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디자인적 사고

강선희|숙명여대 국문과
송정아|서강대 사학과<!– | nanaoya@hanmail.net–>

최근 디자인 교육이 주목받고 있다. 디자인(Design)은 삶에서 밀접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장르인 동시에, 누구나 느끼고 고안하고 만들면서 디자이너(Designer)가 될 수도 있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디자인의 교육적 요소는 고안하고 만들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고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교육적 효과로 디자인적 사고를 교과과정에 포함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재미있는 디자인전(展)’은 그런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며 기획된 전시였다. ‘재미있는 디자인전(展)’은 전시뿐만 아니라 어린이들과 학부모가 직접 참여하는 워크숍과 해외 연구자들의 초청강연회도 함께 마련했다. 웹진 ‘땡떙’은 5월 6, 7일 오후에 있었던 미국 필라델피아 예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직을 은퇴하고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에 관한 저술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찰스 버넷Charles Burnette교수의 강연회를 찾아가 보았다.

찰스 버넷 박사의 강연과 국내 최초의 ‘어린이를 위한’ 디자인전

디자인적 사고는 모든 작업과정의 바탕

‘어린이를 위한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 For Children’이란 제목의 이날 강연회에서는 찰스 버넷 교수가 연구해 온 ‘디자인 기반 초중등 교육 : I/DEPPE/I (Design Based Education K-12 : I/DEPPE/I)’ (이하 DK-12)가 소개되었다. 찰스 버넷 교수는 “사람들은 항상 디자인적인 사고를 하고 그 사고과정에 따라 판단을 거쳐 실행에 옮기고 있지만 스스로는 그것이 ‘디자인적이다’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이든 전문 디자이너이든 그 디자인적 사고방식은 동일하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디자인적 사고는 세부적으로 7가지의 과정, Intend(의도하기), Define(정의하기), Explore(탐색하기), Propose(계획하기), Produce(제작하기), Evaluate(평가하기), Integrate(통합하기)의 순서로 진행된다. 찰스 버넷 교수 등은 각각의 단계에 친밀한 성향을 ‘캐릭터’로 설정하여 ‘역할놀이’를 통한 교육적 효과를 노리는 프로그램도 개발하였다. 캡틴, 루시, 아티, 메리, 피트, 지미, 캐시의 7가지 캐릭터는 생각하고, 정보를 모으고, 계획하고, 결정하고, 제작하고, 평가하고, 활용하는 일련의 사고과정을 반영한 역할 모델들이다. 아이들은 이러한 캐릭터를 가지고 노는 것을 통해 ‘디자인적 사고’ 훈련을 하게 된다. 찰스 버넷 박사는 이러한 인지기술과 사고체계의 습득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이루어져야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1998년 ‘사고를 위한 디자인’ 전국 대회(National ‘Design For Thinking’ Institute)에서 ‘디자인적 사고’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이후 200개 이상의 학교에 소개되어져 왔고 이 사고모델을 활용하여 가르치는 교사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DK-12 프로젝트는 디자이너, 대학과 중고등학교의 교육자, 박물관 관계자, 교육부 등 여러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확대,발전되고 있다.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디자인적 사고

강연회를 마친 후에는 찰스 버넷 박사와 간단한 인터뷰를 가졌다.

아르떼 : 원래는 건축을 전공한 것으로 아는데 디자인 연구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뭔가?

