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예술강사 그게 뭔데요? 학교 오면 다 선생님 이예요

일주일에 단 한 시간이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 아이들의 눈으로 본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일주일에 하루, 고작 1시간. 그것도 단 40분만 뵙는 우리 창재(창의적 재량활동) 선생님. 영화과목을 가르치시는 유지선 선생님을 만나고 화요일이 기다려진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만 좋아라했건만 이제는 어떻게 찍고 어떻게 편집했는지에 더 많이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니까.

영화를 전공하셨다지만 그 동안 궁금했던 점을 콕콕 집어 알려주시는 선생님의 가르침에 내가 봐도 내 안에 매니아적 기질이 꿈틀대는 것 같다. 오늘은 화요일. 3교시에 시작되는 영화수업이 한 시간만 더 있었더라도 촬영이 이렇게 굼뜨지는 않았을 텐데….
오늘은 주연배우들에게 어떻게 연기지도를 해야할까?

성적에 안들어간다고 아무렇게나? 쯧쯧…

드디어 영화수업이 있는 날이다. 서울 목동 한복판, 그것도 지하철 역과 거리가 있는 탓에 걸어서 통학하는 길이 지루하기도 하지만 오늘만은 촬영일정을 생각하느라 왠지 학교에 빨리 도착한 것 같다. 어쩌다 연출을 맡았는지 지금도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내가 쓴 시나리오를 보고 그렇게나 배꼽잡고 웃어대던 친구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뿌듯하다.
처음 2학년에 올라와 시간표를 보고는 정말 많이 놀랐었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만이 살길 인 줄 알았는데, 화요일 3교시에 떠억하니 자리한 ‘영화’라니. 내가 이렇게 놀랐으니 부모님은 얼마나 놀라셨을까. 솔직히 중2부터는 내신에 신경써야하고 공부도 잘해야한다고 누누이 강조하셨는데…. 사실 내가 생각해도 그건 맞는 말이다. 나중에 커서 좋은 직장잡고 삶이 편안해지려면 지금부터가 중요한 시기겠지. 내가 이런 말하면 주변 친구들은 애늙은이 같다고들 하지만 아마 지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걸? 하지만 그 와중에 접한 영화는 너무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어떤 친구들은 시험도 안보고 성적에 포함되지 않는 과목이라고 오히려 그런 쪽에 살판나긴 했지만, 그래서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영화 선생님을 편하게(?) 대하기도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럼 오히려 더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나? 우리가 언제 카메라를 만져보고 연기도 하고 레디 액션을 외쳐본다고 농땡이를 부리는 건지…. 쯧쯧.
하지만 솔직히 1학기 때는 2학기가 기다려진게 사실이다. 2학기에는 그때 배운 이론을 중심으로 직접 카메라를 메고 영화를 찍는다는 선생님 말씀에 가슴 설레였으니까. 그래도 그 때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랑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과정, 이미지 덕분에 아빠에게 아는 척 좀 했었다.

오랜 만에 아빠랑 영화를 보면서 “아빠 화면이 저렇게 흔들리는 건 카메라 감독이 카메라를 둘러메고 찍어서 그래. 핸드핼드 기법이야”라고 말했을 때의 뿌듯함이란. 그때 아빠가 뭐라고 하셨더라? 아 맞다. “너, 너무 예민한거 아니냐”라고 하셨지. 에고 아빠도 참…. 우리 학교에 영화과목이 있다는 걸 아직도 모르시는 건가.

꿈과 재능이 다양한 내 친구들

이제 10월이 지나고 11월이 지나 올해가 가고 나면 영화과목은 다시 만날 수 없겠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지 않는 이상 아마 내 인생에 영화가 시간표에 오르는 시간은 지금 뿐일 거야. 그렇지, 영화에 특출난 재능을 갖고 있는 않는 이상, 지금처럼 16mm 카메라 돌려가며 영화를 찍는 일도 없을테고. 그럼 지금에 충실히 해야하는 거잖아. 내가 지금 이 나이에 뭔들 못하겠어. 선생님이 가르쳐주신대로 모르면 물어보고라도 꼼꼼히 촬영해야겠어. 참 그리고 가을 신목예술제 때 가장 잘 찍은 작품을 상영하기로 했잖아. 놓칠 수 없어. 아니 놓치고 싶지 않아~.

아, 또 아빠가 생각나네.
내가 방학동안 완성한 4장 짜리 시나리오를 보고 재미없다고 하셨었지? 우리반 친구들은 너무 좋아했는데, 제목도 “추녀는 석유를 좋아해”. 이준기 노래에 맞춰서 부르면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나저나 우리 조 아이들은 왜 이리 어수선한거야. 카메라 담당 현지는 앵글 맞추고 있고 여자 주인공 지희는 피아노 앞에서 연습 중이고, 여장남자 정호는 분장중인가? 아침에 집에서 들고 나온 가발이 저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는데. 꼭 여자 같잖아. 선생님도 우리 조가 가장 마음에 드시나봐. 정호가 여장을 하고 있어서 신기하신건가?

