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와 사실 사이: (2) 불멸의 연인 _이미배 서양음악학자②

베토벤에 관련된 영화로 가장 유명한 영화가 〈불멸의 연인〉이다. 제목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아마데우스〉 보다는 내용이 ‘전기’ 같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보게 된다. 사실, 우리는 전기적인 사실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 유명한 베토벤이 사랑했던 여인은 대체 누구일까?’. 영화는 그냥 보통 사람이 품을 수 있는 너무나 단순한 호기심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다. 이 영화는 베토벤이 남겼던 세 개의 편지에 적혀있는 ‘Unsterbliche Geliebte’(불멸의 연인에게)라는 말에서 비롯된다. 쉰들러(Anton Schindler)라는 베토벤의 전기 작가가 기록을 바탕으로 베토벤의 삶에 등장했던 여인들을 추적해가면서,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이라 표현했던 여인이 누구였는지를 밝혀내는 과정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여러 여인들이 ‘불멸의 연인’의 물망에 오르지만,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은, 사랑해서는 안 되는, 동생의 부인일 것이라는 다소 놀라운 결말에 이르게 된다.

 

전기적인 사실을 기대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영화 속에서 편지라는 ‘기록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실존인물이었던 쉰들러(베토벤보다 어리지만 베토벤 생전에 그를 알고 지냈었던 인물로, 초창기 베토벤의 전기 작가로 유명하다.)가 등장하여 그 기록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누가 진짜 ‘베토벤의 그녀’ 인지는 아직 누구도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여러 가지 추측에 의해서 가능성이 좁혀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쉰들러’라는 전기 작가에 대한 학계의 평가이다. 영화 속에서 쉰들러는 베토벤의 그녀가 누구인지 ‘진실’만을 추적해가는 공정한 탐정, 혹은 학자처럼까지 느껴지는데, 그가 남긴 베토벤 전기는 20세기 음악학자들에 의해서 상당부분 거짓으로 채워져 있음이 밝혀졌다. 쉰들러는 자신과 베토벤의 관계에 대해서도 과장을 했고, 실제 베토벤과 나누지 않은 이야기도 거짓으로 꾸며서 베토벤 전기에 포함을 시켰다고 한다. 전기가 잘 팔리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여기서 얻게 되는 교훈이라면, 누군가의 인생이 활자로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다 믿을만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크게 사실만을 기대하고 본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가짜 이야기만 늘어놓았으니 이 영화는 음악가 영화로 큰 가치가 없다고 봐야할까? 그래도 음악가의 영화라면 적어도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흔히 특정 작곡가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곡가의 삶, 혹은 배경지식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베토벤의 여성편력은 그의 음악을 이해함에 있어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가 사랑을 하고 있었다고 해서 사랑 노래를 작곡하거나, 사랑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음악에 담아내는 작곡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스스로의,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의 음악적, 예술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작곡을 했던 음악가였다.

 

간간히 등장하는 베토벤의 음악이 좋게 들리기는 하지만, 너무나 극화된 흥미거리 위주의 이야기 전개로 이 영화는 베토벤의 음악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너무 쉽게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그의 음악 이해를 위해 의미 있다 여겨진 부분은 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합창 교향곡〉의 초연 장면이다.

 

〈합창 교향곡〉의 4악장, ‘환희의 송가’ 부분에 이를 무렵, 베토벤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스쳐간다. 어린 시절, 학대하는 아버지를 피해 집을 뛰쳐나와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달려 숲 속의 호수 위에 몸을 뉘어 자유를 얻고, 그 자신이 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 중의 하나가 되는 장면은 그의 삶 자체가 깜깜한 고뇌와 고통의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투쟁이었으며, 그의 ‘음악’이 바로 이러한 내적 투쟁, 그리고 승리의 기록이었음을 너무나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또 들려준다. 〈합창 교향곡〉의 소리와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참 절절하게 와닿는 매우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사실이 왜곡된 전기, 흥미위주의 개인사를 위주로 장치한 허구보다 이 단 하나의 장면이야말로 베토벤의 삶과 음악의 진실에 매우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관련자료
영화 <불멸의 연인> 중 환희의 송가 부분

 

글 | 이미배 서양음악사학자

서울대학교 작곡과 이론전공, 동 대학원 음악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뉴욕시립대(CUNY-Graduate Center)에서 슈만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바흐의 영향에 관한 논문으로 음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KBS 클래식 FM에서 작가로 일했으며, 슈만 음악에 관한 논문들이 주요 음악학 학술지에 출판되었다. 저서로는 <천재들의 음악노트> (공저), <음악이 그림을 만난 날>이 있다. 현재, 서울대, 이화여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1 Comments
  • author avatar
    이무식 2021년 12월 06일 at 7:12 AM

    안녕하세요?
    저는 어디까지가 사실이었는지 항상 궁금했어요
    그 당시에는 그렇게들 살았나 싶기도 하고요 ㅋ
    암튼 음악 만큼은 최고죠. 합창교향곡은 음악으로 유일하게 UNESCO에 올렸잖아요 ㅎ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1 Comments
  • author avatar
    이무식 2021년 12월 06일 at 7:12 AM

    안녕하세요?
    저는 어디까지가 사실이었는지 항상 궁금했어요
    그 당시에는 그렇게들 살았나 싶기도 하고요 ㅋ
    암튼 음악 만큼은 최고죠. 합창교향곡은 음악으로 유일하게 UNESCO에 올렸잖아요 ㅎ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비밀번호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