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 털실로 분노 다스리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 털실로 분노 다스리다

 

독일 동화작가 그림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모티프를 얻어 분노와 유혹에 초점을 맞춘 제3회 2010 청소년 연극치료 캠프 ‘내 감정의 무지개 찾기’가 1월15일부터 17일까지 2박3일간의 일정으로 용인대학교 예술대학에서 진행됐다. 이 시간을 통해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자신의 속내를 꺼내게 된 아이들은 자기 안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발견하면서 그동안 쌓인 상처와 고통을 조금이나마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헨젤과 그레텔>은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어린 남매의 이야기다. 오랜 흉년으로 먹고 살기 힘들어지자 아버지가 새엄마의 꼬임에 빠져 어린 남매를 산 속 깊은 곳에 두고 집으로 온다. 뭔가 심상찮은 기운을 느낀 오빠 헨젤은 산으로 가는 길에 조약돌을 떨어뜨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들 남매는 새엄마와 아버지가 또 다시 산속 깊은 곳으로 남매를 두고 왔을 때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조약돌 대신 떨어뜨린 빵조각을 새들이 다 쪼아 먹어서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배고픔에 허덕이며 숲 속을 헤매던 이들 남매의 눈에 띈 건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를 내뿜는 과자집이다. 이들을 잡아먹으려는 마녀의 계략인지 모르는 남매는 과자집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모티프를 얻어 분노와 유혹에 초점을 맞춘 ‘제3회 2010 청소년

 

연극치료 캠프 ‘내 감정의 무지개 찾기’가 1월15일부터 17일까지 2박3일간의 일정으로 용인대학교 예술대학에서 진행됐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사)한국연극치료협회가 함께 한 이번 캠프는 학교폭력 등 사회부적응 문제를 갖고 있는 저소득층 청소년 62명과 이들이 속한 기관의 선생님 7명 등이 참여했다. 12명의 학생들과 4명의 치료사가 한 조를 이뤄 모두 6개의 조가 구성됐고, 아이들을 인솔한 14기관의 선생님도 한 조를 이뤄 총 7회기의 연극 치료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이 행사는 현재 나의 모습을 확인하는 ‘보다’, 내 안의 상처와 소망을 고백하는 ‘말하다’, 진정으로 바라는 삶을 상상하는 ‘꿈꾸다’, 변화될 수 있는 힘을 외부로 표출하는 ‘날다’ 그리고 이 모든 연극치료를 통해 나의 힘을 발견하는 ‘내 감정의 무지개’ 등 5개의 주제로 이루어졌다.

 

아이들 ‘분노’ 제대로 표출하는 법 배우다

 

이번 캠프를 주관한 한국연극치료연구소 박미리 소장(용인대 연극학과 교수)은 “이번 캠프의 핵심은 무엇보다 아이들의 마음열기”라고 강조한다.

 

“아이들 마음에 ‘무기력’과 ‘분노’가 함께 존재해요, 일상에서는 분노가 표출되지만 여기에서는 전혀 표출하지 않으려고 하죠. 아이들이 최대한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이들에게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병이 생긴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죠. 아이들에게 아버지에게 두 번 버림받았던 헨젤과 그레탈이 아버지를 다시 만나서 복수한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아버지를 두 번이나 죽인 아이가 있었는데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였어요. 이 아이는 남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이번 캠프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어른에 대한 불신이 강했고, 무슨 일이든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대부분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첫날 마주한 아이들의 모습은 무표정 그 자체였다. 또래 친구들을 보고도 데면데면할 뿐 웃음기가 사라진 어두운 표정으로 조용히 앞만 응시할 따름이었다. 무겁게 가라앉았던 분위기는 헨젤과 그레텔이 되어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털어놓으면서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현재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 보면서 아이들은 자기 마음 속 깊은 곳에 꼭꼭 숨겨놓았던 울분을 바깥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백만장자가 되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는 친구들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취업 등 현실적인 고민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일곱 가지 빛깔의 자기감정 정리하는 촛불의식

 

두렵고 떨리는 감정으로 첫 만남을 가졌던 아이들은 하룻밤을 지낸 후 어느새 친숙해져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어제 처음 만난 친구들인데도 팔짱을 낀 여학생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고, 남학생들 역시 친구들과 함께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알리고 있었다.

