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4월에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고, 12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기다린다. 올해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를 시금석으로 보자면, 변화를 견인한 세대투표의 양상을 주목하게 된다. 안철수 신드롬과 ‘나꼼수’ 열풍에서도 보듯 2030 청년 표심이 부상하고 있다. 선거철 ‘닥치고 정치’를 관통하면서 한층 달아오를 청년 이슈는 과연 내년 양대 선거와 2013년을 거쳐 2014년 6월 지방선거까지 약 2년 6개월여 동안 청년의 생활 의제와 일상의 활동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그에 따라 공공 영역에서 문화예술과 청년이 만나는 지점도 달라질 것이고 정책과 제도의 성과도 다르게 평가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올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무엇이 청년 이슈인지, 그 이슈가 진상을 제대로 담고 있는지 아니면 왜곡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안목이 중요하다. 이제는 섣부른 해법의 반복으로 대안 없음의 무기력을 공고히 한 대신에 문제의 재발견과 재정의를 통해 새로운 전망으로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해서다.
글_ 사단법인 씨즈 상임이사 김종휘
언제나 문제는 항상 ‘일자리’였다
언론은 20대의 문제를 등록금과 실업으로, 30대의 문제를 비정규직과 보육 의제로 세분하지만 2030의 대표 의제는 항시 ‘일자리’로 수렴된다. 그러나 일자리 부족 -‘일자리 창출’이라는 문제-해결의 선형적 프레임은 우리의 현실 속 작동되고 있는 것일까. 고용 없는 경제 성장 구조에서 독점적 시장의 규제(사회화)와 관료적 공공의 재편(민관 협치) 없이 그 바깥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라는 말은 ‘청년이여, 복불복 게임을 하라.’라는 주문이 아닐까. 이런 판도에서 청년에게 일자리 창출 해법의 쳇바퀴만 남는다면 불안정 노동의 또 다른 이름만 양산할 수 있다. 그렇게 취업이든 창업이든 내몰린다면 청년은 대(공)기업-정규직-고임금 일자리에 견줘 상대적 격차를 셈하며 경제적 보상 심리만 양껏 자극당하는 꼴이다. 그럼에도 눈앞의 정책과 제도는 일자리의 단기 대량 창출에 현혹되어 있다. 현혹하는 논리는 두 가지다.
먼저 청년의 취업 눈높이(기대 임금)를 낮추라는 훈계가 있었으나 안 통했다. 하여 온갖 창업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외길로 직행한다. ‘취업보다 (차라리) 창업해라’, ‘실패를 두려워 마라’, ‘도와줄게.’와 같은 메시지나 권유가 많아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또한 청년에게 썩 잘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벤처, 1인 기업,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 기업 등 정부의 창업 지원이 겹겹 중복되고 지원금도 증가하는 등 여러 작용이 벌어지지만, 청년의 반작용은 미지근해 보인다. 어쩌면 일자리 창출로 고정된 이런 작용들 탓에 청년의 부작용을 염려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부의 지원금과 보호정책으로 키운 판에서 정량적으로 단기 성과를 도출하려는 갑의 과욕과 그에 맞춰 없던 사업을 꾸미는 을의 전망 부재가 만나면 공정성 논란과 의욕 저하만 남는 부작용이 커진다. 이런 부작용은 시장 만능론과 경쟁제일주의의 폐해를 치유하고 대체하는 방향에서 청년 일자리를 사고해야 하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른다.
문제의 핵심은 당대의 청년 실업 문제가 이전의 실업과 다른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다. 과거의 안정적 직업군은 속속 사라지고 기존 일자리는 줄어드는 반면, 대안적 일자리는 불안정하고 새로운 직업의 등장은 안갯속에 있는 상황. 이것이 현재 청년이 놓여 있는 자리다. 비자발적 실업자면서 자발적 실업자도 늘어나는 복합적인 양상이다. 그렇다고 복지 제도나 사회적 안전망이 튼실해서 청년의 사회 진출 지체와 고용 배제를 완화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벼랑 끝에서 지원할 테니 창업해 일자리 창출하라는 것이다. 이는 베이스캠프도 셰르파도 산소통도 없이 각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성공하라는 말이다. 물론 등정할 청년도 있고 누군가는 불굴의 정신으로 먼저 정상에 설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청년들은 주저하고 망설이면서 자신의 용기 없음과 부자 부모 못 만난 운명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다양한 모색과 시도가 필요하다
최근 사회적 기업, 마을 기업, 협동조합의 활성화 대책으로 청년실업을 해결하는 생태계 조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망가진 개천을 뚝딱 복구할 수 없듯, 생태계 조성에는 긴 호흡이 필수적이다. 생태계란 팬 케이크를 굽거나 달에 로켓을 쏘아 올리는 것처럼 난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복잡한 문제가 아니라 여러 상호작용이 층층 쌓여가고 탈바꿈하며 꼴과 기능을 갖춰가는 복합적 문제다. 이러한 장기적 관점과 점진적 태도는 단기적 성과 평가와 예산 배정이 연동한 지원 제도와 충돌하곤 한다. 그래서 생태계 조성을 바란다면 ‘비제도의 물음표’를 될 수 있으면 많이 포용하려는 ‘느낌표의 제도’가 나와야 한다. 단기간의 투입-산출의 성과 관리가 아니라 많은 교류를 촉진하는 단기 프로젝트들과 탄력적으로 방침을 변경해나가는 참여·관찰형의 중장기 지원이 중요해진다.
