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진솔한 속마음 전하는 노랫말의 감흥
드럼 연주로 시작되는 <어떤 이의 꿈>을 들을 때면 절로 손바닥으로 탁자를 두드리게 된다. 무엇보다 낯설지만 진솔한 속마음을 전하는 노랫말이 매력적이었다. 그들의 노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 세월이 흐른다는 게, 나이를 먹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가늠해 보게 만든다.
내가 듀오 봄여름가을겨울을 처음 만난 때는 지난 1988년이다. 당시는 남녀의 사랑을 노래하는 발라드가 유행하던 시대였다. 또 백두산과 시나위로 대표되는 록과 김완선과 소방차로 이름을 알린 댄스음악이 사랑을 받을 즈음이었다. 4계절을 테마로 나눠 트랙별로 테마를 정한, 요즘 같으면 흔한 콘셉트 앨범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의 음악은 신선했다. 연주곡을 무려 3곡이나 담았다. 평단은 결과적으로 성공한 이 앨범이 하나의 모험이었다고 평했다. 이들이 들고 나온 ‘퓨전 재즈’라는 생소한 장르는 금세 대중들에게 익숙해졌다. <사랑은 모두 변하나 봐>가 빅히트를 기록했고, <거리의 악사>로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우리 가요사에 나름의 족적을 남긴 봄여름가을겨울은 그룹이 결성된 지 올해로 22년이 지나고 있다. 단짝친구인 기타리스트 김종진과 드러머 전태관은 1982년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24일 열린 정원영의 유학 송별 파티에서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1986년에 발표된 김수철과 작은 거인을 거쳐 같은 해 7월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 활동했다. 두 사람이 알게 된지는 올해로 29년째이고,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선 것도 벌써 23년째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일어선 건 1988년 1집 <봄여름가을겨울>의 수록곡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덕분이다. 이 앨범에 수록된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거리의 악사’도 이들의 대표곡이 됐다. 그 이후 발표한 ‘어떤 이의 꿈’‘10년 전 일기를 꺼내어’ ‘아웃사이더’ ‘브라보 마이 라이프’로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지금껏 발표한 음반만 정규 9집, 라이브 음반 5장, 베스트 음반 2장 등 줄잡아 20여 장에 가깝다. 데뷔 당시 화려한 인트로로 시작되는 연주에 이어 곡의 멜로디와 구성 방식 등이 일본 냄새가 난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이들은 꾸준한 활동을 통해 국내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음악적 영역을 점해왔다. 록을 바탕으로 한 이들의 노래에는 때로는 소올이, 때로는 재즈가, 때로는 포크가 가미됐다.
2집, 연주와 노래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앨범
이들 앨범 가운데 데뷔한 다음해 발표한 2집 앨범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은 명반으로 꼽힌다. 내게도 무척이나 각별하게 다가왔고, 내 마음을 움직였다. 덤덤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 입술을 앙다물고 기타 튕기는 이들의 무대 매너는 매력적이었다. 연주인으로 남고자 했던 이들은, 당시 실력파로 손꼽히는 세션의 도움으로 연주와 노래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앨범을 선보였다. 1970~80년대‘사랑과 평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멤버이자 김현식, 한영애, 삐삐밴드 등 1980~90년대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음반 프로듀서로 활약했던 국내 최고 베이시스트 송홍섭도 참여했다.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은 당시로서는 매우 독특한 앨범이었다. 이전에 시도된 적이 별로 없는 라이브 앨범, 그것도 2장짜리 LP판을 발표한 것 자체가 특이했다. 다행히 대중은 열광했다. 이들의 데뷔 앨범도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2집 앨범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이 이들의 최고의 앨범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이 앨범에는 인트로인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을 시작으로 ‘그대, 별이 지는 밤으로’ ‘못다한 내 마음을’ 등 3곡의 연주곡이 담겼다. 각 장의 타이틀 곡 격인 ‘어떤 이의 꿈’과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오면’과 ‘쓸쓸한 오후’‘봄여름가을겨울’‘내품에 안기어’‘열일곱 그리고 스물넷’‘사랑해(오직 그대만)’ 등이 담겨 있다.
나는 당시 금액으로 십만 원 하고 몇만 원을 보태서 산 일체형 턴테이블 위에 이 LP판을 올려놓고 죽도록 소리쳐 따라 부른 적도 많다. 김종진의 목소리는 깨끗한 고음과 낮은 저음이 어울리는 명가수는 아니다. 오히려 탁하고 걸쭉하지만 그 목소리가 과장되지 않아 정직해 보인다. 이 앨범의 노래 역시 제목만 보더라도 인트로인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을 시작으로 ‘그대, 별이 지는 밤으로’‘열일곱 그리고 스물넷’‘사랑해’ 등으로 이어지면서 직설적이고 솔직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가슴에 묘한 공명을 남기는 노랫말
어떤 이는 꿈을 간직하고 살고
어떤 이는 꿈을 나눠주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을 이루려고 사네
어떤 이는 꿈을 잊은 채로 살고
어떤 이는 남의 꿈을 뺏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은 없는 거라 하네
세상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과
세상에 이처럼 많은 개성들
저마다 자기가 옳다 말을 하고
꿈이란 이런 거라 말하지만
나는 누굴까 내일을 꿈꾸는가
나는 누굴까 아무 꿈 없질않나
나는 누굴까 내일을 꿈꾸는가
나는 누굴까 혹 아무 꿈…
그 가운데 나의 애창곡은 <어떤 이의 꿈>이었다. ‘쿠쿠쿵 쿵쾅쾅’ 드럼 연주로 시작되는 <어떤 이의 꿈>을 들을 때면 절로 손바닥으로 탁자를 두드리게 된다. 무엇보다 낯설지만 진솔한 속마음을 전하는 노랫말이 매력적이었다.
막 사회에 몸을 내던질 즈음, 이들의 노래는 가슴에 묘한 공명을 남겼다. 그 때 그 노래들이 그렇듯, 이들의 노래에 담긴 가사는 마치 나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명창(名唱)은 아니지만 가슴을 울리는 게 이들의 노래다. 졸업을 한 해 앞둔 나는 이들이 노래하는 <어떤 이의 꿈>을 들으면서 어떤 꿈을 간직하고, 또 어떤 꿈을 먹고 살아야할지 고민했다. 사회에 막 내던져지는 내 자신을 빗댄 것 같은 이들의 노래는, 철모르게 따라 부르던 운동권의 노래 대신 나의 애창곡으로 바뀌고 있었다.
지난해 5월 미국 LA에서 열린 할리우드볼 행사에서 오랜만에 그들의 연주와 노래를 들었다. 그들의 머리에도 흰 눈이 내려앉았다. 계절로 따진다면 가을의 초입에 들어선 나이 대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혼란스러운 20대 초반을 보낸 나는, 묘한 감흥을 받았다. 세월이 흐른다는 게, 나이를 먹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가늠해 보게 만들었다.
그들의 노래를 듣고 꿈을 키운 나는, 지금 그 꿈을 이뤘는가? 아니면 아직도 못다 꾼 꿈이 남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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