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한 배움과 성장의 장치, 축제

 

축제보다 교육이 문제다

 

축제의 계절이 돌아왔다. 우리 지역 축제의 문제에 대한 우려들도 다시 봄을 타고 피어오른다. 지자체가 큰돈을 마련하지만 전시성 행사로 전락하고, 주민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지만 방문객조차 효과적으로 체험하지 못하는 축제에 대한 고민을 돌이켜보게 된다. 우리가 낸 세금이 일시적이고 일과적으로 쓰인다는 문제의식은 어제오늘만의 것이 아니다.

 

축제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교육’이다. 한국사회에서 아이들은 급하게 커야만 한다.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를 남들보다 빠르게 성공의 문턱에 도달하게 하려 마음을 졸인다. 아이들은 인생의 찬란한 봄날 같은 아동기와 청소년기에도 잠깐 멈추어 느린 마음으로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을 음미해보지 못한다. 책가방은 무겁고 자아실현은 자투리일 뿐이다.

 

최근에 주5일제가 시행되자 사회복지•평생학습•문화예술교육•환경교육 등의 분야에서는 주말을 활용한 체험교육을 만들어야 한다고 난리다. 교육부는 주5일제 시대에 창의적 체험학습을 강화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학(學)부모들은 토요일에 한 번 더 학원을 보낼 고민에만 휩싸였다. 결과적으로 사교육비만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축제가 문제라 말하지만 정작 우리가 세금을 내서 만든 정부와 자치단체의 축제는 경영부진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마을축제는 이럴 일이 없다. 교육이 문제라고 하지만 공무원 신분의 교사들이 지켜내는 공교육에서 해법이 풀리지 않을 따름이다. 지금 사교육•대안교육 모두 아이들이 건강하게 크는 데에는 공교육 못지않은 노력을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축제가 교육이 될 수 있다

 

부모에겐 교육비 경감도 문제이지만, 아이들이 건강하게 문화를 누릴 수 있는 학습여건 때문에라도, 아이들의 자기계발 때문에라도, 지자체가 벌이는 축제들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이것 역시 어제오늘의 주장은 아니다.

1999년부터 3년간 김종휘, 이강명, 허진 씨를 비롯한 여러 동료와 함께 만든 문화체육관광부 청소년문화축제에서도 그랬다. 축제가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한 배움과 성장의 장치가 되길 모색했다. 결과적으로 너무 큰 축제를 통해 아이들이 많이 배울 수 없어 문을 닫았다. 2000년에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든 문화기획학교에서는 윤성진, 이선철, 이규석 씨 등과 함께 청년세대들이 축제기획자로 자라날 수 있는 실마리를 보았다. 하지만 길러진 축제인력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축제를 만들면서 잘 살아남을 수 있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2001년에 문화술교육연구소 에이스 벤추라를 만들어버린 다음은 더 험난했다. 지난 10년간 에이스 벤추라는 청소년을 축제기획자로 기르자는 주장을 하면서 교육과 공동체 활동, 축제실습을 해왔다. 아주 작은 축제. 청소년들이 모여서 전체를 관리하고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축제 그것을 만들다 보면 청소년들은 사업을 꾸리고 자신의 인생계획을 세울 수 있는 리더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문인력이 되려는 청년들에게 제공하던 축제교육을 청소년들에게 제공할 때는 이것이 청소년의 성장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만 했다. 이들이 축제를 만들기 전에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상태부터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학원가기 바쁜 아이들에게 우리 동네에서 지역축제를 만들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참 힘든 이야기였다. 물론 수많은 학교공부를 끝낸 후 남는 시간에 아이들은 참으로 열심히 축제를 준비한다. 울고 상처입고 고생한 끝에 행사장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나면 자신들이 종합적인 예술 체험을 하고 책임감 있는 인생의 사건을 통과했음을 느끼기도 한다.

학교를 파한 후에 지역에 있는 청소년문화의 집으로 와서 운영위원회를 꾸리고 예술동아리를 할 정도로 적극적인 아이들은 청소년들의 인권, 문제의식, 꿈을 이야기하는 청소년축제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이런 축제를 반복적으로 만든 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반문할 때 그들은 ‘너희는 바른길을 갔다’는 어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학교축제도 마찬가지다. 학생 위원회가 열심히 학교의 전통을 살리는 개교기념일을 챙긴다 해도정작 교장과 교감 그리고 교사들이 바쁜 업무 중에 실어내는 이벤트로 본다면 어떨까. 아이들이 얻게 되는 것은 상실감뿐이다. 행사는 행사이고, 교육은 교육이고, 자신이 땀 흘려 만든 축제는 학습이나 성장과 큰 관련이 없다고 느낀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인문주의적인 향기를 갖고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하며 생활 속에서 문화를 만들고 누리는 즐거움을 아는 인재들이 되기 쉬울까? 문화를 즐기거나 상찬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인데, 다 커서 축제를 소중히 보고 문화예술을 보호해야 한다는 성찰을 스스로 해내는 것이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들이 커서도 축제 경험을 잊지 않는다면

 

이러한 여건에서 아이들을 축제기획자로 길러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마을에서건 학교에서건 축제를 스스로 만든다는 것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간다는 의미다. 각자가 고지를 향해 급하게 뛰어다니는 속도의 사회에서도, 누군가는 잔치를 벌이듯 그 바쁜 사람들을 챙긴다. 그럴 때 사람들은 피로가 높아진 사회의 때를 씻고 잠시 숨을 돌려 앞이 아닌 옆을 바라볼 수 있다. 아이들이 노는 법, 쉬는 법을 배우지 않더라도 남들이 난장을 트며 기뻐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손수 자원봉사해서 장터를 만들어줄 수 있는 미덕을 가졌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잘해내지 못한 것을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축제를 만들려면 전문적인 이벤트 프로듀서나 축제 감독이 필요하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난장을 트기 위해 두레와 품앗이를 구상하는 일은, 어릴 때부터 스스로 잔치를 만들고 함께 파티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아이 때부터 축제를 만들어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나아가 아이들이 행사의 연출가가 아니라 남들에게 봉사하는 축제기획자가 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도 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를 할 때 점차 사회는 서로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일부 책임감 있는 리더들이 그런 행동을 먼저 할 때 사회는 커뮤니티며 네트워크며 웹이며 하는 것들로 정의 유대를 구성할 수 있다.

전문적인 기획자를 조기 교육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축제기획자의 경험을 곁에서 함께 체험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남을 돕는 리더, 사업을 꾸려내는 봉사자, 생활 속에서 시민이 문화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복지가들이 커간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학부모들에게도 해줄 이야기가 있다. 자녀가 하나에서 열 가지 작은 축제를 스스로 만들어본다면, 또 친구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반복해서 그러한 축제를 세 번만 만들어 본다면, 그 자녀가 바로 사회의 인재가 될 것이다. 그 자녀는 축제계획이 아니라 자신의 하루 계획을 세울 줄 알게 되고, 축제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1년을 성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마침내 그 아이는 축제감독보다는 기업가정신이나 리더십을 가진 인물로 변해있을 것이다.

 

글_안이영노 | 기분좋은QX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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