찰스 버넷 : 일단,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자인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 그들의 삶에 있어서의 디자인이라는 것이 얼마만큼 유용하고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생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동시에, 디자인적이고 체계적인 사고과정을 거친 후에야 스스로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혁신적이고 건설적인 사고는 크게는 국가적인 차원으로까지 발전시킬 수도 있으며,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이해를 구하고 싶었다. 내가 건축학을 연구한 것은 결론적으로 디자인 연구에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르떼 : 한국에서는 최근 공교육에서의 디자인 교육개혁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그 동안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사례와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찰스 버넷 : 수많은 예가 있으므로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다. 작은 예를 들자면,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들이 과학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곳에 걸려있는 전문 디자이너들의 조명을 보게 하고 스스로 조명을 만들어 보도록 했다. 아이들은 각자가 생각한 대로 조명을 만들어보는 작업을 했다. 또한 미시건 주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디자인을 하여 만든 도면에 따라서 지어진 박물관이 있다. 물론 구체적인 설계나 시공은 전문 디자이너와 건축가가 맡아서 하기는 했지만 아이들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졌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아르떼 : 한국쪽 교육자들과의 접촉경험이나 앞으로의 교류예정이 있는지? 그리고 혹시 새롭게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찰스 버넷 : 한국은 이번이 네 번째 방문이지만 아직 교육자들과의 구체적인 접촉은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교류해나갈 것인가는 한국 쪽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각종 디자인 관련 저술활동은 하고 있으나, 학교에서 직접 이론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작업에서는 이미 은퇴한 상태이므로 새로운 프로젝트 착수에 관한 것은 아직 미지수이다.

이 날 강연회는 아동미술교육 종사자나 새로운 교육형태에 관심을 갖게 된 학부모들의 참여가 높았다. 이들은 찰스 버넷 박사의 교수법에 흥미를 보였으나 체계적인 지침서가 미비해, ‘디자인 기반 초중등 교육 : I/DEPPE/I (Design Based Education K-12 : I/DEPPE/I)’을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듯 하였다. 주제와 결과를 중시했던 우리의 교육풍토에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단계적 사고를 교육하는 것은 답답하고 생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 탓인지 강연회 후의 질의응답 시간에서는 질문자와 강연자가 의도하는 바가 다소 어긋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움직임들이 앞으로의 미술교육과 디자인 교육, 그리고 교육 전반을 가로질러 힌트를 던져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지고 느끼고 표현하자! (재미있는 디자인전)

‘재미있는 디자인전’은 5월 26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에서 열렸다. 전시회의 슬로건 ‘마음껏 만지시오(Please Do Touch)’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이들이 직접 만지고, 느끼고, 표현하면서 자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에게 딱딱한 이론을 주입시키는 것보다 자유롭게 스스로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빨대나 필름으로 만들어진 조명’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익숙한 사물로도 디자인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천을 자르고 붙여서 만든 옷을 입어보는 워크숍을 통해서 구상-작업-평가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힐 수 있고,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동화책을 보면서 책 하나도 환경 디자인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한다. 전시는 천이나 종이 등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텍스추어를 보고 만지면서 디자인이라는 것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 생활 속에서 볼 수있는 모든 것들이 디자인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디자인의 이해를 위한 올바른 길라잡이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획의도와는 달리 단순한 놀이터로만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 진행하고 있는 큐레이터 김상규씨의 평가를 들어보자.

“부모님들이 가이드를 잘 못해서 아이들이 전시를 통해 어떤 것을 느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아이들을 데려 온 부모님들이 적절히 안내를 해주고 방향을 잡아줘야 하는데,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도록 내버려두고 부모님들은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으니 그저 단순한 놀이터로 생각하게 되는 거죠. 자기 아이에게 이 전시를 통해 무엇을 느끼게 해줄까를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아이들은 저것을 가지고 노는데 왜 우리 아이는 못 가지고 노는가라고 항의를 하고, 그게 자기 아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이라고 생각을 해요. 아이들이 도구를 다루는 방법을 몰라서 발로 차거나 던지고만 있어도 어떤 마땅한 제시책을 내려주지 않고 소극적으로만 대응합니다. 전시장 내에 흡수할 수 있는 소스가 있어서 아이들이 마음껏 자기 표현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좀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공간이 필요할 거에요.”

‘어린이를 위한 디자인전’은 여러가지 아쉬움이 남지만, 어린이를 위한 디자인 교육이라는 새로운 틀을 잡아나가기 위한 혁신적인 시도는 높이 평가할만 하다. 아쉬움을 비롯한 남은 숙제는 ‘디자인적 사고’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가진 강연회에 참석한 교사들과 ‘재미있는 디자인전’을 기획하고 관람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풀어갈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