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 주제로 강연하는 자리가 잦아졌다. 2~3시간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무작위로 쌓이면서 ‘당분간 더 잦아지겠다’는 추측과 함께 회고도 늘었다. 이 회고란 다음 강연을 좀 더 잘 하고 지난 강연에서 고칠 대목을 점검하는 요량이었다. 문제는 회고를 할 때마다 늘 떠오르는 첫 장면이었다. 강연 후 수강생들과 주고받은 질문과 뒤따른 문답들인데 그 풍경이 어찌 된 영문인지 거의 똑같았다. 덕분에 회고는 번번이 방랑하다가 이 글을 쓰는 빌미가 되었다. 아울러 이 글은 아르떼진 오피니언 코너에 문화예술분야 사회적 기업을 키워드로 삼는 글로서는 잠정적 끝이기도 하다.
사회적 기업을 꿈꾸는 문화예술 단체가 처한 어려움
또 말해둘 것은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에 대한 그간의 내 강연(과 글쓰기)의 의도와 전략이다. 통상 문화예술 분야나 판에 대해 논하거나 사회적 기업에 대해 논한 다음에 (무엇을 먼저 하든) 양자 결합을 어찌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가 하는 식이다. 이에 비해 나는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이란 것을 처음부터 하나의 ‘통’ 발상으로 간주하고는 가급적 핵심에 빠르고 실감나게 도달하거나 진입하게 추동할 어떤 태도를 고양하고자 했다. 그 결과는? 뒤에서 잠깐 밝히기로 하고 여기에선 강연 후 질문과 이어지는 문답의 과정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미루어 짐작하게 된, 현재 한국 사회에서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갖는 이들의 세 가지 유형부터 단순하게 추려보겠다.
가장 많은 유형은 기존 문화예술 단체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려는 경우로 그 동기의 첫머리에 가보면 단체의 생존이 고달프고 힘겹다는 하소연이 있는 경우였다. 이 유형은 단체의 생존이 왜 어려운가에 대한 진단과 결론이 요지부동의 뿌리처럼 이미 단단하고, 질문의 초점은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과 지원 제도의 친절한 사용설명 서비스에 모아져 있다. 이런 유형에게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새로운 개념 혹은 기획이 등장한 시대적 맥락과 그것이 현 시기 한국의 문화예술계 혹은 ‘판’에서 권장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의 정황에 관한 이야기는 단지 교양 습득이나 동향 파악 정도에 그치고 마는 것 같았다.
두 번째로 많은 유형은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이 더 많아지게 하거나 잘 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기업을 해보겠다는 발상의 소유자들이다. 사회적 기업이 많아져야 하는 추세라면 사회적 기업을 ‘길러내고 도와주는’ 사회적 기업을 하는 편이 여러 모로 ‘유리’하고 ‘유익’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발상이다. 이런 경우 두뇌 회전이 빠르다 할 수 있지만, 사회적 기업의 임상도 없는 사람이 그 시행착오의 애로와 난점을 몸으로 겪어낸 경험 없이 교과서와 참고서 읽고 사회적 기업을 길러내고 돕겠다고 하는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이런 발상을 가진 이들이 경연대회 등지에서 주목을 받는 트렌드가 생겨난 것 같다.
세 번째는 소수의 유형으로 사회적 기업 전환이나 창업의 실행 계획은 아직 없이 학습자의 태도를 갖고 경청하는 이들이다. 나는 이들이 대학생이거나 풋 대졸자이겠거니 했는데 의외로 문화예술 단체나 공공기관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도 점점 많아진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이들이 학술적 접근의 대학 주관 아카데미로 가지 않고 실천적 목표와 수단이 많은 현장 중심의 교육이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사실에서 앞의 두 유형과 다른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문화예술 단체의 생존 및 활동 방식에 대한 질문, 사회적 기업이란 발상이 나오게 된 맥락에 대한 질문, 그 근본적인 질문에 잇닿아 있는 주체로서 갖는 궁금증과 호기심 그리고 네트워킹이었다.
서로의 질문과 대답을 아우르는 패턴들
다수인 첫 번째 유형의 수강생들과 내 문답이 보인 일정한 패턴은 이어령 선생의 ‘인생 만남 유형론’에 기대자면 H형이다. 수강생이 가는 길(l)과 강연자가 가는 길(|)이 평행선인데 가끔 필요에 의해 한두 번 만나는(ㅡ) 것이다. 단체의 생존이 절박하니 새 지원제도를 잘 사용하자는 대목에서 만남이 이뤄지는데, 누구 말대로 지원금 따는 것도 실력의 일환일 터, 이런 만남 자체를 탓할 용의는 없다. 다만 지원제도이긴 하나 그 만남의 명목이 사회적 기업이니, 국가의 방식(실패)과 시장의 방식(실패) 모두를 지양하려는 사회적 기업이란 발상의 문제의식과 그래도 몇 번은 낯 뜨겁게 직면해야 할 터인데 서로 낯 붉히기를 꺼려하니 만남이 두터워지기 요원해 보인다.
