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비엔날레 답사기 <삶의 연례보고와 장미꽃>


첫 외국인 감독(오쿠이 앤위저)의 지휘 아래 10월 9일부터 66일간의 일정으로 3개의 세션으로 구성된 광주 비엔날레가 막이 올랐다. 비엔날레는 그간의 전시를 되돌아보는 <길 위에서 On the Road>, 동남아시아, 북아프리카, 한국,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5명의 큐레이터 제안에 따라 현대미술의 흐름과 현황을 반영한 <제안 Position Paper>, 비엔날레 전시 기간 중 전시의 전반적 구조에 삽입되거나 단기간에 열리는 <끼워 넣기 Insertion>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비엔날레 <연례보고 Annual Report>는 예술이 ‘현재 여기 공간’의 구조에서 발생하는 행위와 선택을 보여줌으로써 동시대 현대미술의 다양한 모습, 광주와 한국의 역사적 맥락을 되돌아본다.

충남, 전북, 전남, 강원 지역의 교육 전문인력, 그리고 강의를 맡아주신 노정숙 선생님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식구를 합해 13명이 비엔날레 전시관 앞에서 만났다. 도슨트의 안내에 따라 1시간 정도 둘러본 전시 전체는 조금 산만한 느낌을 주었지만 개별 작품은 난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감동을 안겨주었다. 주제와 소재의 다양성 속에서 찾아낸 예술, 인문학적 발견이라는 이번 비엔날레에 대한 해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개별 작품들을 관람하고 우리는 곧장 차를 타고 <제안 Position Papers> 전의 ‘복덕방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대인시장을 향했다.
시장과 예술이 만나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킨다는 프로젝트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시장과 예술이 따로 있지는 않을까 조금 우려가 되면서도, 아침을 걸러 배가 고픈 우리들에게 대인시장은 곧 밥이었고 발길이 서둘러졌다. 시골 할머니들의 계모임을 위한 장사를 주로 하는 밥집에서 레지던스 예술가들과 함께 전라도식 밥을 먹었다.
 

지붕을 둘러친 노랑색 아케이드 천막 아래 때 묻은 길. 낮인데도 어두침침한 시장 골목을 따라 동굴 탐험하듯 걸어 들어간다. 시장 길을 따라 천장 철재 바에 세로로 내려진 흰색 배너들만이 이곳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포메이션 센터는 의자도 탁자도, 주방도 그대로인 이전 식당 자리이다. 우리를 안내하는 도슨트는 페인트가 묻은 청바지와 고무 슬리퍼 차림을 하고 있고, 그 모습이 몹시 자연스러워 당혹스럽다. 우리는 이미 사라져버린 시장의 풍경 속을 걷는다. 미국 유니버셜 스튜디오 영화 세트장에서 만날법한 낯설고 서글픈 가상현실 프로그램 같다. 필자에게 이런 풍경은 가난을 물리치려고 발버둥친, 대면하고 싶지 않은 과거다. 건어물 가게, 빛깔이 퇴색한 약초들, 먼지가 앉은 한물 간 옷 가게. 그들은 더 이상 무엇을 팔고 있지 않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문득 묻고 싶어진다. ‘혹시,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 어두침침한 풍경 속에서 우리의 눈이 빛나는 지점이 있다. 광주의 정신, 춤추는 고+래(古來)를 만난다. 광주의 역사 앞에서는 만감이 교차한다. 역사의 아이러니, 부조리,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남은 희망의 메시지. 작가는 그 역사의 상처를 담은 엽서를 원하는 사람에게 배달해 준다. 광주 古來의 풍경에서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 빛이 난다. 그래서 시장을 둘러친 아케이드 천막이 열렸고 시야는 한층 맑아졌다.
닫힌 셔터문을 떠받치고 선 역도선수 장미란 선수. 의미심장한 아나운서의 멘트가 들린다. “장미란 선수, 이제는 역기 대신에 광주의 삶을 들었습니다. 예! 세계 최초, 세계신기록입니다.” 콘크리트 공간을 사이에 둔 벽과 벽 그리고 담장 건너 2층 건물에는 작품 ‘해태 타이거즈’가 있다. 광주출신 야구선수 선동렬을 만난다. 그것은 어느 영화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선사한다. 음, 조금 더 솔직히 말자면 작품 해석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다.
 


