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학교를 만나다

송정아, 권수연|웹진 콘텐츠팀, 기획운영팀<!– | nanaoya@hanmail.net–>


영화는 7차 교육과정에 포함돼 2002년부터 선택과목 또는 특별활동과목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했으나 전문 인력과 기자재 등이 준비되지 않아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화관광부는 이를 위해 올해 15억원의 예산을 확보했으며 한국영화학회와 함께 기자재 지원, 교사 인력풀 운영, 교사 연수 등 계획을 수립하였다(2004년 1월 17일 보도자료). 우리는 2004년 3월, 드디어 처음으로 실시된 영화교육이 한 달여 동안 진행되면서 실제로 어떤 식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을까 궁금해 하며 이우고등학교를 찾았다.



따뜻한 햇살이 머리를 간질이는 4월의 어느 오후, 겉옷을 벗어 들고 굽이굽이 비포장길을 달려 이우고등학교에 다달았다. 조금은 외진, 산 둔턱에 자리잡고 있는 이우학교는 오후의 봄 햇살을 받아 나른하고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굽이길을 거쳐 온 수고로움이 잊혀지는 순간이었다.

미술실의 영화수업



‘겸재할배방’이라고 이름 붙여진 미술실. 아이들은 하나 둘씩 자유롭게 따뜻한 볕이 들어오는 미술실로 들어선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자 한마디씩 이야기를 나눈다. 수업은 종이 울린 후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영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을 모아서 어느 정도의 돈을 내고 함께 보는 형식이었어요, 여러분들도 극장에 갈 때 얼마만큼의 돈을 지출해서 영화를 보지요.”


“여러분들은 언제 영화를 보나요?”


“심심할 때요. 며칠 전에 얘랑(옆의 친구를 가리키며) ‘어린 신부’를 봤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커플이어서 심란했어요”


이 날, ‘영화의 이해’ 수업의 주제는 ‘영화와 산업’이었다.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관심사인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 등 요즘 한국의 흥행 영화들을 언급하면서 영화의 산업적인 매커니즘을 설명한다. 한편으로는 ‘볼링 포 콜럼바인’이나 ‘송환’과 같은 독립적이고 대안적 성격의 영화를 언급하며, 다양한 종류의 영화들이 상영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련되지는 않아도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밝히는, 서로 소통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우고등학교에서 영화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박지은 선생님은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해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올바르게 문화를 향유하고, 그 중요성에 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죠” 라고 언급하며 영화교육이 그런 것들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평소에 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좀 더 영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어 수업을 청강하고 있다는 2학년 구현진 학생은 수업을 들으면서, 인기 있는 영화만이 아니라 작품성은 있지만 소외되고 있는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고, 토론을 통해 자기 의견을 이야기함으로써 생각이 트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이 수업을 통해 선생님과 학생들 생각이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첫발걸음을 뗀 영화교육에 놓인 과제들



물론 영화교육이 선택교과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에 부딪히는 문제들도 있다. 11개 선택과목 중 4개의 과목을 선택해 들어야 하는 학생들에게 영어, 수학, 세계사, 경제, 물리, 화학 등의 과목과 같은 선택지에 놓인 영화과목은 현재와 같은 입시위주의 교육현실에서는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수업일 수 있다. 실제로 이우학교의 영화과목 수강생은 10명이고 청강생이 5명이라고 한다. 영화교과의 수업 여부가 늦게 확정되는 바람에 수강인원이 적은 면도 있다고 한다. 반면 청강을 하고 있는 5명은 다른 과목으로 선택교과를 채우고 남다른 열의로 이 과목을 ‘추가’로 듣고 있다. 박지은 선생님은 전반적인 문화예술 교육이 좀 더 폭넓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교육의 경우 지금은 전국의 1%밖에 이루어지고 있지 않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적어도 20%~30%정도까지는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영화 강사풀제를 공동으로 시행하고 있는 영화학회와 문화관광부와 교육부가 공문으로만 각 학교에 협조해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대상 선생님들 그리고 학교와 분명한 입장과 방향성을 나누는 노력도 필요함을 언급했다. 나아가 영화교육이 안정적으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이러한 교육의 필요성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화교육을 위한 사전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사실 이우학교는 여건이 비교적 매우 좋은 인문계형 대안학교이다. 박지은 선생님은 “여기서는 6시간이 배정(영화의 이해 4시간, 영상제작 2시간)돼 있어서 영화도 볼 수 있고 커리큘럼을 좀 더 다양하게 짤 수 있어요. 어떤 선생님께선 일주일에 13시간 강의를 들어가시는데 한 시간씩의 강의를 13반 들어가시는 거라고 해요. 그런 경우엔 영화 교육의 충분한 의미를 살리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라며 서로 다른 교육현장의 조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예술교과 강사풀제의 시행이 기존 입시위주의 피폐한 공교육 속에서 좀 더 창의적인 문화예술교육이 확대되리라는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현장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았다. 더불어, 지금 시행되고 있는 전문 강사풀제 하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강사로서 부딪히는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특히 전문 강사들의 지위가 매우 불안정한 실정이었다. “저는 수업이 있는 날 한 시간정도 전에 학교에 나와요. 제 책상이 있긴 하지만, 정규직 교사도 아니고 사실 이 일로 생계를 이어갈 수는 없죠. 연수 기간에 교수님들께서는 영화과 학생들의 또 다른 진로가 열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씀을 하셨으나, 제 생각에는 앞으로 영화 교육이 다른 문화예술 교육과 마찬가지로 입시 위주의 현실에서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지속 가능할까 하는 위기감도 있는 게 사실이에요.” 박지은 선생님은 영화교과가 학교에 자리를 잡으면서 부딪히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첫걸음 단계인 영화교육의 체계를 만들어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아직 영화교육에 대한 현장감 있는 연수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우리나라의 영화교육 체계가 잡혀있지 못하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현장교사로서 영화교육의 체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대한 관심과 고민이 많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어렵지만 작은 희망을 응원하자



얼마 전, 장 비고 감독의 ‘품행제로’를 보면서 참으로 즐겁고 감동스러워졌던 기억이 있다. ‘프랑스 아방가르드 회고전’이라는 제목의 영화제에서 보게 된 그 영화는 1920년대 프랑스의 엄격한 기숙사 학교에서, 어른들의 계율과 처벌과 부조리에 맞서게 되는 중학생들의 모습을 매우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형식에 있어서도 아이들이 베개싸움을 하면서 사방으로 깃털이 흩날릴 때의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잡는다든지, 점프컷으로 좀 더 극적인 영화진행을 연출하는 등 당시로서는 아주 새로운 기법들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러한 일군의 작가들의 작품은 아방가르드라고 일컬어진다. 아방가르드(avant-garde)란 예술의 영역에 전용되어 쓰이면서 ‘혁명적인 예술경향’ 등의 뜻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으나, 본래의 의미는 전투할 때 선두에서 돌진하는 부대라는 뜻이라고 한다. 2004년 한국에서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영화교육, 그 선두에 서 있는 전문 강사들은 어쩌면 아방가르드(avant-garde)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걸음은 아쉬운 점이 많기 마련이지만, 영화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과 열의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작은 희망일 수 있다. 시작은 미약하고 미흡하더라도, 나무를 키우는 마음으로, 어렵게 학교와 조우하고 있는 영화교육을 응원해 본다. 


‘이우학교’의 박지은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계속되는 ‘문화예술교육 분야별 전문 강사풀제’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소의 초등학교와 신상계 초등학교에서 영화교육 수업을 진행하고 계신 강경태 선생님과 전화상으로 열띤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비밀번호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