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과 알콩달콩 사랑에 관한 담론

소소한 일상과 알콩달콩 사랑에 관한 담론

 

여기, 사랑의 의미를 태연한 표정으로 묻는 두 사람이 있다. 이 태연함은 전혀 심각하지 않은 채, 우리의 일상에서 숱하게 겪었을 또 겪을 사랑에 관한 무수한 감성과 정서와 에피소드를 요약하며 사랑의 의미를 묻는다. 물론 답은 없다.

 

 

아직도 사랑이 거창한 것이라고 믿는가. 아니면 사랑이 일정한 환상 속에 가득한 낭만이라고 생각하는가. 난 사랑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리고 약간의 낭만과 환상이 사랑을 나누고 있는 당사자들을 짐짓 행복하게 만들어줄지언정 그 자체가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그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갖는 작은 기대라고 하는 편이 옳다고 말한다면 너무 인색한 것일까.

 

연인이든 부부이든, 설령 ‘불륜’의 관계처럼 상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사랑이든, 서로 치고 받으며 싸워대는 것도 모두 그 기대감 때문일 터이다. 다른 한 쪽의 말과 행동과 마음 씀씀이가 그 기대감에서 벗어날 때 또 다른 한 쪽은 실망하기 마련이다. 싸움은 그래서 생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도 기대감은 현실로 채워지지 않아서 싸움은 더욱 거칠어진다. 그렇게 치고 받다보면 어느새 사랑은 집착과 강요를 넘어 이별을 예비하게 한다. 그럴 때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님은 물론이다.

 

사랑에 관한 무수한 감성과 정서와 에피소드 요약

 

한때 사랑으로 몸살을 앓아보지 않은 이, 어디 있을까. 적어도 집착과 강요와 이별에 맞닥뜨리지 않은 채 사랑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 만큼 있는 그대로 사랑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사랑은 별 것 아니지만 또 그래서 더욱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미리 겁을 내진 말자. 난 첫사랑이 이뤄지지 않아 끝내 다른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만큼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도 없다고 믿는다. 그것 또한 집착일 수 있지 않겠는가.

 

여기, 사랑의 의미를 태연한 표정으로 묻는 두 사람이 있다. 이 태연함은 전혀 심각하지 않은 채, 우리의 일상에서 숱하게 겪었을 또 겪을 사랑에 관한 무수한 감성과 정서와 에피소드를 요약하며 사랑의 의미를 묻는다. 물론 답은 없다. 그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들여다보며 장면 장면 키득거리다 어느새 문득 가슴에 와 닿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질문에 관한 답이 될 터다.

 

작가를 꿈꾸며 출판사에서 일하는 영민(박중훈). 그에게는 대학 동창인 연인 미영(최진실)이 있다. 낙엽 쌓인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사소한 부딪침으로 프러포즈의 순간을 지난 두 사람은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 이들의 신혼의 일상은 티격태격 어설프지만 그래도 남부럽지 않은 달콤함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어느새 두 사람 사이에는 감정의 골이 조금씩 패기 시작한다. 모든 이들이 그렇듯 아옹다옹 신혼의 일상은 작은 갈등으로 빠져들고 각기 다른 꿈을 지닌 채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 속에는 마침내 등단한 영민의 선배 문인의 유혹 혹은 미영의 손에 날아든 옛 남자친구의 편지와도 같은 다른 사랑에 대한 꿈이기도 하다. 또 미영이 우연히 마주친 옛 직장 상사를 그녀의 지나간 사랑이라고 믿는 영민의 질투심이기도 하다. 작가로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더 높은 지위를 원하며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영민의 작은 욕망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미영이 급성 맹장염으로 병원으로 실려가고 영민은 그녀가 마치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불치병에 빠진 것으로 오해하며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출 듯 눈 내리는 밤, 병실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달콤한 입맞춤은 이들 사랑이 거창하지 않지만 그래서 우리들 일상 속 우리와 똑같은 것임을 알게 해준다.

 

소소함과 작은 마음의 울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영화

 

영민과 미영이 모두 7개의 시퀀스로 이뤄진 에피소드를 통해 한 편의 달콤하면서 아옹다옹 사랑 이야기를 엮어놓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이명세 감독이 연출해 1990년 12월 개봉한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또 그렇게 내 ‘마음을 움직인 영화’임에 틀림없다.