두 번째 유형의 수강생과 나의 문답 패턴은 O형이다. 서로를 향해 돌고 도는 순환의 형국이다. 잘 하면 하나의 굽은 방향(()과 다른 하나의 굽은 방향())이 꼬리 물기를 해서라도 O 형태를 일단 만들면 그렇게 맞물려 돌면서 만남이 두터워지고 부피를 갖겠지만, 자칫 상대방 꼬리만 보고 서로 쫓다가 날 새는 수가 있다. 현재는 후자의 위험성이 더 커 보인다. 제대로 된 사회적 기업이 사회적 기업계의 중심이나 본이 되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지금, 사회적 기업을 키우는 사회적 기업을 하겠다는 이들이 더 많아지고 트렌드가 된다면, 사회적 기업을 잘 되게 돕겠다는 하나의 굽은 방향(()만 커지고, 정작 사회적 기업을 하겠다는 다른 하나의 굽은 방향())은 작아져서 O형의 만남이 성사될 리 없다.
세 번째 유형의 수강생과 주고받는 문답 패턴은 W형의 준비 단계인 V와 V의 병렬인 것 같다. 이어령 선생의 풀이에 의하면 W형 만남은 두 개의 서로 다른 V와 V가 만나서 시너지를 발휘하는 W가 된다는 것인데, 이 수강생들은 실천적 문제의식을 갖고 있되 아직은 학습자로서 준비를 하겠다는 것이니 W의 한 가능성으로서 한 개의 V일 수는 있겠다고 생각한다. 때를 놓치는 것은 우둔한 것이 되지만 섣부른 것은 무모한 것으로, 우둔함보다는 섣부름에서 오는 피해가 더 걷잡을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다. 이점에서 학습자인 이들이 사회적 기업을 준비한다면 정말 단단하게 진지하게 하고서 출정하게끔 한 개의 V부터 잘 섭렵하기를 바라고 싶다. 일단 출발하면 오래 가야 하겠기에 말이다.
자라날 수 있는 ‘판’과 롤 모델이 중요하다
문제는 세 번째 유형의 학습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 관련 교육 프로그램이 대부분 단기로 되풀이된다는 점에 있다. 이는 커리큘럼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대학이든 현장 중심의 아카데미든 대동소이하다. 길어야 한 분기를 넘지 않고 그마저도 주 1회 3시간 이내의 듬성듬성한 기초 교양으로 마무리하거나, 욕심을 내서 촘촘하게 밀도를 높이는 경우에도 수강생들의 고민이 무르익거나 곪아터질 수 있는 침묵과 어둠의 시간을 용납하지 못한다. 특히 지원제도와 연동되어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면 지원에 따른 성과 도출이 길어야 연내에 입증되어야 하는 수가 많아서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의 주체를 길러낸다는 관점에서는 참 매기도 풀기도 어려운 족쇄처럼 된다.
결국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의 사업 모델이든 주체 양성이든, 단기 목적을 갖는 교육 프로그램은 열 손가락 중에서 한두 손가락 정도나 될성부른 성공사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사회적 기업 1000개를 달성하기 위해 공장에서 찍어내거나 마크를 붙여 서둘러 출시하는 대량 양산의 문제점이 갈수록 더욱 분명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성공사례의 도출이 10의 2이나 3 정도로 유지만 되어도 괜찮은 것이다. 그렇다면 단기 교육 프로그램은 많이 가르치고 자극을 빈번히 주고 쥐어짜서 ‘무조건 되게 만들겠다’가 아니라, 처음부터 될성부른 후보를 발굴하여 그런 사례가 잘 되는 본보기를 세워주어, 아직 준비가 덜 되었거나 모색 차원의 초심자들에게 롤 모델을 세우는 데에서 목적과 성과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남는 진짜 과제는 문화예술 단체들의 답답한 활로와 시절마다 바뀌는 지원제도의 짝짓기를 넘어선 대안을 찾기 위해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의 주체를 양성할 수 있는 중장기적 호흡의 기회를, 판을, 지원을 조성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과거엔 시민사회 영역에서 문화기획자 양성의 흐름이 있었지만 명맥이 끊긴 지금은 새롭게 꽃피우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민과 관과 산이 교류하며 힘을 겨루는 사회적 기업의 육성 판도 안에서 사회적 기업 주체의 양성 혹은 주체의 출현을 좀 더 오래 지속되도록 준비시키는 판을 조성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의무를 이행하자면 적어도 2년 정도는 연속성을 갖고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의 주체를 담금질하며 스스로 영글어 터질 수 있게 두는 생태계가 필수적이다. 이런 시도는 정책 중복 경쟁이 치열한 중앙 부처보다는 지방정부에서, 지역의 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의 분야별 공공기관들에서 작심하면 언제든 착수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런 생태계 조성이 없다면 사회적 기업을 부추기는 개별 정책과 지원은 정신 무장과 군사 훈련을 간과한 채 구식 소총을 주어 전장에 투입하고 방치하는 꼴이다. 나는 누구나 사회적 기업에 도전해야 한다고 믿지만 함부로 도전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뒤로 미룬 초두의 답을 하자면 내 강연의 의도와 전략은 번번이 실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더 내 의도와 전략대로 간다. 그 가운데에서 소수라도 진짜를 만났고 앞으로도 만날 것이기에.
글_ 사단법인 씨즈 상임이사 김종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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