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을 싫어했다. 나는 ‘교사’라는 말을 싫어했고, ‘교사 되기’를 싫어했고, ‘교사가 되겠다는 사람’을 말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부모님과 친척들이 교사가 되기를 권유했지만 폭풍같은 콧바람을 불며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절대 선생님은 되지 않겠다고 시위했다. 하나, 나는 감정적이고 둘, 나는 인내심이 없으며, 셋, 나는 역마살이 있어 교사가 될 그릇이 못된다고 큰 소리를 쳤다.
나는 운이 좋게도 늘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12년 간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과의 마찰 때문에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던 적은 딱 두 번뿐이었다. 한번은 환경미화 도중, 산만하고 정신없다며 집에 가라고 버럭 소리 질렀던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과의 마찰이었고, 다른 한번은 단체 기합으로 운동장을 돌고 빗자루로 허벅지를 맞고 난 후였다. 선생님이 검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집에 가!’라고 소리 질렀을 때 나는 팽팽한 고무줄이 끊기 듯 선생님의 인내심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고, 집에 가는 길에 닭똥같은 눈물을 뿌렸다. 그 날 밤 친한 친구와 싸웠을 때처럼 안절부절하며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다. 나는 내일 등교하면 어떻게 선생님과 눈을 마주쳐야 하는지 고민했고, 주눅과 두려움이 가슴에 맺혔다.
운이 좋게도 내게는 늘 좋은 선생님이 있었다. 어떤 선생님이 ‘저 학생은 싸가지가 없다’고 혼을 낼 때에도 ‘저 아이는 저런 점이 장점이다’라고 말해주는 선생님이 있었고, 역사와 세계 지리에 관심이 있던 내게 성경책을 권해주며 중동지역의 고대 역사가 있는 책이니 읽어보라고 권하시던 꼿꼿한 할머니 선생님이 계셨다. 정지용 시집을 권해주시며 ‘꾸준히 좋은 책을 읽고 글을 써보면, 좋은 작가가 될 것’이라고 격려해주는 선생님도 있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좋은 나무가 되라고 격려해주고, 거름을 뿌려주시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학생이었던 적이 있는 모든 사람은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좋은 기억으로 남는 선생님이 있을 것이다. 그저 복도를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꽃바람이 불 듯 좋은 냄새를 가진 선생님부터, 역사관을 이야기하실 때면 목에 핏대가 서는 철학이 강한 선생님, 피곤할 때 조퇴를 잘 시켜주신 분이거나, 혹은 엄했기 때문에 좋았던 분도 있을 것이다. 모든 선생님이 ‘천사들의 합창’의 히메나 선생님같이 온유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학교에 대한 기억이 다양한 것 만큼이나 많다.
나는 드라마 ‘로망스’의 김하늘처럼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라고 말하는 선생님을 싫어한다. 인내심의 굵은 신경이 끊어지며 ‘니들이 인간이냐!’고 소리지르고는 다음 날 고운 정장을 다려입고 어제의 일은 인성교육의 하나였다는 듯, 태연히 조회를 하고 나가는 선생님을 볼 때마다 고민했다. 선생님들은 몇가지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가? 개인의 ‘성격’이 사라진 얼굴로 ‘교사의 역할과 태도’의 전형을 연기하는 선생님들을 싫어했다. 교사의 자질은 높은 도덕성과 뛰어난 지식으로 학생들의 귀감이 될 수 있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대화를 나누고, ‘싹수없는 요즘 아이들이란’이라는 생각대신에 ‘다른 싹’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세대를 흥미롭게 대할 수 있는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교사는 이러한 자질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내 친구들이 선생님이 되겠다고 하면 말렸던 것이고, 나 또한 선생님이 될 그릇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순간 버럭 화를 내고는 어찌 대해야 할지 망설이곤하는, 인간관계 기술이 부족한 나는 선생님이 되기에 부족하다.
곳곳의 워크숍과 세미나에서 만나 뵙는 선생님들을 보면, 자신이 배운 교사로서의 역할과 아이들 문화, 그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더듬이를 움직이는 모습을 본다. ‘교사라서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되돌려 드렸던 박만용 선생님의 ‘네, 그렇습니다’라는 거침없는 대답은 저 더듬이가 건강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임이 분명하다. 아이들의 삶과 내 삶을 교차시키면서, 씨실과 날실이 엮여 고운 무늬를 짜듯 아이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면서 학교 현장으로 출근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대답일 것이다. 장래희망은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라는 박만용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나의 친구들. 그들이 그 산을 올라가는 과정을 즐기기를 바란다.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오르기 시작한 산을 새를 친구 삼아, 흙의 촉감을 즐기며 천천히 지치지 않고 오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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