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준|시민문화네트워크 기획실장
나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고 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많은 일이 있다. 시설중심으로 이제껏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수용소와 다름없는 많은 곳이 있다. 노숙자 쉼터, 청소년 쉼터, 알콜중독자 센터, 노인 복지관, 병원, 보육원, 실업자 센터, 정신 병동 등등 기존의 ‘돌보기’ 중심의 복지 영역이 그렇고 손이 닿지 않은 잠재된 곳들이 그렇다. 이제는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시설이나 재원으로 보상하려는 성금내기식 후원이나 지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삶의 의지를 찾게’하는 사회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반에 두고 사회적 시스템을 재구축해야 한다. 사회문화예술교육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통합적 개념이다. 진정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프로그램과 지원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문화 사회의 기반 개념인 것이다. 그것은 교육의 대상이 자신의 자발성과 주체성에 대한 회복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따뜻한 프로그램으로서 위치하고 있다. 즉, 관계를 필요로 하고, 자기 이해를 절실하게 요구하고, 자기 존재감을 느끼고 싶어하고, 사람과 교류하고 자연에서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사회문화예술교육이 존재하는 것이다.
많은 어른을 위해
굳이 마르쿠제의 이야기를 빌지 않더라도,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을 쉬이 말할 수 있다. 그런 능력은 몇 편의 문화콘텐츠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좀 더 어렵고 긴 길에서, 구체적이고 내밀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경험될 때 얻어질 수 있다. 특히 어려운 특정한 시기에 그러한 프로그램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게 도와주고, 사회와 삶을 통합해가도록 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일상을 창조하도록 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를 위해 자신을 투여하도록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사회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가? 어릴 적 그러한 교육을 받지 못한 뭇 어른들에게 그런 경험을 갖게 하는 곳이 얼마나 있는가? 그러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 사회는 얼마나 지지를 하고 있는가?
여기에 그것이 필요하다. 마음 한 곁에 언제나 무겁게 상처를 지고 사는 모든 어른들을 위해 기술교육이나 테크닉교육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자기 대로 느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고, 즐거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다.
더 많은 소외된 사람을 위해
통계로 잡히지는 않는 영역들이 있다. 통계는 행동의 결과가 뚜렷하게 나왔을 때만 잡히기 때문에 내적으로 쌓이는 것은 잡아낼 수 없다. 통계로 파악 불가능한 영역에서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 고통은 술자리와 폭력, 애완동물에 대한 가학, 타인에 대한 무시, 종교에 대한 맹목적 매달림, 내적 허무에 대해 겉모습의 치장을 통해서 보상받으려고 한다. 또는 집착에 가까운 사랑으로 그것을 극복하려고 한다. 어떤 심리학자는 그러한 사랑의 감정을 약물 중독과 동일한 상태라고 한다. 건조한 술집에서, 엉성한 쉼터에서 복지관에서 은혜의 집에서 나름의 방법대로 모색을 하려하지만 뭔가 잘 풀리지 않는다.
여기에 그것이 필요하다. 학교가 어루만져 주지 못하는 아이들, 저소득층,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청년 실업자, 노인, 정신적으로 지친 사람들, 도시빈민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사회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수 많은 곳에서
여러 글에서 보듯 자신의 가족을 둘러보거나 주변을 둘러보면 사회문화예술교육의 필요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 아주 가까이에서 요구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그 필요를 채우고 사회를 좀 더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죽은 유물을 붙잡고 씨름하지는 말아야 한다. 살아있는 문화로, 예술과 교육을 새롭게 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통합적 기획 속에서 그것을 필요로 하는 집단에 맞게 체험적인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엮고 키워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사람을 찾아 교육을 하고 자라게 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문화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시설중심과 관객중심의 경험위주 문화시스템이 아니라 삶을 회복하게 하는 체험 중심의 사회문화예술교육 인프라가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첫 발을 내딛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의 생명성을 위해서 어떤 문화와 예술이 필요한지 역사적 성찰부터, 그리고 어떤 교육 방법과 과정이 필요한지에 대한 교육적 성찰부터 시작해야 한다.
문화사회의 기반인 사회문화예술교육
이번 특집에서 나온 여러 가지 글들은 그러한 성찰을 주고,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인 사회문화예술교육이 가진 가능성, 힘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정신 건강은 가두고 은폐하거나 소수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 사회 많은 사람이 갖고 있는 감기와 같은 것이기에 그것이 공공 장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 과정에서 예술장이 얼마나 많이 변해야 하는 가를 상기시켜 주고, 사회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절실함을 깨닫게 한다. 또 다른 글은 잃어버린 서사를 찾는 그 과정이 주체성을 찾는 과정이고 의욕과 꿈을 갖는 과정임을 상기시켜준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기면서 생성된 힘이 사회 속에서 다시 아름다움을 생성하는 능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글은 예술이 예술의 전당과 미술관과 박물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내 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예술의 힘은 멀직이 떨어져서 보거나 들으면서 머리 속으로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속에서 자유로이 일렁일 때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걸 이야기 해준다. 그럴 때 한 작가가 변화의 메시지를 말할 때 진정 사회가 공명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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