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전축, 할아버지의 자작(自作) 땐스홀_김병오 음악학자

여름 여행의 필수 아이템인 음악!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손쉽게 음악을 감상한다지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젊은 시절 야외 여행지에서 어떻게 음악을 만끽했을까요? 레코드 산업이 발전하며 전쟁터의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보급된 탄생한 야전(野戰)용 전축. 이후에는 세계 방방곡곡 유원지의 또 다른 ‘야전(野電)’ – 야외용 전축이 되어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청춘의 유흥을 책임지는 주인공이 되었다고 합니다. 야전과 함께한 뜨거운 청춘들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까요?

 

뜨거운 여름, 작렬하는 태양을 피해 누구보다도 바깥세상 어디론가 떠나고 싶던 이들이 있었다. 전선에 내몰려 목숨을 걸고 참호를 지켜야 했던 청춘들 말이다. 극도의 긴장감과 지루함이 쉴 새 없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그들은 도저히 긴장을 풀 수가 없었지만 한편으로 긴장을 풀지 않고는 견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요즘 화제가 되었던 연예병사들 말고, 전쟁이 벌어지면 으레 군 위문단이 결성되어 순회공연을 하곤 했다. 긴장을 푸는데 무대 이벤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문단이 전선의 청춘들의 곁에 매일같이 함께 할 수는 없는 일,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다른 수단이 필요했다.

 

오디오 기기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축음기를 처음으로 상품으로 만들어냈던 것은 1877년의 에디슨이었다. 당시 그의 머릿속에는 꽤나 복잡한 생각들이 담겨 있었다. ‘이것을 어디에다 팔아치워야 할까, 누가 돈을 내고 이 물건을 이용하려 할까.’ 다양한 용도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에디슨은 속기사를 대체할 수 있는 도구로 축음기를 특징지었고 제품 판매를 위한 홍보에 나섰다. 물론 그의 축음기 사업은 수십 년 투자에도 불구하고 크게 낭패를 보았지만 말이다.

 

 

에디슨 원통형 레코드, 베를리너 원반형 레코드

에디슨의 원통형 레코드 베를리너의 원반형 레코드

 

에디슨이 소리를 녹음하는 기술에 매료되어 축음기를 만들었다면 독일 출신의 발명가 베를리너는 소리를 재생하는 기술에 매료되었다. 베를리너는 축음기를 ‘기록’이 아닌 ‘재생’하는 도구로 바꾸어냈고 그 덕분에 레코드 산업이 본격적으로 닻을 올리게 되었다. 축음기는 이제 속기사를 대체하거나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과 같은 사무적인 도구가 아니라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고 즐겁게 해 주는 문화적인 도구가 되었다. 이것은 실로 커다란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무대의 연희자를 대신하여 레코드 한 장이 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울릴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렇게 레코드가 새로운 경험을 전해주며 널리 사랑받기 시작했을 때, 전선의 참호 속에는 전쟁 혹은 생사를 직면한 청춘들이 있었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마음의 위로와 여유가 필요했던 사람들. 그러므로 극단의 긴장과 무료함이 무겁게 지배하는 전장에 레코드가 전달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전기가 아니라 태엽으로 구동되던 초기의 기술적 특성상, 레코드와 축음기는 어디로든 자유롭게 이동하여 흥겹고 멋진 음악을 전해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1차 대전 축음기 광고

전장의 위문품으로 축음기가 제격이라는 것을 알리는
1차 대전 시기의 광고 전단지

일부 레코드 회사는 발 빠르게 ‘야전(野戰)용 전축’을 보급하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하여 군대에서는 물론 일반 사회에서도 포터블 축음기가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게 되었다. 이후 ‘야전(野戰)용 전축’은 또 다른 이름의 ‘야전(野電)’, 말하자면 야외용 전축이 되어 세계 방방곡곡 유원지 청춘들의 유흥을 책임지는 주인공이 되었다. 여름 하면 떠오르는 것이 음악과 여행 아니었던가. ‘야전’이야말로 여름의 주인공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70년대 야전

‘야전’과 함께 댄스에 몰입중인 70년대의 청춘들
(출처: blog.hani.co.kr/chris)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었을 터, 이제는 환갑을 넘나들고 있을 70년대의 뜨거운 청춘이자 지금은 우리 곁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바로 이 ‘야전’과 더불어 여름과 젊음의 때를 만끽했다. 지금이야 뉴스에 등장하는 홍대 앞 클럽의 청춘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하지만 당신들이라고 청춘의 시절에 다를 게 있었겠는가. 그 시대에 유행했다던 고고장이 바로 지금의 클럽인 것을 말이다. 지금의 청춘들이 클럽을 찾아가는 것에 비해 옛 청춘들은 팔도강산 구석구석에 저마다의 고고장을 직접 운영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예나 지금이나 그저 엉덩이, 팔뚝, 장딴지 신나게 흔들어대면서 여름을 보내는 방법에는 아무런 다름이 없다. 뜨거운 여름, 여행과 음악이야말로 청춘이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특권일 테니 말이다.

