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home : a short history of private life

빌 브라이슨 저 | 박중서 역 | 까치글방

 

빌 브라이슨은 미국에서 태어난 잘 나가는 여행작가였다. 영국에서 유명 신문기자로 활약하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의 책은 무척 많다. 그 많은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의식이 있다.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이야기는 적지 않는다.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다.

 

빌 브라이슨은 해박하고 유머가 넘치며 따뜻하다. 세간에 떠도는 ‘…카더라’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독자적이고 이단적이기까지 하다. 제법 탄탄한 인문학적 기초도 갖추고 있어 함부로 반박할 수 없다. 더구나 직접 가보고 그렇게 느꼈다고 하는데 누가 감히 반기를 들 수 있을까? 이것이 그만의 진실성이 된다.

 

그러나 그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학자가 아니다. 실생활에는 애매하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을까’하는 합의점이 있게 마련이다. 사실 우리 삶이 그러한 애매함과의 타협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가. 그래서 빌 브라이슨은 ‘이런 결론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이런 경향이 크다’ 정도로 마무리 한다. 그게 진실에 더 가깝다고 느끼는 것 같다. ‘내 이야기는 이거야. 당신은 그 정도도 아직 모르잖아. 더 궁금하면 직접 알아봐.’ 라고 주장한다. 현실적인 설득력이 바로 이런 관점에서 나온다. 적당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을 키우고 섬세하게 검증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이 책도 그런 방식으로 쓰여졌다.

 

영국 노퍽 주의 오래된 목사관에 살게 된 빌 브라이슨은 그 집을 순례하며 집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결국 역사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전하고자 한다.

 

화장실은 위생학의 역사가 되고, 부엌은 요리의 역사가 되며, 침실은 성행위와 잠의 역사가 된다. 그 와중에 그는 일상생활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섭렵한다. 건축에서 전기까지, 음식 보관에서 전염병까지, 향료 무역에서 에펠탑까지, 그리고 치마 버팀대에서 변기까지 어느 것 하나 우연히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아울러 빌 브라이슨은 그런 갖가지 사건과 발명의 배후에 있었던 명석하고 창의적이고 종종 괴짜 같은 사람들에 관해서도 살펴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얼핏 보기에는 우리의 일상생활만큼 하찮아 보이는 것이 또 없는 듯하지만, 사실은 집집마다 어느 한 구석에 어마어마한 역사와 재미, 그리고 흥분이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고 있다고. (출판사 서평 중에서)

 

한 예로 그가 살기로 한 목사관은 나즈막한 언덕으로 포위되어 있었는데 사실 그 언덕은 평지였고 너무나 많은 시체를 묻어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거기서 조금 더 확장시켜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이 대부분 동식물의 죽음과 배설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증거를 숫자로 들이댄다. 세상에 내 발 밑이 온통 죽음의 흔적이라니, 이럴 수가. 대단한 걸. 이렇게 그는 독자를 자신의 관점으로 끌어들인다. 굉장한 흡인력이다.

 

또 한가지, 빌 브라이슨 류의 사회적 평등을 위한 정의감도 빼놓을 수 없다. 산업혁명이 부와 함께 아동 노동을 당연시하게 된 불평등한 구조를 지적하면서 인간의 탐욕과 무절제가 가져온 참담한 현상들과 그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도 함께 적어나가고 있다. 이런 부분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앞뒤 다 잘라먹고 무조건 비판적인 것이 아니라 ‘그땐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나아져야 하고 기특하게도 인류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라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지적 호기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정말 축복 같은 책이다. 그의 책들이 대부분 그러하다. 읽고 나서 절대 후회하지 않을 책들이 있다. 빌 브라이슨의 책이 여기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