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대량생산의 시대_강수미 미술평론가⑧

구(舊) 동독 출신 독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는 20세기가 ‘예술대량소비(artistic mass consumption)’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예술대량생산(artistic mass production)’의 시대라고 주장한다. 무슨 뜻일까? 예술의 순수성과 존엄성을 믿는 사람에게는 예술을 마치 물건처럼 생산과 소비로 정의하는 그로이스의 의견이 불편하게 들릴 수 있다. 또 대중 또는 대량을 뜻하는 영어 단어 ‘매스(mass)’를 ‘예술(artistic)’과 연결시킨 점도 그리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20세기에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감상자 또는 관객으로서 그림이나 조각, 음악이나 연극을 언제 어디서나 보고 들으며 예술문화를 즐기는 상황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21세기 초반 우리의 문화를 둘러보건대, 대중이 단지 조용한 감상자나 얌전한 관객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예술 현장에 참여하고 그 참여 행위의 결과로 유무형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현대 예술에 대한 그로이스의 판단이 그리 엇나간 것은 아니다.

 

사실 20세기 내내 이어진 산업기술의 비약적인 발달에 힘입어 예술은 한 공간에서 특정 시간에 특정 형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한계 조건을 벗어났다. 대신 사회 안에서 사진, 영상, 그리고 멀티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대량으로 유통되고 각각의 필요와 목적에 따라 소비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 변화는 예컨대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천장화를 굳이 로마 바티칸의 바로 그 성당을 찾아가서 보지 않아도 그 예술작품을 향유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미술책에서, 관광엽서에서, 인터넷에서 복제된 사진이미지로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반복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베토벤의 6번 교향곡부터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곡을 쓴 뮤지컬까지,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에서 브레히트의 서사극를 거쳐 3차원 입체 영화까지 시대와 장르와 예술적 성향과 기술적 수준을 막론하고 지금 여기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즐기게 되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LP판이나 CD나 DVD나 각종 디지털 프로그램/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우리는 그 다종다양의 예술을 거의 무한한 경우의 수로 보고 듣는 것이다. 그로이스의 “예술대량소비”라는 말은 이 같은 역사적 과정 속에서 변화한 예술의 성격을 가리킨다.

 

그런데 앞서 그로이스의 진단처럼, 21세기 현재는 대중이 대량 생산(엄밀히 말해 재생산)된 예술을 향유 또는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대중이 스스로 예술을 창작 또는 생산하는 지점까지 나아갔다. 이는 우선 말 그대로 대중의 손에서 예술작품이 만들어지고 예술의 다양한 일들이 실행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상호작용예술, 관객 참여형 전시 및 공연, 공동체 미술, 민간 예술 축제 등 어느새 우리가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용어들이 그렇게 예술이 대량 생산되는 측면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하지만 예술이 대량 생산된다는 것은 나아가 현대 예술이 대중의 취향과 의견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되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요컨대 지금 여기 문화예술의 장(場)에서 대중은 예술의 생산과 소비라는 두 영역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결정권을 행사하는 주체인 것이다. 미술 영역에만 소급해 봐도 이는 뚜렷한 현상이다. 국제 비엔날레 등 대규모 전시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관객의 숫자와 선호도다. 그리고 미술 내부의 미학적 판단보다는 유행, 인기, 경향이 어떤 작가의 작품을 좋은 작품, 훌륭한 작품,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만든다. 이때 유행, 인기, 경향을 좌우하는 요인이 다수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해서 현재의 작가들은 자신의 취향과 욕망에 따라 자기 미술의 형식과 내용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대중이 선호하고 바라는 바를 민감하게 의식, 참조하면서 창작을 한다.

