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매서운 겨울 바람도 울고갈 훈훈한 감동의 현장, 연극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보듬어 가는 아이들의 발표회 현장을 찾았다.


어린 시절 학예회의 추억이 전부인 사람도 있고 학창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연극을 접한 사람도 있다. 연극이라는 문화활동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굳이 연극에 한정짓지 않더라도 음악이나 미술 등, 다른 문화활동의 영향을 고민해보자.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활동은 풍부한 감성을 만들어주고 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문화예술교육은 상대적으로 소외된, 힘든 상항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대의 주인공에서 인생의 주인공으로

“여기서 감정을 잡고 관객이 있는 쪽을 쳐다봐야지.”, “더 동작을 크게 하고 천천히 해야지, 그래야 네 감정이 잘 전달되는 거야.”
부산 오륜정보산업학교 강당에 들어서자 무대 위에서는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바삐 움직이고 예술강사는 우렁찬 목소리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발표회를 앞두고 리허설 중인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진지해 마치 기성 무대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누구하나 장난스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열심이다. 이렇게 강당에서 리허설이 한창일 때 교정에서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 강당에서 친구들이 준비한 연극 발표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많은 선생님들과 학생 여러분들의 참관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더니 강당을 가득 메웠다. 컴컴한 무대 위의 조명이 켜지면서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친구들의 등장에 무대를 바라보던 아이들은 박수를 치고 키득 키득 웃기도 한다. 하지만 연극이 시작되자 다들 진지한 자세로 무대를 바라보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날 선보인 연극은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을 담은 ‘20억년의 사랑’. ‘TV 동화 행복한 세상’에서 방영되었던 ‘20억년의 사랑’이라는 애니메이션을 각색해 탄생한 작품이다. 우선 객석의 학생들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 3분짜리 애니메이션을 시청했다. 원작 애니메이션과 아이들이 선보인 연극을 비교하는 재미까지 즐길 수 있었다. 학교 측은 이 무대를 위해 경북 구미의 한 극단에서 조명과 의상을 빌려와 무대를 꾸미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욱 실감나는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연극 분장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예술강사의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객석의 아이들은 진지하게 극에 집중했고 연극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라도 한듯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아이들의 노래로 막을 내린 후 큰 박수소리와 축하의 꽃다발이 전달되었다.
연극에 참여한 곽경도(가명)군은 “처음엔 유치하고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극 수업을 듣다보니 너무 재미있었다”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연극 준비를 하면서 부모님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제가 뭘 잘 못 했는지, 엄마, 아빠가 얼마나 저 때문에 힘들어 하셨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이제는 더 멋진 사람이 되기로 했는데, 연극을 할수록 제가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특히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자신감이 넘치면서 활동적인 모습으로 변한 것 같아 스스로도 놀래요.”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 즐거워보였던 아이들은 무엇보다 스스로를 좋아하게 되었다며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자신들의 즐거운 모습을 남기기 위해 사진 촬영을 하기도 하고 스스로 연기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심성을 가꾼다

문화예술교육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해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 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기쁨이나 슬픔, 열정, 외로움 등 다양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해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문화예술교육은 이런 이유로 평소 자신의 감정을 세심히 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부산 오륜정보산업학교에서 심리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양을용 선생님 역시 아이들과 함께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을 운영하며 이러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보통 교과 수업이나 직업 훈련 과정을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특히 딱딱한 기계와 생활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심성이 순화되면서 아이들이 밝아졌어요. 이런 교육의 중요성을 학교에서도 충분히 인지해 내년부터 직업 교육과 함께 인성교육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현재도 성교육 과정이나 음악, 미술, 요가 심리 치료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심성을 순화시키기 위해 노력 중인데, 내년에는 이러한 노력을 더 확대해야죠. 그런 면에서 문화예술교육은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아이들을 매일 접하는 선생님들 역시 문화예술교육이 감성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효과를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처음보다 정말 많이 밝아졌어요. 자신감 있게 변화된 모습을 볼 때면 놀랄 정도랍니다. 연극은 직접 다가서기 어려운 분야인데 예술강사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이끌어 주고 그 선생님들을 따라 아이들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어요. 특히 오늘 선보인 무대를 보고는 ‘우리 아이들도 뭐든지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뭐든지 자신이 맡은 일에 열성을 갖고 임할 거라는 믿음 말이죠.

이신영 연극예술강사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연극무대를 준비한 이신영 예술강사는 연극수업을 진행하며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며 대견해했다.

– 연극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어떠한 방식의 교육이 이루어졌나요?
“아이들을 전문 프로 배우로 양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대에 올리는 것보다는 연극을 통해 행복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으로 진행했습니다. 연극 맛보기, 연극 체험하기, 표현하기 등 아이들의 감성을 풀어놓을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무엇보다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게 했습니다. 이런 활동을 기본으로 본격적인 공연 연습을 시작했지요.”

– 아이들과 3개월 간 함께 하셨는데,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와 지금 아이들을 볼 때 변화된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아이들의 굳어있는 얼굴표정에 처음에는 정말 놀랐어요. 그리고 집중력도 약한 편이라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집중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하루하루 아이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하며 교육하다 보니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연극은 무엇보다 협동이 필요한 활동이에요. 이 안에서도 아이들 나름대로 서열이 있습니다. 연극반에서는 그런 서열화를 없애려고 노력했고 아이들도 상대방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다른 사람이 소중한 만큼 자신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죠. 무엇보다 자존감이 커졌다는 사실이 문화예술교육의 가장 큰 성과인 것 같아요.”

–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저희가 ‘20억년의 사랑’이라는 애니메이션과 연극을 선보였는데, 아이들과 수업 첫날에 이 애니메이션을 함께 봤어요. ‘20억년의 사랑’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나서 행복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고 했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놓고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어요. 우선 제가 겪었던 일화를 먼저 이야기 하면서 행복을 느낀 순간과 후회한 순간을 말해줬어요. 흔히들 주변에 있는 행복을 물과 공기처럼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도 그렇더라고요. 아이들의 행복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더라고요. 대부분 결손 가정이 많아서인지 엄마, 아빠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한 순간의 잘못으로 이곳에 온 아이들이지만 이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가족과 사회가 필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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