 

김병오 음악학자

글 | 김병오 (음악학자)

전주대학교 연구교수, 라디오 관악FM 이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음악사를 전공했다.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OST 작업 및 포크 음악을 토대로 전통음악과의 퓨전을 추구하는 창작 작업을 병행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소리의 문화사』가 있고, 「한국의 첫 음반 1907」, 「화평정대」, 「바닥소리 1집」 등 국악 음반 제작에 엔지니어 및 프로듀서로 참여하였다.

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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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07월 23일 at 9:26 AM

    중고등 학교 때 소풍을 가면 항상 라디오나 카세트를 가져갔었죠. 오락부장 같은 분위기 메이커들이 소풍장소를 바로 나이트 클럽으로 변화시켰구요. 야전이란 말이 친근하게 다가오네요. 이것도 세시봉 추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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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365 2013년 07월 25일 at 11:56 AM

      카세트..! 아 갑자기 워크맨과 마이마이가 생각이 나면서 아련해지는군요.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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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지숙 2013년 07월 23일 at 9:28 AM

    80년대엔 여행갈 때 필수품이었죠. 카세트 테잎… 그런데 90년대엔 CD 플레이어로 그리고 2000년대엔 MP3로 요즘은 스마트 폰으로 대체되고 있죠. 그 옛날 할베들은 야전을 갖고 이동식 땐스홀을 만드셨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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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365 2013년 07월 25일 at 11:56 AM

      스마트폰에 휴대용 스피커까지 나온 마당에, 이제 이 이상의 끝판왕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분명 더 진보한 음향기기들은 계속해서 나오겠죠? 다음 세대는 어떤 식으로 댄스홀을 만들게 될 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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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ejung Hwang 2013년 07월 23일 at 12:55 PM

    사실 축음기는 종로 도깨비시장이나 가야 볼 수 있다는생 각을 많이 했었는데, 전쟁용으로도 사용된 적이 있다는 것은 이번 기사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네요. mp3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클릭 한 번으로 음악을 재생하는 시대에 참 흥미로운 기사였어요. 언젠가 직접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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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365 2013년 07월 25일 at 12:03 PM

      저는 종종 홍대 근처 LP바에서 LP음반을 듣고 오곤 하는데 언제들어도 참 구수하니 좋더라구요. 요즘 스마트폰으로 듣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MP3 음질과는 확연히 다른 맛과 멋이 있는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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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연 2013년 07월 27일 at 1:18 AM

    전쟁 얘기가 나오니 사면초가가 생각이 나네요. ^^ 인간성이 극단적으로 치달을 때 음악은 전장에서 잃어버린 인간성을 희미하게나마 돌려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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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07월 23일 at 9:26 AM

    중고등 학교 때 소풍을 가면 항상 라디오나 카세트를 가져갔었죠. 오락부장 같은 분위기 메이커들이 소풍장소를 바로 나이트 클럽으로 변화시켰구요. 야전이란 말이 친근하게 다가오네요. 이것도 세시봉 추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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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365 2013년 07월 25일 at 11:56 AM

      카세트..! 아 갑자기 워크맨과 마이마이가 생각이 나면서 아련해지는군요.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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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지숙 2013년 07월 23일 at 9:28 AM

    80년대엔 여행갈 때 필수품이었죠. 카세트 테잎… 그런데 90년대엔 CD 플레이어로 그리고 2000년대엔 MP3로 요즘은 스마트 폰으로 대체되고 있죠. 그 옛날 할베들은 야전을 갖고 이동식 땐스홀을 만드셨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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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365 2013년 07월 25일 at 11:56 AM

      스마트폰에 휴대용 스피커까지 나온 마당에, 이제 이 이상의 끝판왕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분명 더 진보한 음향기기들은 계속해서 나오겠죠? 다음 세대는 어떤 식으로 댄스홀을 만들게 될 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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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ejung Hwang 2013년 07월 23일 at 12:55 PM

    사실 축음기는 종로 도깨비시장이나 가야 볼 수 있다는생 각을 많이 했었는데, 전쟁용으로도 사용된 적이 있다는 것은 이번 기사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네요. mp3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클릭 한 번으로 음악을 재생하는 시대에 참 흥미로운 기사였어요. 언젠가 직접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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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365 2013년 07월 25일 at 12:03 PM

      저는 종종 홍대 근처 LP바에서 LP음반을 듣고 오곤 하는데 언제들어도 참 구수하니 좋더라구요. 요즘 스마트폰으로 듣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MP3 음질과는 확연히 다른 맛과 멋이 있는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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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연 2013년 07월 27일 at 1:18 AM

    전쟁 얘기가 나오니 사면초가가 생각이 나네요. ^^ 인간성이 극단적으로 치달을 때 음악은 전장에서 잃어버린 인간성을 희미하게나마 돌려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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