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바캉스 계절이다. 퇴근 무렵 라디오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기차 여행 노래들을 듣노라면 휴가 여행 생각이 절로 굴뚝같아진다. 후텁지근한 날씨도 한 몫 거들며, 지친 일상을 떠나 시원한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그라고 부추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그림의 이면에 있는 것은 카와라의 삶이다. 에리히 프롬의 책 제목 <소유나 존재냐>가 압축하고 있듯, 삶의 태도는 소유지향적일 수도 있고, 존재지향적일 수도 있다. 소유지향적인 인간은 여행을 포함한 다양한 삶의 경험들마저 ‘스펙 쌓기’의 명분하에 소유물로 만들어 버린다. 수많은 석학들이 이러한 소유지향적 삶의 허망함을 강조하고 존재지향적 삶을 ‘실존’이라는 이름으로 옹호해왔지만, 앎과 실천 사이의 그 무한한 간극 덕에 이제는 그러한 이야기가 진부한 클리셰(cliche)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헌데 온 카와라는 정말로 존재함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는 결혼 후 평생을 부인과 여행하며 지냈다. 한곳에 머물지 않고, 집이나 자동차 같은 소유물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한시적으로 점유한 시간과 공간을 통해 자신의 존재함(presence)을 느끼는 데 집중했고, 그것을 담아내는 것을 작업의 주제로 삼았다. 온 카와라의 작품의 매력은 그가 바로 그러한 보기 드문 존재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그림의 이면에서 배어 나온다. 톨스토이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소유)이 필요한가를 물었다면, 카와라는 미니멀한 작품을 통해 삶(존재함)에 그리 많은 것들이 필요치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심플 라이프’를 담아내기에 <오늘> 시리즈보다 더 좋은 것이 또 있을까? 2) 일상의 그 모든 번다함을 덜어낸 채, ‘지금, 여기’라는 모듈의 연속을 보여주는 이 작품들은 삶을 수많은 스펙들과 스펙터클들로 채우려고 버둥거리며 사는 우리 앞에 놓인 불투명한 검은 거울이 되어 우리를, 우리의 삶을 되비춘다. 별 볼거리 없는 그의 날짜 그림이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까닭이 여기 있다.
하지만, 그 같은 존재 증명을 누군가가 구매함으로써만 온 카와라가 여행을 계속하고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그의 존재지향적 삶이 누군가의 소유지향적 삶에 기대어 있다는 아이러니가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혹시, 소유와 존재의 이분법적 분할이 문제는 아닐까?
1) 이 작품은 2013년 7월 1일까지 진행되었던 G-Seoul 13 아트페어에도 등장했었다. 하지만 작품 실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을 그리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이 작품의 미덕은 오브제의 물적 탁월함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온 카와라가 개념미술가로 분류된다는 사실은 그의 작품의 핵심은 그것이 담고 있는 개념에 있음을 알려준다.
2)온 카와라의 단순한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또 다른 연작으로 엽서 작품들과 전보 작품들을 들 수 있다. 엽서 작품들은 그가 여행한 지역의 기념품 가게에서 산 엽서에 자신이 일어난 시간을 스탬프로 찍어 지인에게 보낸 것들이고, 전보 작품들은 여행지에서 ‘아직 살아있다’라는 단 하나의 문구를 타이핑해 보낸 것들이다.
참고 자료
ㅡ위키백과 공용 온 카와라 소개 http://en.wikipedia.org/wiki/On_Kaw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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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경 선생님 글이 너무 좋습니다.
어느순간 자신을 잃어버리고 소유하고 집착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게 당연시 되는 지금 이 순간, 온 카와라가 여행 속에서 모든 소유를 덜어내고 온전히 존재하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순간이 마음에 끌리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 같아요.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글입니다.
휴가철이라많은이동과소음공해등 복잡한 현실에서 많은생각을하게해주는좋은기사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