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까닭은 ‘익숙하고 지겨운’ 것이 아닌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낯설음은 우리가 일상에서 봐오던 것과는 다른 경관이나 건축물,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지요. 여러분은 어떤 낯설음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시나요?

 

여행은 ‘낯선’ 장소와 문화 또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여행이 우릴 설레게 하는 건,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이나 장소와는 ‘다른’ 곳을 향하기 때문이다. ‘다르고’, ‘낯설다’는 건 상대적인 개념이다. 무엇인가 ‘낯설다’는 건 낯설지 않고 ‘익숙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낯설기만 하고 어디에도 ‘친숙한’ 장소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방랑’만 있을 뿐 ‘여행’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세상의 모든 장소와 만물이 너무도 익숙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체류’만 있을 뿐, 낯선 것과의 만남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여행을 즐길 수 있으려면, ‘지겹고’, ‘지긋지긋해’서 탈출하고 싶은 ‘익숙한’ 일상과 장소, 그리고 그와는 ‘다르기 때문에’ ‘낯선’ 것들이 모두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다르고 낯설다고 해서 모든 곳이 여행지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우리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줄 만큼 낯선 곳으로는 여행을 떠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끔찍하게 추하고 혐오스럽다고 느끼는 것들이 있는 곳도 여행의 장소로 선택되기 힘들 것이다. 말하자면, 여행을 매력적이게 하는 ‘낯설음’은 과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낯설기는 하되 두렵거나 공포스럽지는 않고, 낯설기는 하되 추하거나 혐오스럽지 않을 만큼의 ‘낯설음’이어야 한다.

 

‘다르고’, ‘낯설다’는 건 위계적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2세기, 신성로마제국 주교이자 역사가 오토 폰 프라이징 Otto von Freising(1112-1158)은 황제의 명으로 이웃나라 헝가리를 탐사한 후 이런 기록을 남긴다.

 

Otto von Freising
독일 뮌헨 프라이징 성당의 오토 폰 프라이징 상

 

“헝가리인들은 깊숙하게 파여진 눈과 추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태생적으로 몸집이 작다.
그리고 이들은 풍습이나 언어 면에서 완전한 미개인들이다.
도저히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런 인간 괴물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운명을 탓하거나 신의 너그러움 덕분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다.”1)

 

1000년 이슈트반 1세가 가톨릭을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건국된 헝가리는 당시 독립 왕국으로서의 엄연한 지위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오늘날에는 당당히 유럽 문화의 한 부분을 이루는 헝가리 인들이 12세기 신성로마제국 주교에게는 “완전한 미개인”이자 “도저히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인간 괴물들”로 보일만큼 ‘다르고, 낯설었던’ 이유는, 그가 헝가리의 자연환경에는 경탄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자신과 동등한 주체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타자’에 대한 ‘우리’의 우월성과 우위를 보증하는 규범적 가치위계에 의거해 헝가리인들을 자신과 구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들’로부터 ‘우리’를 우월한 존재로 구별하려는 의지가 크면 클수록 저들의 모습은 더 추하고 비정상적이며 부조화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고, ‘문명 대 야만’의 뿌리 깊은 이분법에 따른 모든 부정적 특성들이 부과되는 것이다. 오늘날 유럽인들에게 헝가리가 더 이상 ‘미개인’이자 ‘인간 괴물’로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이후 역사 속에서 이 위계적 낯설음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 비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장소들은 크게 늘어났다. 이는 한편으로 그 장소들이 이전에 지니고 있던 ‘과도한 낯설음’이 그만큼 극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타자와 타 문화에 대한 ‘낯설음’을 그들의 ‘열등함’으로 귀결시키는 이 ‘위계적 낯설음’은 여행 중인 우리 가슴을 호시탐탐 자극하면서, 아름다운 자연환경에는 경탄하면서도 그 곳에 사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든다. 이번 휴가에는 그런 장벽이 없는 여행을 해보자.

 


1) Otto von Freising, Gesta Frederici seu rectius Cronica, Hg. Von F.J. Scemale : Ausgewählte Quellen zur deutschen Geschichte des Mittelalters, 17, 1 I, 193.

 

글 | 김남시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훔볼트 대학 문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에서 미학과 문화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예술과 문화적 현상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감성을 통한 세계 인식이라는 미학 Aesthetics 본래의 지향을 추구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권력이란무엇인가』,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노동을 거부하라』,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등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