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악은 바로 캐롤이 아닐까요? 거리에 울려 퍼지는 캐롤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즐기는 음악인데요. 성탄절의 분위기를 한껏 들뜨게 하는 지금의 캐롤은 과거의 캐롤과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고 합니다. 서구 중세시대부터 이어져 온 캐롤 속 숨은 이야기! 오늘은 김병오 음악학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12월이 오면 세상은 온통 붉게 물든다. 눈 내린 거리는 하얀 캔버스가 되고 사람들의 들뜬 마음은 곳곳에 빨간 물감처럼 흩뿌려져 흥겨운 성탄절 시즌을 알린다. 물론 12월 25일이 예수가 태어난 날이라는 근거는 없다. 그냥 후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정하고 기념했을 뿐. 성탄절 하면 예수님보다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산타할아버지요 그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이 욕심쟁이 스크루지 영감일 게다. 좀 더 비판적인 사람이라면 코카콜라 회사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지금의 성탄절을 표상하는 이미지의 상당 부분은 코카콜라사의 상술로부터 비롯된 것이니까 말이다. 스크루지 영감이 나오는 소설의 제목은 알다시피 <크리스마스캐롤>인데, 생각해 보면 성탄절 분위기를 한껏 들뜨게 해주는 성탄절 노래, 바로 캐롤은 이 시즌의 대표적 주인공 아닐까 싶다.
1930년 코카콜라 광고에 등장하기 이전과 이후의 산타클로스 형상
캐롤을 요즘 말로 설명하면 ‘제의(祭儀)적 댄스뮤직’ 정도가 될 텐데 우리의 전통문화로 치자면 강강술래와 매우 가깝다. 기원을 찾아보면 서양의 중세시대를 훌쩍 넘어서는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대개가 그렇듯 지금 전승되고 있는 기독교 중심의 캐롤 전통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강강술래와 마찬가지로 성탄절뿐만 아니라 주요 절기마다 사람들은 캐롤을 부르면서 음주가무를 즐겼다. 게다가 기독교인들이 이교도라고 칭했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문화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캐롤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의례가 아니라 민중들의 삶과 여흥을 자축하는 것에 뿌리가 있었다. 술로 적당히 얼큰해져서 왁자지껄 어깨춤 풀어제끼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캐롤을 즐기던 모습의 원형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는 오래도록 캐롤을 금지하고 배척해 왔다. 헤비메틀과 힙합 등이 CCM으로 종횡무진하는 요즘 세상이야 캐롤도 엄숙정숙한 음악으로 취급받지만 오래전 기독교에서는 최소한의 어깨의 들썩임도 배제된 매우 점잖은 음악만을 취급했다. 기독교인들은 회당에서 평성가[plainsong]라는, 어찌 보면 낭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매우 절제된 노래를 불러왔는데 종교적 경건함에 대한 추구도 원인이었겠지만 사실 교회당 건물에 잘 어울리는 선택이기도 했다. 돌로 만든 커다란 공간의 자연적인 울림과 어깨춤을 일으키는 흥겨운 리듬이 썩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종교적 지배하에 살아가던 민중들이 금지와 배척에도 불구하고 절기마다 마을 곳곳에 함께 모여서는 캐롤을 부르며 여흥과 위무를 지속했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16세기 종교개혁의 대표적 인물인 마르틴루터는 캐롤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노래하는 신부님’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음악을 사랑했고 노래를 사랑했는데, 그는 개혁을 이끌면서 민중들이 즐기던 캐롤을 교회당 안으로 불러들였고 열렬히 찬송했다. 종교개혁을 계기로 캐롤은 문화적 담장을 넘어 기독교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연말의 들뜬 분위기, 상업적인 계산들과 이해를 같이 하면서 연말의 노래, 성탄절의 노래가 되었고 기독교뿐 아니라 교회 바깥세상의 많은 이들에게도 가장 친근한 겨울의 노래가 되었다.
캐롤, 술마시며 부르는 노래 혹은 새벽에 부르는 축원가
한편, 우리나라의 캐롤 문화 역시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유교, 불교적 전통 하의 토착민들이 이교도의 일종이었을 기독교 음악을 루터와 같은 마음으로 수용한 것이다. 1950년대에는 ‘새벽송’이라고도 했는데, 새벽녘부터 예수의 복음이 필요한 곳을 찾아 캐롤을 부르곤 했다. 요즘의 캐롤이 시장의 배경음악이나 영업용 음악의 성격이 강한데 비해 초창기만 해도 노래를 통한 공동체의 사회적 실천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기독교야말로 이교도의 처지였으므로 그렇게 환대받지는 못했다. 새벽에 캐롤을 부르려던 사람들이 경찰에 연행되는 사건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기독교가 소위 이교도의 문화를 수용했듯 한국사회도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캐롤을 수용했고 연말이면 가장 즐겨듣는 노래가 되었다. 사실 민중들의 행복을 더하는 일에 가해져 온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흑백논리는 언제나 궁색하고 무력했던 것이 인류의 역사이기도 하다.
최근 해외에서는 성탄절이라는 표현이 종교적인 편향성을 가졌다고 하여 공적 영역에서는 그 쓰임새가 점차 축소되는 추세라 한다. 연말의 가장 설레는 휴일을 특정 종교의 기념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롤은 또 다른 의미로 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특정한 종교적 가치로서보다도 특정 종교가 민중들의 품에 안기기 위해 자신들 반대편의 문화를 수용한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다문화 시대를 맞아 특정 문화의 우월성을 고집하는 대신 다양한 문화적 자산들을 열린 마음으로 존중해야 하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진 시절, 캐롤의 역사는 그에 대한 좋은 참고서가 아닐까. 배척받는 소수자를 환대한 역사, 그리고 배제가 아니라 포용의 정신을 담은 노래가 바로 캐롤이었으니 말이다.
글쓴이_ 김병오 (음악학자)
전주대학교 연구교수, 라디오 관악FM 이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음악사를 전공했다.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OST 작업 및 포크 음악을 토대로 전통음악과의 퓨전을 추구하는 창작 작업을 병행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소리의 문화사』가 있고, 「한국의 첫 음반 1907」, 「화평정대」, 「바닥소리 1집」 등 국악 음반 제작에 엔지니어 및 프로듀서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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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에 이런 맥락이 숨어있었습니까? 와 종교음악이라 생각했던것이 오히려 배척했던 것이였다뇨. 나중에 민중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용문화였다니. 이런 토막 지식과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가 재미집니다. ㅎㅎ
*여담 : 산타는 코카콜라가 만들어낸 인물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존재인가봐요:))
3~4세기 실존했던 돌궐족 신부님쯤 될까요? ㅎㅎ 성니꼴라쓰란 분이었다는데요 이 이름을 빨리 허투루 막 읽다보면 어느새 싼타클로스라고 들리게 된다는 전설이…^^
저도 캐롤에 이런 숨은 이야기가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 주변 사람들에게도 말해줘야겠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