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으로 이야기하는 학교

홍진표|경인중학교 음악교사, 전국음악교과모임 사무국장

웹진 땡땡의 ‘기획’은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다양한 쟁점들과 의견, 소식들을 심도있게 다루기 위해 만들어진 코너입니다. 웹진 땡땡 운영팀은 우선 문화예술교육을 하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을 하기 위한 ‘학교 공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훌륭한 장비와 시설이 문화예술교육을 하기 위한 요건의 전부일까요? 오히려 학교에 짜투리 공간이 많아 다용도로 활용하며, 쉬기도 하고 뛰놀기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문화예술교육’에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땡땡’은 이번에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교사 한 분과 학생 한 분에게 이야기를 청해보았습니다. 이 두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문화예술교육을 하기 위한 ‘공간’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나는 한 때 무슨 공연기획사의 연출가처럼 학교 축제에 목을 매단 적이 있었다 필자는 2년간 학교를 휴직하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본부에서 근무하다가 올해 3월에 복직했다. . 그것만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들에게 지역사회와 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자부심, 나아가서 학생 개개인에게 정체성을 갖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고무적인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 축제를 준비하고 여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무척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이 결코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엄연히 존재하는 입시제도의 벽 앞에서 학부모들은 늘 아이들을 늦게까지 잡아놓는다고 성화였고 교육 시스템보다는 행정업무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비효율적인 학교사회에의 특성상 축제는 교사들에게 보람보다는 무거운 짐을 주는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힘들게 하는 요소는 도식화되어 있는 학교배치와 운영, 그리고 아이들의 문화 예술적 감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학교 시설이다. 아침 등교길에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수위실과 선도부들의 용의복장 검열, 그리고 군사문화적 잔재라 할 수 있는 교복문화와 학생생활 규정은 학생들의 창의성과 상상력보다는 획일화된 틀에 잘 길들여지는 순응형 인간을 길러내는데 더 적합하다. 또한 학교울타리 내에서만 해결해야만 하는 동아리 활동의 경직성은 결국 창의적 학생 문화의 싹부터 잘라내는 우를 범하고 있다. 따라서 학생회를 축으로 하는 창의적 축제문화를 만들어 내는데는 억지가 많이 따르며 결국 몇몇 담당 교사들의 잘 짜여진 시나리오 의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 시설 역시 그 면면을 들춰볼 때 문화예술교육에 꿈과 열정을 갖고 있는 교사로서는 참으로 눈물겹기만 하다. 우선 먼저 오로지 지식교육만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을법한 획일적인 교실배치를 들 수 있다. 교무실과 화장실을 빼놓고는 어떤 교실도 다 똑같은 규격에 똑같은 구조로 도식화 되어 있다. 소박한 규모의 기악합주 연습실, 대형 거울과 마루바닥으로 만들어진 무용실, 최소한의 전시공간, 연극을 연습하거나 리허설 할 수 있는 소강당, 학생자치와 토론문화로서의 학생자치 공간, 영상편집이 가능한 방송실 등 어느것 하나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학교축제는 결국 극소수 열혈 교사의 깡에 가까운 추진력에만 의존하게 된다. 그마저도 해당 교사가 다른 학교로 전근가거나 축제를 몇 번 해보다가 제풀에 지쳐 포기하게 되는 경우 그 학교의 축제는 돌아갈 수 없는 전설로만 남게 되며 축제는 사치일 뿐이라는 패배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오늘도 나는 급식 엘리베이터의 소음과 바로 옆 다른 음악실의 리코더 합주 소리, 그리고 또 그 옆에 있는 기술실의 기계톱 돌아가는 소리를 들어가며 아이들과 음악수업을 하고 있다. 바로 아래층에 있는 학급 담임선생님은 음악실과 기술실 때문에 피해가 크다며 교실을 바꿔달라고 호소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소리 없이 음악 수업하는 방법을 고민해본다. 음악실에서의 수업이 끝나면 힙합댄스와 기악합주반 특기적성반 학생들이 음악실을 빌려달라고 줄을 선다. 무용실과 합주 연습실 등 별도의 문화공간이 없는 학교로서는 그나마 음악실이 최후의 보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는 10월에 있을 학교 축제를 어떻게 하면 의미이고 감동적으로 치룰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그러면서 생각해본다. ‘혹시 이것이 낭만적인 사치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필자는 2년간 학교를 휴직하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본부에서 근무하다가 올해 3월에 복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