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소리를 통한 세상 모든 것과의 소통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아에이오우’ 등으로 이름이 알려진 가수이자 작곡가 예민이 아이들과 소통을 시작한 것은 2001년 분교음악회를 기획·진행하면서부터다. 책장수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이들을 설득해 영월의 한 분교에서 첫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일곱 명의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었고, 그는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부르고 있었다. 한동안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가 싶더니, 아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2분쯤 잘 듣더니 산만해지기 시작했어요. 노래를 계속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동네 아주머니 한분이 삶은 옥수수가 그득 담긴 바구니를 놓고 가시더라고요. 아이들은 더 떠들썩해졌고 한 녀석은 무관심 속에 노래하는 게 안쓰러웠는지 노래하고 있는 저에게 옥수수를 권하기도 했죠.”아이들과의 소통을 시작하다1년 동안 120개 분교에서 음악회를 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것은 첫날부터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다. 자신이 노래를 하면 전부 조용해지는 줄만 알았던 예민은 큰 모멸감과 당황스러움이 교차하는 감정을 느껴야 했다. 그때부터 자신의 노래를 일방적으로 들려주기 보다는 어떻게 아이들과 가까워질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음악 속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코니시 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던 세계 민속음악을 떠올렸다.

“인류학적으로 음악과 인간의 본질적인 관계는 소통이었어요. 근본적으로 악기는 연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것이었죠. 기우제를 하면서 비를 간절히 소망하는 남미 원주민들이 개구리 같이 생긴 악기를 연주한다든지, 제사상을 차릴 때 ‘팅샤(티벳불교의 종처럼 생긴 악기)’로 배고픈 영혼들을 부르는 식이죠.” 그때부터 예민은 전세계 희귀악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사람의 두개골, 당나귀 머리뼈, 신석기 시대 돌, 돌연변이 소라거둥, 악어·가오리 가죽 등으로 만들어진 희귀 악기 하나에 아이들은 3분의 집중력을 그에게 선사했다. 아이들의 눈길을 끌고 악기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모으기 시작한 세계 민속악기들은 인류학적, 고고학적 가치가 높고 희귀한 것들로 가득 찬 박물관과도 같다. 이 악기를 보고, 만져보고, 냄새 맡고, 소리를 내보면서 아이들은 소리의 본질을 알고 자신의 소리를 낼 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음악의 소비자로 키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학교 음악교육은 어른을 흉내 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이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통해 음악의 주체자로 활동할 수 있기를 바라요. 이에 선행돼야 할 것은 스스로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자기만의 악기를 가지고 ‘연주’라는 행위를 통해 일체감을 느끼는 거죠.” 이에 예민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함께 어린이 예술창작학교 ‘온리 원(Only One)’을 진행하고 있다. 창작악기 수업을 통한 자기 소리 찾기 과정으로 아이들의 창의적 활동을 돕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첫 수업시간에 예민이 아이들에게 던진 질문은 “무엇과 소통하고 싶은가”였다. 누구나 ’악기‘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것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이다. 바이올린, 오카리나 등 악기를 부수고 조립하면서 소리의 본질과 부품별, 부분별 기능을 공부하고, 악기든 공명통이든 자신만의 악기를 만들고 소리를 내면서 아이들은 음악의 주체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음악가가 되는 세상을 꿈꾸며“의사가 바라는 것은 환자가 없는 세상이지만, ‘의사’라는 직업의 존재 자체에 위협이 되는 아이러니가 존재하죠. 음악을 하는 사람이 꿈꾸는 세상 역시, 음악가가 없는 세상이에요. ‘음악가’라는 존재가치가 희미해진다고 해도, 음악가인 제가 꿈꾸는 세상은 모두가 음악가가 되는 세상, 음악이 생활이 되는 세상입니다.” 모든 이들이 베토벤이 되는 세상, 그 세상은 각자의 소리를 창작하는 세계이고, 그 소리에 행복함이 넘쳐나는 건강한 세상일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하고, 소리를 사랑하는 예민이 꿈꾸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