과거에 집창촌이었다는 공간은 어쩐지 으스스했다. 몸을 팔아야 하는 수많은 사연이 담겨있을 법한 난간과 좁고 어두운 계단과 방을 감싸고도는 그곳은 이제 영상과 만화와 퍼포먼스가 있는 집단창작촌으로 변모했다.


예술가들이 작업을 하는 점포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어쩐지 성에 차지 않을 무렵, 바로 옆에 서 있는 노인을 보게 된다. 건어물 가게 앞에 오래된 물건 자판대를 놓고, 건어물 대신 시장 상인들에게 그러모은 만물들을 팔고 있다. 노인은 중절모 챙 왼쪽에 장미꽃을 달았다. 중절모의 노인은 예술가이며 그의 행위와 삶이 곧 예술행위이다. 중절모 노인은 열심히 그동안의 성과와 앞으로 나갈 방향을 나름대로 열변한다. 그러고 보니 시장의 모든 물건들이 예술이다. 공간에 장미꽃이 핀다.
처음에 생각했던 많은 우려들이 지워졌다. 약재상 명당자리에는 예술가가 디자인한 T셔츠가 걸리고, 수족관을 유영하는 물고기와 하얀 한지에 그려진 은갈치 몇 마리가 어울려 눈부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대인시장 프로젝트 참여 작가인 노정숙 씨의 아뜰리에로 들어선다. 유리문을 열자 사방벽면이 방문했던 사람들의 낙서로 도배되어 있다. 공간이 집단창작된 책이다. 앞뒤로 길을 접한 유리문에 오토바이라도 지나가면 아뜰리에는 웅웅 흔들릴 지경이다. 북새통 점포 북아트 갤러리, 제목 그대로 북새통(BOOKSAETONG)이다. 상황이 그러니 어딘가에 열중하라. 노정숙씨의 강의를 듣고 있자니 북새통은 아뜰리에로 바뀌어 있었다. 강의는 그동안의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삶을 예술로 예술을 삶으로 이어지게 하고, 나아가 제 3의 문화를 탄생하게 한다. 노정숙 씨는 대인시장 프로젝트를 통해 얻게 된 공급자와 수요자가 소통하는 방법의 한 사례를 말한다. “작업하는데 힘든 점은 거의 없었어요. 어느 날 과일가게에 나가 과일을 스케치 하고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좋다고 해서 그림을 주고 왔어요. 대신에 한 광주리의 사과를 얻었죠. 광주라서 그런지 몰라도 시민들이 예술창작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거 같아요.”
노정숙 씨는 문화예술교육 전문인력으로서 또 현재 자기 삶의 절반인 문화예술교육에 대해서도 작은 계획의 말을 강의 말미에 남겼다. “기름 짜는 집과 폐백집이 있는데 그것들도 곧 사라지고 말겠죠. 폐백집 장인의 손길 하나하나가 예술행위입니다. 학생들과 함께 그 공간에서 작업을 해볼 생각입니다. 삶 속에서 삶을 빛나게 하는 예술과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간판은 엄연히 쌀과 건어물을 파는 상점인데 화가가 써 내린 메뉴판에는 천 원짜리 파전과 국수가 있는 파전집이 성황이다. 주인아주머니가 바쁜 일로 가게를 비우자 노정숙 씨가 능숙한 솜씨로 파전을 부친다. 역시 아줌마 예술가는 어디 있어도 거리낌이 없고, 지나가던 그녀의 제자들이 몰려와 한 턱을 요구한다. 파전에 막걸리가 빠질 수 없어 기분 삼아 막걸리 한 통을 사면서, 일흔이 넘었을 막걸리집 주인은 말한다.
“셔터문이 열려 있는 것만 해도 즐겁지. 하는 거 보면 우리도 거들고 싶어.”
사라져 가는 풍경 속에서 이 새롭고 흥미로운 만남이 빛나는 계절, 광주 비엔날레는 장미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