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유시앙과 전공이 다른 기숙사 룸메이트가 늘 유시앙과 학교생활을 함께할 수는 없다. 더구나 학교를 벗어나게 되면 유시앙은 더욱 난처한 상황에 부딪힌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무심히 지나가다 함부로 어깨를 밀치는 행인들 사이에서 맹인인 유시앙의 한걸음 한걸음은 얼마나 위태로운지. 그런 유시앙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 가려던 곳까지 이끌어 준 사람은 같은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 아니라, 학교 앞 테이크아웃 음료수 가게에서 일하는 치에였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데다 쇼핑 중독증인 엄마 뒷감당까지 하느라 대학 진학은커녕 무용을 하려던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한 치에는, 유시앙네 대학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남자친구를 사귀는 정도로 춤에 대한 갈증을 풀어왔다. 그런 치에에게 유시앙은 자극이 되고, 등대가 된다. 낯선 도시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눅 들지 않고, 자신처럼 눈이 보이지 않는 어린이들을 찾아가 음악으로 멘토 역할을 하는 유시앙은 어느새 치에를 그동안 접어두었던 무용의 세계로 내딛게 하는 멘토가 된다.
치에가 다시 춤을 출 용기를 얻게 된 건 유시앙이 물어봐줬기 때문이다. “춤이란 어떤 거야?”라고. 앞을 보지 못하는 유시앙에게 춤이 어떻다고 말로 설명해봤자 어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치에는 말로 설명하는 대신 유시앙을 일으켜 세워 직접 춤을 추도록 손길을 내민다. 그렇게 서로에게 빛의 손길이 될 수 있는 관계로부터 유시앙도 치에도 각자의 상처를 씻고 꿈을 펼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교육은 가정이나 학교, 어느 한 곳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애가 있든 없든 사람은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 안에서 자신의 몫을 해내야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앞에 닥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도 주고, 가르침도 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교육의 목표인 성장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터치 오프 라이트>가 초청 상영되던 때, 영화가 끝나자 유시앙이 무대 위로 올라 영화의 감동보다 더 생생한 피아노 연주를 직접 들려주었다. 이때의 감동은 장애를 소재로 해서도, 장애를 극복해서도 아니다. 장애와 더불어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영화 안에서, 그리고 영화 밖 현실에서 하나로 이으며 생생하게 보고 듣고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글 | 이안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연출과 편집, 영상문화이론을 공부했다. 문화일보, KBS , YTN, 미디어오늘 등 다양한 매체에 영화 평론 및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대한 칼럼을 게재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다.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0비밀번호 확인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