탤런트가 꿈인 지희는 정말 너무 고마워. 연출한답시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닦달해도 모든 걸 다 받아들이는 저 포용력. 지희야 정말 고마워하는거 너 알지? 우리반 남학생 중 가장 여성적인 정호도 자기 자리를 찾은 것 같고(아~ 미안). 그럼 오늘 촬영을 시작해 볼까. 준비과정이 2주 정도 걸렸으니까 앞으로 촬영은 3주 정도 시간이 걸릴 테고… 그 안에 우리 영화 “추녀는 석유를 좋아해”를 완성해야해. 2분 분량이니까 그리 어렵진 않을텐데. 어, 너희는 왜 또 티격태격인거야. 아니다. 내가 연출이니 의견수렴을 해야지. 그래야 각 담당들이 서로의 의견을 알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할 거 아니야. 어, 왠일이지? 이런 생각을 다하고. 나도 조금씩 생각이 커지고 있는 건가?

엄마! 이번 시험 잘 볼테니 의상 좀 도와주세용!!

아니 그런데 벌써 수업시간이 10분 밖에 안남았잖아. 이건 너무 짧아. 수업시작하자마자 연기자 의상 갈아입히고 분장하고 카메라 고정시키고 연기 동선 체크하는 데만 반 이상이 흘러버렸어. 이러다보면 이번 시간에도 또 리허설만 하다 끝날지도 모르겠네. 영화시간을 조금만 늘려주면 안되나. 솔직히 국어, 수학, 과학, 영어 만으로 우리 모두가 직업을 찾아가는 건 아닐텐데. 여러 분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수업은 좀처럼 만날 수가 없잖아. 우리도 삶을 즐기면서 공부하고 싶다고! 영화 분야에도 이제 매력을 느끼게 된 것 같아.

연출 분야도 괜찮고 카메라에 찍힌 내 모습을 보면 아나운서가 되고 싶기도 해. 하지만 여전히 수업시간이 짧아, 40분 안에 분장하고 연출하는 건 너무 어려워. 미리미리 준비할 시간이 있으면 좀더 많이 촬영하고 좀더 좋은 작품을 구상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다. 그럼 엄마가 또 걱정하시겠다. 영화수업 때문에 의상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말이 되돌아 왔었지. 그래도 믿어주시니 어떤 과목이든 열심히 해야지. 학교에선 정말이지 나중에 우리가 커서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도록 이런 식의 수업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 돈을 내고 보는 영화를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본다는 게 얼마나 매력적인 일이야.
어, 벌써 종치네. 아~ 이건 아니잖아~. 선생님, 이번 시간도 분장하느라 너무 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렸어요. 에구에구. 이럴 때 엄마가 좀 도와주시면 좋을 텐데. 엄마에게 한마디, “엄마 이번 시험 정말 잘 치를 테니, 내 영화 의상 좀 도워주세요. 정말이야. 대신 못 보면 음…. 부탁 취소!”

“성적이 아니라 재능이 빛나는 우리 아이들”
서울신목중학교 영화예술강사 유지선 선생님

올해로 3년 째 서울 신목중학교에서 영화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유지선 선생님은 첫 해와 달리 아이들과의 소통에 눈을 뜨게 됐다며, 그런 이유로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새삼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유지선 선생님과의 일문일답.

-올해로 3년째 같은 학교에서 영화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다른 강사들과 달리 한 학교에 오래있다보니 여러 장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재직 중인 선생님들과 친분이 쌓여 수업시간 변경이나 늘리고 줄이는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말씀드릴 수 있고 처음 왔을 때부터 만난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됐다.”

-처음 영화과목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생소했을 텐데.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운 좋게 교직과목도 이수했다. 올해부터는 교육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몰랐던 부분에 대해 깨달았을 때 보내는 눈빛이 너무 반갑고 즐겁다. 강의를 시작한 첫 해부터 한달에 한번 2시간 씩 특별활동을 운영하고 있는데 작년에는 교육부에서 주관한 영화제에 나가 상을 타기도 했다. 창재시간을 위주로 교육하고 있지만 그 시간에 아쉬움이 있던 아이들은 특활시간에 조금 더 심층적으로 공부하며 재능을 키우고 있다. 지금은 영화교육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예술강사로서 느끼는 어려움 또한 존재할텐데.
첫 해에는 성적에 포함되지 않는 과목이니까 아이들이 말을 안 듣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나름의 노하우도 쌓이고 그때 그때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도 터득했다(웃음). 아이들도 이 과목이 성적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친구들과 무엇인가 만들어간다는 즐거움을 알게되는 것 같다. 물론 기자재가 부족하고 영화교과실이 없다는 환경적 어려움이 있지만 그건 비단 영화수업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이 아이들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본다면?
“입시체제가 강조되다보니 아이들을 항상 성적 중심으로 재단해왔다. 모든 것이 성적으로 평가돼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도 성적 위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영화수업시간에는 성적이 아닌 다른 능력으로 자신이 평가받는다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 인식하고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인다. 그래서 영화수업, 더 포괄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