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로 보는 다문화 이야기
2009년 12월 서울 인사동 목인갤러리에서 <엄미금의 꿈꾸는 민화> 개인전이 열렸습니다. 엄미금씨는 2000년부터 민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갤러리에는 엄미금 작가의 여러 민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는 재미있게도 달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토끼가 프랑스 셍텍쥐베리의 작품에 나오는 <어린왕자>와 같이 놀고 있는 모습도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나라 전래동화에 나오는 토끼가 프랑스 어린왕자를 만나게 되었을까요?
조선의 모습을 조선의 화풍으로 그린 겸재 정선
겸재 정선은 약 300년 전 조선 후기에 활동한 유명한 화가입니다. 그 당시 겸재 정선은 그림으로 유명하였고, 겸재 정선의 친구 이병연은 시조로 유명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금강산을 여행하였는데, 여행을 마친 후 겸재 정선이 금강산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이병연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산 그림을 본 이병연은 감짝 놀랐습니다.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산 그림은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화풍을 사용하여, 새롭게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때까지 조선시대 많은 화가들이 이미 금강산 모습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겸재 정선 이전의 화가들은 우리나라에 있는 금강산 모습을 그리면서, 화풍은 중국의 것을 따랐습니다. 동양화에서 바위, 산, 나무와 같은 자연의 모습을 그리는 방법을 준법이라고 하는데, 겸재 정선 이전의 화가들은 중국 준법을 사용하여 조선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조선에 있는 풍경을 그렸는데도, 조선의 풍경 모습이 아니라, 중국에 있는 풍경 모습처럼 어색하게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는 중국 준법을 사용하여 조선의 풍경을 그리는 것이 조선 화가들의 전통이었습니다. 중국 준법을 사용하여 그린 조선 풍경 모습이 어색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누구도 새로운 준법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겸재 정선이 조선 풍경을 제대로 묘사 할 수 있는 새로운 준법을 만들어 금강산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그림을 본 이병연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병연은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산 모습에서 진정한 조선의 풍경 모습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겸재 정선 이전에 그려진 조선 풍경 그림을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라고 부릅니다. 조선의 풍경을 실제로 그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하지만 중국 준법을 사용하여 조선의 풍경을 그렸기 때문에 조선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였습니다. 겸재 정선이 그린 조선 풍경 그림을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고 부릅니다. 조선의 풍경을 실제 모습대로 그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겸재 정선은 조선의 풍경을 그리면서 중국 준법을 사용하지 않고 진짜 조선의 풍경을 표현할 수 있는 준법을 새로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겸재 정선은 조선의 풍경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었고,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도 그림에서 진짜 조선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겸재 정선이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동양화 준법을 만들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겸재 정선도 새로운 동양화 준법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그 시대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중국 준법을 사용하여 조선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그렇게 조선의 풍경을 표현하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중국 화가도 중국 풍경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여 훌륭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중국 청나라시대 그림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자, 중국 사람은 중국에 있는 유명한 산을 그린 훌륭한 그림들을 판화로 찍어서 <명산도>라는 이름의 그림책을 출간하였습니다.
그 후 <명산도>그림책이 조선에 전해지고, 조선시대 화가들은 <명산도>를 교본으로 삼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겸재 정선도 처음 그림을 배울 때는 중국 <명산도>를 참고하였습니다. <명산도>에는 중국 동양화 준법을 사용하여 그린 훌륭한 그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겸재 정선은 중국 동양화 준법을 모두 익힌 후에도 조선 풍경을 표현하는데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중국 동양화 준법이 중국에 있는 자연 풍경을 표현하는데 적합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겸재 정선은 지금까지 배웠던 중국 동양화 준법을 기본으로 하여 새로운 한국 동양화 준법을 만들어 조선에 있는 자연풍경을 그렸습니다.
겸재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그릴 때 그동안 사용하였던 중국 준법과 본인이 새로 만든 동양화 준법을 같이 사용하였습니다. 겸재 정선은 금강산을 그릴 때, <명산도>에 전해진 중국의 여러 동양화 준법 중에서 조선 풍경을 그리는데 적합한 준법은 취하고, 그렇지 않은 준법은 버린 후 부족한 부분은 본인이 준법을 새로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 풍경을 제대로 표현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동양화 준법을 뛰어 넘는 새로운 조선의 그림을 창조 할 수 있었습니다.
