 있는 세대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거대한 지구촌의 한민족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에 대한 문화예술교육 지원프로그램은 시급하고 절대적이다. 그리고 특히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에게는 그들이 견뎌낸 역사적 비운의 시간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라도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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