 

이번 캠프의 하이라이트는 7개의 커다란 원 안에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등 일곱 가지 무지개 빛깔의 털실로 분노, 슬픔, 수치, 질투, 용기, 기쁨, 행복 등 그동안 느꼈던 자기감정을 따라가는 ‘내 감정의 무지개 찾기’ 촛불의식이었다. 1조부터 나와서 침묵하는 가운데 묵묵히 자기감정의 흐름에 따라 털실을 이리로 저리로 옮기던 아이들은 자기감정의 종착역에 서서 소망편지를 붙인 다음 촛불을 들고 서있었다.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들까지 단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참여한 촛불의식에서 아이들은 사람에게는 하나의 감정이 아닌 여러 감정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이 감정들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함께 흐르는 것임을 알게 됐고, 자기감정의 종착역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깨달았다. 70여 명의 감정흐름에 따라 알록달록 수놓은 무지개 털실 위에서 촛불을 밝힌 아이들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고, 또 경건했다. 촛불의식이 끝낸 아이들은 어떤 마음을 갖게 됐을까?

“대화를 하지 않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친구가 말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앞에 나서기가 많이 힘들고, 부끄러웠는데 이제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힘이 생겼다.”

 

“내면의 감정을 스스로 들여다보며 조절하는 힘이 생겼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는데 친구들의 상처, 아픔, 슬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뭐가 필요한지 몰랐는데 이제 원하는 것을 말하고 찾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다른 사람과는 한마디도 하기 싫어했던 아이들은 캠프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게 됐고, 친구들을 배려할 줄도, 위로할 줄도 알게 됐다. 또 짧은 만남이어지만 캠프에 함께 했던 친구들과 자신들의 감정을 찾아주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선생님들과의 헤어짐에 대해 아쉬워했다. 허황된 꿈과 이상을 꿈꾸며 자신의 삶을 비관적으로 보았던 아이들은 이제 현실인식을 통하여 진실한 자신의 꿈을 생각할 수 있게 되면서 환한 웃음을 갖게 됐다.

 

아이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소중하고 특별한 시간

 

이번 캠프는 아이들을 인솔한 선생님들에게도 특별한 시간이 됐다. 용인대에 도착하기 전 까지도 자신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따로 있다는 소식을 전혀 몰랐던 선생님들은 모두 갑작스럽게 캠프에 참여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왔다가 선생님 프로그램이 있다는 말에 많이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끼리 서로 흉허물 없이 마음을 나누면서 아이들에 치유와 관련해 왜곡됐던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강현수 선생님) “만일 이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이러한 결실을 얻기는커녕 마음의 문을 닫았을 겁니다. 그동안 구경꾼이었던 선생님들도 치유하는 소중한 시간이 됐습니다”(심용만 선생님)

제3회 청소년연극치료캠프 ‘내 감정의 무지개 찾기’는 학교폭력과 가정폭력, 우울증 등에 시달렸던 아이들에게 감정이입과 거리두기, 상황극, 즉흥극, 의상 및 소품 만들기, 공연 및 극장 등 다양한 체험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감정을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이 시간을 통해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자신의 속내를 꺼내게 된 아이들은 자기 안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발견하면서 그동안 쌓인 상처와 고통을 조금이나마 치유했고, 자신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을 깨우치는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이대영 원장은 촛불의식에 함께 참여하며 지난날 아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실을 고백하며 솔직한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전했다.

 

“아들이 다리가 부러져서 깁스를 했는데 깁스를 풀고도 걷지 못하는 겁니다. 그때는 엄살을 피우는 줄 알고 무조건 걸으라고 했고, 아들은 울면서 걸었습니다. 나중에 제 팔에 깁스를 했다 풀었는데 팔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는 것을 알고 아들이 왜 못걸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어요. 어떤 어려움이 있으면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서로 이해할 수 있어요. 그렇지 못하면 상처만 얻게 됩니다. 여기 참석한 사람들 모두 복잡하게 얽힌 마음의 무지개를 찾아서 정성스럽게 표현하고, 무엇보다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의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준 촛불의식을 치루면서 아이들은 이제 평온함도 얻은 듯 보였다. 이번 캠프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예산과 장소 확보 문제로 추운 겨울에 캠프가 열려 실내에서만 프로그램이 진행된 것이다. 선진국처럼 전용관이 마련된다면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넘실대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아이들의 닫힌 마음도 좀더 빨리 열리고 더욱 넉넉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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