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혹은 박물관)에서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는 것이 요즘이야 그리 새로울 것 없는 일이지만, 5-6년 전 만해도 미술관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는 사실은 기사거리가 될 정도로 낯선 이야기였다. 엄숙하게, 다시 말하자면 ‘어른스럽게’ 작품을 감상해야 할 미술관에서 아이들을 위한 갖가지 프로그램이 왁자지껄하게 진행된다는 것이 말하자면 하나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런 기사들은 대체로 복합 문화센터로 거듭나기 위한 여러 미술관들의 고민에 찬 시도와 함께, 미술관의 달라진 위상이나 색다른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를 함께 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렵에는 꽤나 많은 미술관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경쟁적으로 마련하는 등 관람객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려는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이야 흔한 풍경처럼 느껴지는 것들이지만, 그 때만 해도 매우 신선한 시도였던 미술관의 여러 프로그램들, 예를 들면, 어린이 프로그램들이나 공연, 퍼포먼스, 파티 등의 다채로운 활동들은 적어도 그 출발만큼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프로그램들로 인해 오랫동안 딱딱하게 굳어진 미술관의 이미지들이 좀 더 친숙한 것으로 바뀌어갔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려 봐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은 참가한 아이들의 반응은 물론 지켜보는 부모님들의 평가도 유난히 좋았던 것 같다. 한마디로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은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대표적인 프로그램 중의 하나이자 호응도가 놓은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즐거운 주말 체험 <미술 속 마술 찾기>
얼마 전 사비나 미술관의 어린이 문화예술 프로그램인 ‘즐거운 주말체험 <미술 속 마술 찾기>’를 찾았다. <미술 속 마술 찾기>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미술관의 전형적인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6월 24일에 시작된 기획전인 <여섯 개 방의 진실>전과 함께 시작하여 7월 16일까지 총 4회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전시가 8월 말까지 연장됨에 따라 <미술 속 마술 찾기> 프로그램도 10회 더 추가하여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프로그램에 대한 높은 호응이 추가 진행을 가능케 했음은 물론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안정적인 기획을 바탕으로 무난하게 진행되었던 것 같다. 한 회의 프로그램은 토요일과 일요일, 2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토요일에는 미술관 관람 에티켓 교육을 받고, 미술관과 전시기획과정에 대한 소개를 들은 후, 에듀케이터와 함께 전시를 관람한다. 그리고 전시된 작품 중의 하나를 모티브로 하여 스케치나 퍼포먼스를 하고 감상에 대한 토의로 마무리한다. 일요일에는 눈속임 회화(trompe-l`’oeil)를 다룬 서양 작가 작품을 슬라이드로 감상하고, <여섯 개 방의 진실>전과 슬라이드 감상 때 본 작품의 기법을 응용하여 아이들이 직접 작품을 제작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이에 대한 소감을 발표한다. 11시부터 1시까지 2시간에 걸쳐 진행된 프로그램은 프로그램 가지 수가 좀 많다 싶을 정도로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다채로운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참가비용이 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사비나 미술관의 프로그램이 남긴 인상
미술관의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에 다소나마 관여해 본 적이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사비나미술관의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 인상으로 다가왔다.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꽤나 알차게 진행된 프로그램이었다는 것, 그러나 동시에 그렇게 색다를 것 없는 일반적인 프로그램이기도 했다는 것. 미술관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의 성과와 한계가 동시에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의 전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어린이 프로그램의 경우 미술관 에티켓 프로그램과 함께 전시와 연동된 기획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비나미술관의 프로그램은 전시된 작품에서 많이 다루어지고 있는 눈속임 회화를 흥미롭게 소개하고,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아이들 스스로 이를 체험케 하는 기획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처음 경험해본 아이들에게는 무척이나 색다르고 재미있는 경험이다. 자주 찾아오지 않게 되는 미술관을 방문하여 친절한 언니 오빠들의 설명과 함께 전시 관람도 하고 신기한 작품이라 여겨졌던 것들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보게 되는 경험은 흔치 않고도 즐거운 일이다. 그만큼 미술관이란 곳이 친숙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기에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미술학원에서 맛볼 수 없는 색다른 교육을 아이들에게 받게 한다는 것이 흡족할 것이고, 스스로도 미술관 나들이를 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일 것이다.
다만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직접 어린이들을 상대하는 프로그램이라든지 <여섯 개 방의 진실>이라는 전시 구성을 활용한 프로그램 기획도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좀 더 세분화된 대상설정도 필요할 것이고, 그에 따른 프로그램 자체의 확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번 프로그램의 경우 전반적으로 무난했다는 느낌인데, 이 말은 결국 너무 평면적인 교육 프로그램은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으로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괜한 딴지가 아니길 바라지만, 이런 의구심은 이번 사비나 미술관만의 특수한 문제라기보다는 현재의 미술관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일반의 문제와 연결된다.