겸재 정선은 그 시대 전통이었던 중국 동양화 준법을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새로운 준법을 만들어 더 훌륭한 조선 동양화 전통을 만들어 냈습니다.
원래 전통이란 옛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일이 아닐까요? 전통이 그 시대에 맞도록 변화되지 않고, 처음의 모습 그대로를 고집한다면 얼마 후 그 전통은 사라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본래의 모습은 유지하면서도 시대의 요구에 맞춰 새롭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전통만이 후세에 전해 질 수 있습니다.
달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 토끼를 만난 프랑스 어린왕자
민화는 조선시대 서민의 생활공간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입니다. 조선시대 후기 상업이 발달하여 서민들이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서민들도 생활공간을 장식할 예술작품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그림 수요가 늘어나자 무명화가나 떠돌이화가들이 민화를 그리게 되는데, 그림의 소제는 조선의 자연, 동물, 꽃, 문자 모습과 조선의 풍속, 무속 등 다양합니다. 정통회화에 비해 표현의 세련도가 떨어지지만, 익살스럽고도 소박한 형태로 그려져서 우리나라의 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자에 따라서는 민화를 우리나라의 미의식이 표현된 진정한 의미의 한국화라고도 합니다.
엄미금 작가는 2003년 <잃어버린 색깔을 찾아서>라는 주제를 가지고 독일에서 민화 전시회를 열게 되는데, 그 때 현지인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어떻게 하면 민화가 표현하는 우리나라의 서민적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민화를 세계적인 그림 장르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후 민화에 현대적인 감각을 불어넣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지구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어린왕자>라는 책을 떠 올리고, 작품에 접목시키게 됩니다.
엄미금 작가는 한국 민화와 프랑스 소설 <어린왕자>의 만남을 통해 <어린왕자>의 낭만과 환상의 세계를 한국적인 정서 속에 등장시킵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만남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만남으로 해석된 엄미금 작가의 민화는 좋은 반응을 얻게 되어 그 후 프랑스, 중국, 몽골에서 전시회를 열게 됩니다.
민화 작호도는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까치와 그 밑에서 까치를 바라보는 호랑이를 소재로 한 그립입니다. 엄미금 작가의 작호도에는 호랑이 등에 <어린왕자>가 까치를 품에 앉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어린왕자> 친구인 양 모습도 보입니다. 한국 전통 민화 작호도를 감상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작품에서 한국의 정서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엄미금 작가의 민화 작호도를 감상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작품에서 한국의 정서 뿐만 아니라 지구 사람들과 어울리는 한국인의 모습도 느낄수 있지 않을까요?
달나라에 살고 있는 토끼를 만난 어린왕자 민화는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 까요? 자신이 살던 소행성을 떠나 다른 행성을 여행하던 <어린왕자>는 달에 도착하여 달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 토끼를 만납니다. 착한 토끼와 순수한 <어린왕자>는 고정된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구 사람들의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엄미금 작가는 한국 전통 민화에 한국의 과거, 현대 소재와 다른나라의 과거, 현대 소재를 다양하게 접목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미술 장르를 개척하여 한국을 넘어서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창조하기를 기대합니다.
겸재 정선은 그 시대 전통이었던 중국 화풍을 뛰어 넘는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 진경산수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엄미금 작가는 한국 전통 민화에 다른 나라의 모습을 접목하여 새로운 민화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전통이 과거 처음 그대로의 모습을 고집한다면, 전통은 현대인의 일상생활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문화를 받아 들여 다양하고 풍부한 모습을 가진 전통문화만이 실제로 살아있는 전통입니다. 그래야만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전통 문화를 좋아하고 또 후손에게도 물려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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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것을 고집한다면 얼마후 그 전통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말이 전통을 공부하고있는 제게는 참 와 닿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분이 있어 전통이 더욱 빛나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