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과 1974년의 미국 록 비즈니스계에 대한 보고서
1973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샌디에이고 고등학교를 다니는 15살짜리 소년 윌리엄 밀러의 성장담이면서 1973년과 1974년의 미국 록 비즈니스계에 대한 보고서다. 사이먼 앤 가펑클부터 더 후, 비치 보이스, 레너드 스키너드, 낸시 윌슨, 캣 스티븐스, 레드 제플린, 그리고 엘튼 존에 이르기까지 록과 팝의 명곡들이 영화 안에서 사이좋게 공존하는 이 영화는 록과 대중음악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새롭게 깨닫게 되는 영화다.
좋은 영화는 언제나 좋은 음악과 함께 기억된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다. 특히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아니라 기존 곡을 가져다 썼을 때 그런 경우가 많은데 이미 들어서 알고 있던 음악이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이나 순간과 더해지면서 새로운 기억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음악을, 음악 자체의 완벽한 구조나 미학 때문이 아니라 그걸 들었을 때의 상황과 감정, 심지어 날씨 때문에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음악이 뇌리에 콕 박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직도 내가 처음으로 실연했던 때 들었던 유행가를 잊지 못한다. 그 노래는 아무도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겠지만, 심지어 나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노래가 되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신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에는 언제나 소중한 노래가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그리고 음악은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다.
미국 록 음악의 전성시대와 몰락의 순간 담은 성장영화
이 영화의 배경은 1973년이다. 샌디에이고 고등학교를 다니는 15살짜리 소년 윌리엄 밀러가 주인공인데 그는 록큰롤 마니아로 심리학 교수인 어머니와 반항기가 다분한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 당시 록의 역사를 막 새로 써대던 레드 제플린과 페이시스, 더 후와 험블 파이 같은 밴드에 심취한 그는 우연한 기회에 록 매거진 <크림>의 편집장 레스터 뱅스와 가까워지고 그의 도움으로 블랙 사바스의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 공연장에서 소년은 오프닝 무대에 선 신인 밴드 스틸워터를 만나게 되고 막 인기를 얻고 있던(그러니까 ‘올모스트 페이머스’였던) 밴드에게 흥미를 느낀다. 영화는 이 풋내기 소년이 당시 최고의 음악전문지인 <롤링스톤즈> 편집부에 ‘뻥’을 치고 스틸워터에 대한 특집 기사 작성권을 따내면서 1970년대 초반의 아름답고 혼미하고 복잡한 시절의 중심으로 파고 들어간다.
이 영화에는 1970년대 초반, 그러니까 1960년대 말에 만개했던 미국 대중문화, 특히 록 음악이 활짝 피었다가 지던 순간의 아련함이 가득하다. 록 밴드와 신체적 접촉을 갈망하던 소녀들, 공식적으로는 ‘밴드 에이드’로 경멸적으로는 ‘그루피’라 불리던 여자들도 등장하고, 록이 세계를 바꾸리라 믿는 그러면서 동시에 성공에 대한 갈망에 사로잡힌 음악가들도 등장하고, 아무 생각 없이 파티와 약물에 ‘환장하는’ 10대들도, 밴드 혹은 세계와 거리를 둔 채 음악을 사랑하는 평론가도 등장한다. 록 비즈니스와 영웅의 가면을 쓴 인간의 진짜 얼굴과 쿨하게 살고 싶던 사람들의 그저 그런 진짜 삶이 등장한다. 그 속에서 예민하고 조숙한 소년 윌리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른이 된다. 그의 여행은 애초에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휩쓸리며 몇 개월로 늘어나고 스틸워터의 전미 순회 버스 투어를 따라가며 자신이 보지 못한 세계를, 그러니까 어른의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이다.
록과 팝의 명곡들이 영화 안에서 사이좋게 공존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1973년의 록음악계를 아름답게 포장하기 때문이 아니다. 신인 밴드가 성공한 밴드로 거듭나는 과정을 치열하게 담고 있어서도 아니다. 이 영화는 한 소년의 성장담이면서 1973년과 1974년의 미국 록 비즈니스계에 대한 보고서다. 요컨대 이 영화에 삽입된 음악들, 사이먼 앤 가펑클부터 더 후, 비치 보이스, 레너드 스키너드, 낸시 윌슨, 캣 스티븐스, 레드 재플린, 그리고 심지어 엘튼 존에 이르는 록과 팝의 명곡들이 영화 안에서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록과 대중음악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내 직업이 바로 그러하므로) 새롭게 깨닫게 되는 영화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 다시 꺼내보는데 그때마다 예전엔 미처 몰랐던 것이 새삼 보이곤 한다. 일례로 1973년은 <롤링스톤>이 창간한 지 5년째 되던 해였고 당시 <롤링스톤>은 최고의 음악전문지이자 대중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잡지는 록 음악을 ‘예술’로 만드는데 일조했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만든 록의 신화를 깨뜨리고 싶어 했다. 록의 영향력이 점점 사라지던 시대, 록 밴드 자신들도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던 시대, 세상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무도 말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는 있던 시대, 하지만 세계는 이미 변했고 사람들도 변했고 음악도 변한 와중에 자신들이 믿고 있던 그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 도대체 모르겠는 시대의 복잡함이 그야말로, 제대로 얽혀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음악영화보다는 성장영화의 범주에 넣고 싶다. 한 아이가 이제까지 믿고 있던 삶의 가치,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판타지가 깨지는 순간을 경험하는 게 바로 성장이란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영화 초반의 윌리엄과 후반의 윌리엄의 표정이 변하는 과정을 볼 때마다 내가 아이에서 어른이 되던 순간이 떠오른다. 아픈가. 나도 아팠다. 괴로운가. 나도 괴로웠다. 그렇지만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다. 다만 이젠 모든 것이 다 지나갈 뿐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프고 괴롭지만 그걸로 우리는, 요만큼 자랄 수 있었다. 그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때 너를 위로해주던 음악들을 나도 사랑한다. 그 음악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곤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네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위로받았는지는 알 것 같다. 내가 그러했듯이, 너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시엔 가볍고 무의미한 팝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엘튼 존의 ‘Tiny Dancer’를 밴드 멤버들이 합창하는 장면에서 매번 가슴 뭉클한 채로 이 영화를 보고 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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