이번 프로그램을 포함해서 이렇게 인기리에 치러지고 있는 대개의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들은, 전체적으로 수혜의 폭이 크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여전히 이벤트처럼 기획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인데, 미술관의 여러 가지 사정상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을 일상적인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기에는 무리수가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1회에 진행할 수 있는 인원 역시 20-30여명이 보통이고 대개는 기획전시와 연관한 특별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프로그램 기획 자체도 많지 않을 뿐더러 참가 인원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미술관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에게 필요한 몇 가지 것들
이 글의 서두에서 미술관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을 언급했던 것은 사실, 첫 출발 당시 쏟아졌던 사회적 관심이나 미술관들의 자발적인 노력, 그리고 이에 대한 호응에 비해 최근의 상황이 그렇게 나아지고 있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몇몇 미술관에서는 어린이 박물관을 만들어 발전적인 성과를 이루어내기도 했지만, 대개 미술관들의 경우 초기의 노력에 이은 후속 기획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처음에 몇 번 이벤트처럼 시작해서 좋은 반응을 얻어 나름대로 미술관의 대외 이미지를 높인 후, 더 이상 프로그램을 지속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이 미술관의 생색내기라는 혐의를 받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닌가 싶다.
이것은 현재 미술관의 여러 가지 문제들, 곧 재정이나 인력 문제와도 연결된다. 예를 들어, 어린이 프로그램에 책정되는 미술관 예산이나 미술관의 교육 프로그램 담당자라 할 수 있는 에듀케이터의 숫자는 여전히 부족하다. 한마디로 미술관들의 객관적인 여건과 한계로 인해 좋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할 상황이 못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객관적 여건으로 인해 미술관들은 좋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하거나 프로그램의 전문화・체계화를 꾀하지 못하게 된다. 비슷비슷한 기획들이 반복되는 것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여름방학용으로 기획되는 각종 이벤트성 어린이 대상 전시나 프로그램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색다르고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이기 때문에 단순한 이벤트성 행사로만 시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문화된 에듀케이터의 존재감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고, 제도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인 프로그램을 하는 전문팀들이 생겨나는 것 역시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런 노력에 더해 기획의 지속성과 이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중앙이나 지방정부 단위의 정책 등 체계적인 지원 문제도 고려해볼 수 있겠다.
공공 교육 공간으로서의 미술관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오늘날 미술관이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술관이 많은 컬렉션을 소장하고 전시를 하는 곳이어서가 아니다. 오늘날 미술관의 원형을 이루어낸 근대의 미술관이 가졌던 가장 큰 사회적 명분 중의 하나는 미술관이 일정한 교육을 담당하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작품에 대한 감상은 그것을 통한 교육적 효과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의 위상이 그토록 높을 수 있었던 것은 근대라는 시대적 배경 덕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시민들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이라는 위상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 미술관의 여러 가지 다채로운 활동이나 노력도 이러한 기본적인 공공성을 전제로 하여 발전해 왔다. 미술품의 전시를 통한 교육과 이를 매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은 미술관에서만 행해 질 수 있는 특수한 형태의 교육이라는 점에서 미술관만이 가지는 좋은 자원일 수 있다. 미술관의 각종 인프라와 전문적인 역량, 공간자체가 주는 여러 가지 색다른 경험의 효과가 맞물리면서 일반 제도 교육과는 다른 형태의 교육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책이나 이미지로 대하는 미술품이 아닌 실제의 작품을 감상하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미술가들을 직접 만날 수 있으며, 이러한 환경을 바탕으로 실제 작가처럼 작품 제작을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미술관의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은 여타의 미술교육 공간과는 차별성을 가진다.
솔직히 말한다면 사비나미술관의 프로그램을 찾아 오랜만에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을 다시 볼 생각을 하면서 얼마간의 기대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얼마나 더 발전했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 같은 것. 하지만 마치 시간여행을 한 것처럼 달라진 것이 거의 없어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사비나 미술관의 프로그램 하나를 놓고 현재 미술관들에서 진행되는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전반을 진단한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겠지만, 알아본 몇몇 경우들 역시 대개는 비슷했기에 아쉬움도 그만큼 더 크지 않았나 싶다. 그리하여 미술관의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원론적이고 일반적인 단상들이 이어졌고, 몇 몇 기억들과 오버랩 되면서 이런 프로그램이 가진 의미와 중요성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이다.
소박한 바램일수 있지만 좀 더 체계적이고 발전적인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들이 일상적으로 기획이 되고 전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학교나 미술학원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미술관만이 가진 강점을 활용한 여러 가지 체험들은 분명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술관이 놀이터처럼 친숙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아닐까. 사비나 미술관의 흠잡을 데 없는 기획과 진행을 보면서, 미술관의 다채로운 활동들이 계속 이어지고 발전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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