 

‘마음을 움직인 영화’에 대한 원고 청탁에 응한 뒤 다양하지는 않지만 몇몇 작품의 잔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그야말로 ‘가슴을 후벼 판다’는 의미가 어떤 감성인지를 또렷하게 알게 해주며 정말 극장 밖으로 뛰쳐나가 나 역시 통곡하게 싶게 한 영화, 삼류 인생의 신산한 삶에 내 일상을 비추게 해준 작품,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일까. 가파른 현실의 한복판을 떠밀리듯 살아낸 뒤 내 가슴 한 켠 묵직함을 남기고 떠난 막동이에 대한 연민(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일까. 그도 아니면 무덤덤한 듯 보이지만 세밀한 일상과 정서를 들여다보게 하며 사랑에 관한 애틋한 정서를 일깨워준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일까. 2000년 12월, 거세게 몰아치던 바닷바람이 살을 에는 추위를 견뎌내며 중국 씽청의 벌판에서 실루엣의 강렬한 풍경으로 받아들인 영화 촬영현장, 그래서 그토록 완강하게 ‘거부’했던 취재 영역으로서 영화를 받아들이게 해준 김성수 감독의 <무사>일까.

 

영화에 관한, 다른 분야라고 다를까마는, 일천한 지식 탓에 무지함이 원망스럽기는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이 영화들이 여전히 내 마음 한 켠에 켜켜이 따스한 감성을 남겨주었음에는 틀림없다. 그 따스한 감성의 맨 앞자리에 바로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자리하고 있다.

 

1990년 11월 말쯤이었을 게다. 30개월의 꽉 채운 군 생활을 마감하고 제대한 나는 여전히 우울했다. 이제 곧 복학을 해야 했지만 그건 내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할 것 같았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아직도 과거 속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던 때. 거창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존재론적 고민에 빠져 있었던 거였다. 그때 써놓았던 일기장 속 언어들이 풍겨내는 어두운 정서는 지금에 와서 봐도 여전하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씩 드러나는 조울의 기복 큰 감정은 아마도 그때 생겨난 것이리라.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런 순간, 우연히 맞닥뜨린 영화가 바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다. 어쩌면 난 20여 년 전, 거대한 세상에 맞서기 위한 내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을 터이다. 그리고 당시로선 난 그 답을 또 그 만큼 거대한 세상에서 찾으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그런 내 몸부림을 비웃듯, 우리네 소소한 일상과 그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작은-그래서 더욱 느끼지 못할-사랑에 관해 묻고 있었다. 그리고 평범한 신혼부부인 영민과 미영이 살아가는 영화 속 일상과 나의 그것이 그다지 다름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소소함과 작은 마음의 울림이 그렇게 소중한 것임을 영화는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진한 감성으로 남겨주었다. 그렇게 남은 감성이 강하지는 않지만, 세상을 또 다른 눈으로 보게 하는 힘을 주기도 했다. 또 영화는 극중 영민과 미영이 수시로 내뱉는 “사랑해”라는 말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말해주고 있었다. 다만, 우리는 현실에서 여전히 그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그 말에 관한 한, 현실과 영화는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애써 변명 삼아본다.

 

이명세 감독의 세련된 감각을 알려준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영화로서 내게 안겨준 또 하나의 기쁨은 ‘스타일리스트’로 불리는 이명세 감독의 세련된 감각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사랑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라는 제목이 붙은 프롤로그 장면에서부터 그 이전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말풍선과 같은 신선한 시도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끈 영화는 이후 내게 이명세 감독의 작품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게 했다. 영민과 미영의 신혼집 골목에 켜진 가로등, 그 밑에서 우는 도둑고양이의 울음, 새벽녘 골목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걸음걸이…. 어느 하나 정겹지 않은 기억이 없다. 최종원, 전무송, 윤문식, 최종원 등 조연 배우들의 개성이 한껏 묻어나는 캐릭터도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빛내준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기억하다보니 가슴앓이 끝에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길을 선택한 故 최진실의 발랄한 웃음이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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