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의 성장기_이안 영화평론가

대만의 장영치 감독의 <터치 오브 라이트>는 맹인으로 태어나 가족의 이해와 보살핌 속에서 음악에 재능을 보이던 유시앙이, 가족을 떠나 타이페이의 대학에 입학하게 되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낯선 사람들과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건 설렘보다는 불안함을 먼저 불러일으킨다.
 

‘맹인이기에’ 특별대우로 입학을 허가받은 것이 아니라, ‘맹인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탁월한 재능이 있기에 실력으로 당당하게 입학하게 된 유시앙. 그는 떳떳하고 자랑스러워 할만도 한데, 오히려 불안해한다. 유시앙이 첫 맹인 학생이다 보니 학교 시설도, 같이 공부하고 연주할 학과 학생들도 장애를 가진 학생과 함께 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유시앙은 가족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피아노를 배우고 즐기고 성장해왔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대신 눈과 지팡이가 되어주고 길잡이가 되어주던 가족의 도움 없이 유시앙이 혼자서 대학을 잘 다닐 수 있을까?
 

지도교수는 다른 학생들이 유시앙을 강의실과 연습실로 안내하거나 학교생활을 잘 해나가도록 도와주기를 당부한다.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와서가 아니라 교수의 지시 때문에 마지못해 따르는 학생들의 태도와 말투에는 불만과 짜증이 배어난다. 다행히 기숙사 룸메이트는 괴짜이긴 하지만 유시앙을 특별하게 불편해하지도, 동정하지도, 귀찮아하지도 않고 그냥 친구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유시앙과 전공이 다른 기숙사 룸메이트가 늘 유시앙과 학교생활을 함께할 수는 없다. 더구나 학교를 벗어나게 되면 유시앙은 더욱 난처한 상황에 부딪힌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무심히 지나가다 함부로 어깨를 밀치는 행인들 사이에서 맹인인 유시앙의 한걸음 한걸음은 얼마나 위태로운지. 그런 유시앙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 가려던 곳까지 이끌어 준 사람은 같은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 아니라, 학교 앞 테이크아웃 음료수 가게에서 일하는 치에였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데다 쇼핑 중독증인 엄마 뒷감당까지 하느라 대학 진학은커녕 무용을 하려던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한 치에는, 유시앙네 대학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남자친구를 사귀는 정도로 춤에 대한 갈증을 풀어왔다. 그런 치에에게 유시앙은 자극이 되고, 등대가 된다. 낯선 도시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눅 들지 않고, 자신처럼 눈이 보이지 않는 어린이들을 찾아가 음악으로 멘토 역할을 하는 유시앙은 어느새 치에를 그동안 접어두었던 무용의 세계로 내딛게 하는 멘토가 된다.

 

치에가 다시 춤을 출 용기를 얻게 된 건 유시앙이 물어봐줬기 때문이다. “춤이란 어떤 거야?”라고. 앞을 보지 못하는 유시앙에게 춤이 어떻다고 말로 설명해봤자 어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치에는 말로 설명하는 대신 유시앙을 일으켜 세워 직접 춤을 추도록 손길을 내민다. 그렇게 서로에게 빛의 손길이 될 수 있는 관계로부터 유시앙도 치에도 각자의 상처를 씻고 꿈을 펼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교육은 가정이나 학교, 어느 한 곳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애가 있든 없든 사람은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 안에서 자신의 몫을 해내야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앞에 닥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도 주고, 가르침도 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교육의 목표인 성장이다.

 



유시앙이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장면

 

유시앙은 대학에 가기 전까지 가정 안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을 받아왔다. 바로 스스로를 긍정하는 자신감,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혼자만의 재능으로 뽐내는 것이 아니라 더 어려운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그리고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솔직함까지 말이다.
 

교육의 목표는 타고난 재능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다른 사람이 발전하도록 이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가정 안에서 항상 보호만 받게 된다면 아무리 재능을 갈고 닦는다고 하더라도 세상에 나아가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 그건 장애가 있든 없든 마찬가지다.
 

학교에서의 교육은 가정에서의 교육과는 달리 어느 한 사람에게만 집중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유시앙을 제자로 받아들인 교수는 유시앙의 장애에 대해 배려는 하지만 그 배려를 다른 학생들에게까지 강요하지는 못한다. 대신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뛰어들어볼 수 있는 자리로 이끌어 준다.
 

이렇게 유시앙은 가정과 학교,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제대로 배우고 성장해서 홀로 서게 되었다. 앞을 보고 유시앙에게 길을 찾아줄 수는 있어도 자신의 앞길을 헤쳐 나갈 용기가 없던 치에에게 길을 찾아볼 빛을 던져주는 존재가 되고, 재능을 갈고 닦아 피아니스트로 성공하게 되었다.
 

이런 교육과 성장은 영화 안에서나 가능한 이상이 아니다. <터치 오브 라이트>의 주인공 유시앙은 실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 속에서 연기한 대만의 젊은 피아니스트다. 장애를 극복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뛰어난 연주자로서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음악가이기 때문에 삶의 주인공이 되고, 누군가의 멘토가 되는 그런 존재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터치 오프 라이트>가 초청 상영되던 때, 영화가 끝나자 유시앙이 무대 위로 올라 영화의 감동보다 더 생생한 피아노 연주를 직접 들려주었다. 이때의 감동은 장애를 소재로 해서도, 장애를 극복해서도 아니다. 장애와 더불어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영화 안에서, 그리고 영화 밖 현실에서 하나로 이으며 생생하게 보고 듣고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글 | 이안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연출과 편집, 영상문화이론을 공부했다. 문화일보, KBS , YTN, 미디어오늘 등 다양한 매체에 영화 평론 및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대한 칼럼을 게재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비밀번호 확인