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모더니티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매우 많다.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요소는 개인주의(individualism)일 것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egoism)는 다르다. 이기주의가 타인들과의 관계 하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면서 자신만을 위하려는 비윤리적 경향이라면, 개인주의는 한 개인의 인격적 존엄성을 다른 가치들을 위해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근대적 가치의 기본이다.

 

개인의 가치에 대한 주장은 장 미슐레에 따르면 15세기 전후 북이탈리아에서 나타났다. 그는 이를 다시-태어남, 즉 ‘르네상스(renaissance)’라 불렀다. 스위스의 문화사가 야콥 부르크하르트는 이 르네상스 시대에 ‘근대인’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근대적 인간은 곧 개인적 주체(individual subject)이다.

 

개인주의는 세계시민주의(global citizenship)의 발달과 궤를 같이 했다. 왜일까? 전통에 속박된 세계일수록 일반성과 특수성의 피라미드가 삶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몇 개의 특수성들이 모여 하나의 일반성을 구성하지만, 이 일반성은 다시 상위의 특수성들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위계(hierarchy)를 이루면서 계속된다. 개인주의는 이런 일반성과 특수성의 피라미드가 깨지면서 등장한다. 그 깨짐은 위쪽 방향으로는 보편성을 즉 세계시민주의를, 아래의 방향으로는 개별성을 즉 개인주의를 낳는다.

 

개인주의는 계몽주의를 통해서 새로운 수준으로 올라서게 된다. 18세기의 시민계층, 즉 계몽국가의 엘리트들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교양층이었다. 이들에게 ‘교양(Bildung)’은 한 인간의 개별성을 완성하는 과정을 뜻했다.
칸트는 “자기 생각이란 진리의 최고 시금석을 자기 안에서 찾는 것이며, 계몽이란 언제나 자기 스스로 생각하라는 격언”이라고 했다. 자기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매체는 같은 생각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하는 독서와 토론이었다.
시대의 이런 흐름을 잘 담은 장르들 중 하나가 ‘교양소설(Bildungsroman)’이었다. 18세기 소설들에서는 한 개인의 인생 여정이 문학에서 표현되었다. 특히 영국에서 성행한 이 문학 장르는 개인주의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으며, 문학을 통한 인성의 함양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존 로크의 경험주의 인식론은 이런 흐름의 핵심적인 철학적 배경이었다. 인간이 경험을 통해 고급한 인식 수준으로 차츰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그의 경험론은 한 개인의 지적 성장을 이해하는 모델이 되었다.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1719)는 근대 계몽사상의 문학적 표현으로서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책은 ‘호모 파베르(homo faber)’로서의 인간(제작자로서의 인간)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한 개인이 무에 가까운 상황에서 어떻게 삶을 구축해 나가는가를 그린 이 소설은 ‘근대적 주체’의 모습을 특히 잘 보여준다.

 

새뮤얼 리처드슨의 『클라리사』(1747/48)는 시민 출신의 착하고 아름답고 지적인 여성 주인공이 겪는 영웅적 투쟁과 비극적 몰락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유혹하는 남자가 귀족의 성애 태도를 몸으로 보여준다면, 클라리사는 청교도의 시민도덕을 대표한다.
헨리 필딩의 『톰 존스』(1749)는 필딩은 톰 존스를 영웅이 아니라 착한 성품과 곧은 마음을 가진 시민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움, 유머, 그리고 선한 의지이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허무주의와 냉소주의가 유행하는 지금이야말로, 갈 곳 몰라 헤매는 청소년들을 위한 교양소설들이 필요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이정우 교수

이정우 | 현대사회, 철학과 예술에서 답을 찾다!

서울대학교에서 공학, 미학, 철학을 공부,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 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지식을 섭렵하지 않고 세계철학 사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정우 교수는 역사적 탐구를 근간으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는 현대 한국철학자다. 평소 어렵게 느껴왔던 철학을 온전한 철학사로 아우르며 그 속에서 현대사회의 문제를 묻고 문화예술 분야와 함께 대안을 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