 

여기서 보듯 대중이 예술 생산과 소비의 전 과정에 영향력 있는 주체로 자리 잡은 시대적 상황은 곧 미술이 대중문화와 친화적 관계를 맺으며 상호 형식적•내용적 교환을 실행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과거 소수의 천재들이 독점한 미술 세계와는 달리, 예술의 대량생산과 소비시대의 일원으로서 젊은 세대 작가들이 현대 미술계를 주도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현재 젊은 작가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중문화와 근친 관계를 맺는다. 그들의 작품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모티브는 고급 패션 상품,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 대중스타, 인테리어 소품, 만화 캐릭터, 낙서 등 과거 미술에서 주변부•일상•하위문화라고 배제된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젊은 세대의 작가들에게는 자신의 일상을 촘촘하게 구성하고 있는 세부들이자 환경이고,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자 가장 욕망하는 것이며, 기성품이자 자신들의 입장에서 예술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질료다. 그래서 젊은 작가들의 그림이나 사진작품에 적극적으로 채택된 이 대중문화의 산물 혹은 모티브는 친숙하면서도 낯선 이미지, 아름다우면서도 그로테스크한 형상들로 변환된다. 그 변환은 이를테면 ‘대중문화의 사적인 승화(sublimation)’이다. 가장 대중적인 것을 사적인 관점에서 변형하거나 변조하는데, 그렇게 해서 우리가 진부하거나 상투적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뭔가 특별하고 독특한 것으로 탈바꿈시키기 때문이다.

 

1990년 세계 미술계에 젊은 작가 붐을 일으킨 영국 ‘와이 비 에이(young British artists)’의 간판이자 국제 미술계에서 가장 성공한 스타 작가인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미술이 바로 이런 예술시대의 징표이다. 그의 미술에서는 작은 알약, 동물 사체, 해부학 수업용 인체 모형, 심지어 담배꽁초까지 예술적인 재료가 되고 의미심장한 작품 주제가 된다. 허스트는 이런 하찮고 비(非) 미학적인 것들을 극단적으로 미화하거나 반대로 혐오감을 일으키는 형상으로 변형시켜 동시대인들의 지성과 감각을 자극한다. 일본작가 무라카미 다카시는 이와는 조금 다른 경우다. 그는 일본 대중문화의 상징인 만화이미지를 노골적으로 차용해 성적으로 매우 선정적이거나 유아적인 이미지를 변주해낸다. 그 유치하고 통속적인 이미지가 공산품처럼 매끈하게 만들어진 거대 조각품이나 추상화로 제시될 때, 감상자가 경험하는 것은 과거의 명작에서도 느끼지 못했고 현재의 대중문화 스펙터클에서도 느낄 수 없는 기이하고 재밌는 아름다움이다.

 

물론 이와 같은 경향에서 한국 작가도 예외가 아니다. 그 대표적 예로 우리는 ‘아토마우스(아톰+미키마우스)’라는 합성 캐릭터를 만들어낸 이동기, 유명 상품들의 광고사진을 오려 붙여 한 장의 대형 사진작품으로 합성해내는 권오상, 번쩍거리는 배경 위에 역사적 위인부터 동시대의 연예계 스타까지 가리지 않고 초상화로 조합해내는 홍경택을 들 수 있다. 그 작품들은 꽃처럼 예쁘거나, 서구 고전적인 미의 상징인 비너스 조각처럼 아름답거나, 고흐의 초상화처럼 고뇌에 찬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처럼 실험적인 형식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 다수 대중이 도처에서 마주치고,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며, 각자의 역할에 따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문화의 일부가 되기를 기꺼이 목표한다.

 

 

참고 자료
ㅡ 데미언 허스트 공식 홈페이지 http://www.damienhirst.com
ㅡ 무라카미 다카시 공식 홈페이지 http://www.damienhirst.com
ㅡ 이동기 작품 소개 (국립예술자료원) http://www.damienhirst.com
ㅡ 권오상 공식 홈페이지 http://www.damienhirst.com
ㅡ 홍경택 작품 소개 http://www.akive.org/artist/A0000031/

 

 

글 | 동덕여자대학교 회화과 교수, 미술평론가 강수미

시각예술, 미술세계에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본다! 홍익대 회화과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받았고 미학과에서 박사학위(발터 벤야민 사유에서 유물론적 미학 연구)를 받았다. 2005년 《번역에 저항한다》 전시기획으로 올해의 예술상(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7년 제 3회 석남젊은이론가상(석남미술이론상운영위원회)을 수상했다. 2011년 출간한 《아이스테시스》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철학 분야로 선정되기도 했다. 통찰력 있는 강의로 명쾌한 이해를 이끌어내는 교수이자 미술평론가 강수미는 깊이 있는 문화예술 이야기, 미술 세계를 통해 인간의 삶과 문화예술의 기원에 대한 전문가적 해석을 들려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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