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에서 십대를 보다!
문화작품을 통한 가치와 삶의 의미 찾기_ 권오숙 교수①

얼마 전 고2짜리 딸의 학교에 시험 감독을 다녀왔다. 남학생 교실에 배정되어 시험 감독을 하는 동안 나는 그들과 함께 절망에 빠져 들었다. 시험지를 받기도 전부터 엎드려 자고 있는 아이들, OMR 카드를 받자마자 시험지는 펼쳐보지도 않은 채 답을 체크하고는 이내 쓰러지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불편하게 문제를 풀고 있는 아이들. 그들의 온몸에서 버겁고 무기력한 삶에 대한 분노와 짜증이 번져 나왔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거의 14시간을 지내야 하는 아이들의 고통이 느껴졌다.

 

그렇게 삶의 활기를 잃고 무력하게 늘어져 있던 아이들의 모습에서 필자는 셰익스피어 작품 속 햄릿의 모습을 보았다. 갑작스럽게 아버지 선왕이 돌아가시고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어머니인 왕비가 숙부와 재혼하자 햄릿은 심한 정신적 혼란에 빠져든다. 그에게는 세상사가 대단히 부조리하게 느껴지고 이 세상은 추한 일들만 벌어지는 곳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허무주의와 염세주의에 빠진다. 세상은 그에게는 감옥처럼 느껴지고 세상을 떠나고 싶은 마음만 간절할 뿐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그 유명한 독백도 이런 그의 심정을 잘 표현한 것이다.
언제부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우리 청소년들의 자살 소식. 공부만 하도록 강요 받는 그들에게 세상은 마치 햄릿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재미도, 의미도 없는 감옥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그렇다고 몇 년만 참고 좋은 대학을 가면 지금의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지닐 수 없는 형편이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취업이 어려워진 탓에 대학 진학 이후에도 그들은 끝없는 경쟁 속에 놓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게 불투명한 자신들의 미래를 직감하고 있다.
햄릿도 말한다. 악몽만 꾸지 않는다면 호두껍질 속에 갇혀 살면서도 광대한 천지의 왕자라 느낄 것이라고. 우리 아이들은 지금 공부, 시험, 입시의 악몽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숨쉴 틈이 필요하다.

 

지난 5월, “청소년 영화 아카데미”라는 프로젝트에서 한 달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청소년들과 함께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학생들이 모여 고전을 읽기도 하고 함께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구성된 참신한 프로그램이었다.
첫째 주에 『햄릿』을 읽은 뒤 둘째 주에 『맥베스』를 읽고 온 소감을 물었다. 한 여중생이 “첫 시간에 『햄릿』을 읽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맥베스』는 오히려 덤덤하게 읽었어요.”라고 대답했다. 무엇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는지 되물었다. 권력을 위해 형을 죽인 숙부, 그런 숙부와 결혼한 거트루드 왕비, 그 모든 비밀을 알면서 복수를 시행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햄릿, 그 와중에 사랑하는 여인 오필리어의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 반전, 그런 충격적인 비극을 겪고 미쳐서 자살하는 오필리어까지 단 한 순간도 극적 긴장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반면 어떤 학생은 심오한 인간성에 대한 탐구에서, 또 어떤 이는 그 주옥 같은 시어(詩語)에서, 또 다른 이는 인간의 나약함을 꿰뚫는 셰익스피어의 통찰력에서. 그리고 모든 것을 단편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다양한 입장에서 바라본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들은 올바른 세상 읽기의 방식을 이해했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이 관객에 미치는 중요 작용의 하나로 카타르시스를 언급했다. 비극을 봄으로써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고 마음이 정화됨을 이르는 이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문학작품을 통한 대리체험은 우리 청소년들에게 이 세상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공부에 떠밀려 메마른 그들의 삶에 한나절의 단비로, 몇 달 간의 가뭄을 해갈해 주듯이 말이다.

 

권오숙 교수

글 | 권오숙 영문학 교수

세계적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오늘을 보다!
오랜 시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세계적인 극작가 셰익스피어,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의 삶과 심리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권오숙 교수는 한국 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셰익스피어를 연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 경희대, 덕성여대, 동국대 등에서 영문학과 문화비교 강의를 하고 있으며 2008년 『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를 집필했다. 권오숙 교수는 셰익스피어 작품 속 인물의 상황과 그에 따른 심리적 갈등을 이야기하며 오늘날 청소년과 가정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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