그러자면 1년 단기에 신규 일자리 창출 숫자를 창업 성공이나 사회적 기업 인증의 조건으로 거는 지원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이 정책 목표를 버려야 진상이 보이고 다른 가능성이 드러난다. 그렇지 않으면서 생태계 조성을 하면 창업 인큐베이팅 공간을 늘리고 끝날 수 있다. 그러는 동안 창업-일자리 창출에 참가한 청년들은 더 무력해질 위험이 있다. 사회적+기업 또는 마을+기업처럼 과거 프레임으로 볼 때 형용 모순인 신개념이 발명된 맥락을 다시 환기해야 한다. 국가, 시장, 시민 영역에서 거듭 실패하는 회색 지대(gray area)의 온갖 문제에 손(비용)을 써야 하나 당장 뾰족한 수가 없으므로, 즉 정답이 없어서 새롭고 낯선 질문과 실험으로 더 다양한 응답들을 도출하고자 사회적+기업과 같은 실험적 발상이 나왔다. 누구든지 이 회색 지대에 발을 내딛고 걸어가는 가운데 창의 거점(creative zone)을 서로 연결하면서 새로운 생존법과 힘을 갖게끔 하자는 희망 시나리오다.
이처럼 뚝딱 성공 모델이 쏟아질 수 없는 문제라서 다양한 시도의 경험들이 뿔뿔이 소멸하지 않고 상호 교차하면서 점차 성공 확률을 높여내는 접근이 필요하다. 정답이 없는 문제 풀이의 다양한 과정들 자체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여러 사례가 서로 영향을 받으며 진화하는 이 독특한 사회적 실험에는 일단 참여자가 늘어나야 청신호가 켜진다. 그러나 그 신호가 보상을 앞세우면서 무작정 뛰어들게끔 유도하는 지원금의 크기에 맞춰지면 청년은 방어 기제를 앞세운다. 곧장 창업 시도에 나서게 하기보다 그전에 자신감을 갖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단기적인 실패에도 프로젝트를 극단까지 추진해보는 신뢰와 재미를 경험해야 오래간다. 즉 자발적 참여자가 늘어나게끔 동기 부여와 경험 축적을 확산하는 뿌리와 가지가 많아야 창업은 그 경계에서 열매로 자라며 지속성과 복제 가능성을 갖는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런 판에 속한 청년이라면 창업 성공을 못 해도 실패자가 아니라 평생 학습자로서 더 단단해지고 당당해질 것이다. 돈을 벌든 아니든 소신 있게 무엇을 하는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이런 힘은 지속적인 긍정의 상호 작용과 신뢰의 피드백에서 나온다. 그런 분위기가 의도적이고 자연스럽게 형성되면, 바로 그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도 꿋꿋하게 살아갈 방도를 찾는 청년이 등장한다. 희박한 창업 성공률과 미미한 경제적 보상에도 동기를 갖고 재미와 의미 때문에 난제에 도전하는 청년 참여자 풀이 늘어난다. 요컨대 승자독식의 불안에 끌려가는 경제적 인간형에서 벗어나도 괜찮다는 경험과 작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새로운 일을 만들어보는 과정에 힘이 실려야 옳다.

가능성을 찾는 데서부터 희망이 시작된다
2030 청년이 지역의 생활 세계에서 작은 사회적 관계망의 싹을 접하고 직접 키워볼 기회를 갖는다면 많은 가능성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취업과 창업의 이분법적 선택 이전에 -일단 선택하면 복불복의 결과를 평생 각자 책임져야 하는 무모한 현실을 잘 아는 청년은 선택 자체를 계속 지연시키거나 안드로메다의 딴 세상으로 빠져나간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와 일의 재미를 발견하는 경험이 선행되면 청년에게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그러자면 1,000개의 일자리 창출보다 1,000개의 일거리(프로젝트)를 먼저 찾고, 그만한 일거리를 청년 스스로 발견하게끔 1,000개의 일삼기(일벌이기)가 벌어져야 한다. 이런 상황 변화는 2030과 접점을 이루는 공공의 정책이 조금만 각도를 달리하고, 각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며 2030을 만나는 4050이 조금만 달리 관계를 시도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청년 주체의 출현을 보듬는 기초 공사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분양할 터전을 닦는 일이 먼저다. 이를 생략하고 곧장 ‘일자리 창출’이란 모델하우스 오픈을 목표로 창업 지원만 요란하면 청년은 보상 심리나 손실 회피의 방어 자세가 된다. 반대로 지역에서 일상을 다시 바라보는 소소하지만 새로운 ‘일삼기’를 통해 자꾸 일삼다 보면 일거리가 보이게 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와 다른 재미와 의미가 있는 창업과 일자리 창출로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공의 문화예술이 청년과 지역의 만남을 매개하는 다양한 빌미와 구실을 제공할 수 있다. 전국 각지에서 1,000개의 문화예술 일삼기와 일거리를 통해 2030 청년이 4050 세대와 만날 때 창업과 일자리 창출의 틈새가 열릴 수 있다. 그 무대는 중앙이 아니라 지역이며, 중심이 아니라 변방이다. 2014년 6월까지 앞으로 2년 6개월여 시간이 기회다.
글을 쓴 김종휘 씨는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하다가 창업 전문가로 진화하였다. 하자센터 전 부소장, 노리단 창업, 오가니제이션 요리 창업 등을 주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근자에는 청년+지역+문화예술+사회적창업의 키워드로 청년 창업 인큐베이팅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는 사단법인 씨즈의 상임이사로 활동한다. <대한민국 10대, 노는 것을 허하노라>, <일하며 논다, 배운다-노리단 이야기>, <내 안의 열일곱>, <너 행복하니?>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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